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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0.21 20:22 수정 : 2015.10.22 11:27

[매거진 esc] 홍창욱의 제주살이

내가 제주를 처음으로 방문한 것은 2000년, 제주인권학술회의 때문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비행기도 타보고 제주도도 가보는 거니 기대감이 얼마나 컸을까. 당시엔 제주여행이 해외여행만큼이나 부푼 꿈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여정의 목적이 회의였던지라 첫 제주여행의 필수 코스라는 용두암 코빼기도 볼 수 없었다.

제주공항에서 숙소이자 회의 장소인 서귀포 칼호텔까지 이동하면서 내가 본 거라곤 잘 닦인 서부산업도로와 도로변 갈대, 가끔 들판에 보이는 말뿐이었다. 육지로 되돌아가며 언제 다시 제주로 오게 될까 했는데, 딱 10년 만에 나는 여행이 아닌 생활을 위해 제주 섬에 왔다. 물론 그때 이후 제주여행을 몇 번 왔지만, 살러 와서 경험해본 제주는 여행 때와는 분명 달랐다. 제주 이주 일주일 만에 제주살이 6년 선배를 만나서 듣게 된 조언은 지금 생각해도 금과옥조 같아 제주 관련 글을 쓸 때마다 인용한다.

일주도로. 사진 홍창욱 제공
그중 하나가 제주시 외곽 읍면지역에 집을 얻지 말고 도심지역, 가능하면 회사 근처에 집을 얻으라는 것이었다. 제주 생활 하면서 느끼는 이동 거리감이 생각보다 크다는 것이다. 한라산에서 공을 뻥 차면 바다에 빠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하지만 제주도 면적은 1848㎢로 서울시 면적의 3배에 달하고, 부속도서를 제외한 제주 본섬의 해안선 길이만도 308㎞로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긴 서해안고속도로와 별반 차이가 나질 않는다. “렌터카 타고 한 시간이면 제주도 다 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이야기를 최근에도 자주 듣는다. 일주도로 길이는 176㎞다. 자동차 제한속도인 시속 70㎞로 신호등 걸림 없이 쉬지 않고 달린다 해도 2시간 넘게 걸리는 곳이 제주도다.

제주살이를 선택한 많은 이들이 웬만하면 마당이 있는 전원생활을 위해 외곽지로 빠지려고 한다. 제주에서 차로 30분 이동하는 거리는 상당히 먼 편에 속한다. 체감 거리가 보태지기 때문이다. 제주시 생활권을 기준으로 하자면 서쪽 맨 끝 하귀에서 동쪽 삼양까지가 20㎞인데, 오죽하면 제주시 대단위 아파트 밀집지구인 신제주에서 시청 소재지인 구제주까지가 너무 멀다며 중간에서 만나자는 이야기가 나오겠는가. 차로 20분이면 가는 7㎞에 불과한 거리인데 말이다. 제주에 와서 대학 동문회 일을 2년 이상 해오며 총무들 모임을 오라동의 한 식당에서 자주 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구제주와 신제주의 딱 중간에 위치하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런 분위기는 제주시 도심지 중심주의에 기인한 바가 크다. 제주도 전체 인구는 63만명이다. 이 중 제주시 도심 인구는 36만명으로 제주시 읍면과 서귀포시 전체를 합친 인구보다 많다. 웬만한 자족생활은 외곽 읍면지역에서도 가능할 거라 생각하지만, 아이가 아플 때 급하게 찾아야 하는 소아과, 공적 업무를 처리해야 할 관공서, 주요 문화시설 또한 모두 제주 도심에 집중되어 있다. 간단한 전자제품 수리까지 제주시로 향해야 하니 일주일에 몇 번이나 제주시를 들락날락해야 하는지. 이쯤 되면 제주시 도심 이외 지역에 산다는 것은 꽤나 불편한 일이다.

내가 제주시에서 서귀포시로 이사한다고 하니 제주시의 많은 사람들이 말렸다. 모든 것이 집중되어 있는 ‘살기 좋은 제주시’에 살 것이지 ‘왜 멀리 있는 서귀포시’로 가느냐고. 심지어 제주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 중에는 서귀포시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이도 많다. 왜 안 가봤냐고 물었더니 갈 일이 한 번도 없었단다. 지금은 서부산업도로, 5·16도로, 남조로 등 섬을 가로지르는 길이 뚫려서 교통이 편한 편인데, 30~40년 전 일주도로만 있을 때는 버스가 마을마다 거치다 보니 제주시에서 서귀포로 가려면 대여섯 시간은 기본으로 걸렸다고 한다. 도로가 새로 포장된 지금도 일주도로 버스 노선으로 가려면 2시간 넘게 걸린다.

홍창욱 <제주, 살아보니 어때?> 지은이
그럼에도 나는 왠지 모를 기득권을 포기하는 듯한 느낌으로 서귀포행을 결심했다. 마지막까지 그 선택이 옳은 것인지 고민했지만, 마침내 지난해 이사를 하고서야 탁월한 결정임을 깨달았다. 뛰어난 자연경관과 1년 내내 맑은 기상, 한적한 도로와 인심 좋은 사람들. 물론 아직까지 수많은 서귀포 엄마들이 아이를 낳으러 제주시로 가듯, 나 또한 일주일에 몇 번은 제주시로 향하지만 말이다.

홍창욱 <제주, 살아보니 어때?>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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