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양윤정의 패션을 부탁해
2008년 가수 장기하의 등장은 여러 면에서 신선하고 놀라웠다. 귀에 슬쩍 걸리는 독특한 창법, 기묘하게 어긋나는 멜로디와 박자, 생활밀착형 가사에 몹시 가내수공업적으로 완성된 음반은 단숨에 20~30대를 휘어잡았다. 그는 싸구려와 잉여를 부르짖으며 들어본 듯 들어보지 못한 듯한 오묘한 음악을 선보였고, 자기만큼이나 독특한 멤버 ‘얼굴들’로 구성된 록 밴드를 이끌고 있었는데, 동안은 아니지만 말끔한 외모에 어눌한 듯 할 말 다 하는 말솜씨도 예사롭지 않았다. 게다가 서울대 출신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놀람과 부러움이 더해졌다. 7년이 지났다. 장기하는 ‘인디계의 서태지’, ‘숨은 고수’, ‘인터넷 대세’로 시작해 지금 한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밴드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장기하의 데뷔부터 내가 심상치 않다고 여긴 것은 그의 음악과 잘 어울렸던 패션이다. ‘장기하와 얼굴들’은 표면적으로 록 밴드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1970년대 사운드에 쿵짝쿵짝 쉽게 발 박자가 맞춰지고 귀에 착착 감기는 복고풍이다. 이런 특징은 패션에도 잘 드러나 있다. 장기하에게서는 록 밴드 리드보컬 특유의 패션, 즉 꽉 끼는 가죽 블루종(등이 불룩하거나 길이가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점퍼)과 몹시도 반짝이는 은 액세서리, 긴 생머리를 찾아볼 수 없다. ‘싸구려 커피’를 부를 때다. 그는 단정하고 심플한 재킷이나 셔츠를 선택했는데, 심지어 셔츠의 단추를 목까지 채우고 넥타이도 마다하지 않았다. 거기에 검은색 플라스틱 프레임의 안경까지 더했다. 이런 그의 패션을 ‘복고풍 클래식’이라 부를 수 있겠는데, 막 제대하고 복학이라도 한 것 같은 그 모습은 사실 단정함을 넘어서 답답해 보이기도 했다. 패션만 놓고 보자면 직장인 록 밴드 같았다고 하면, 실례일까? 이 수상한 패션은 무언가, 라고 느낄 즈음 그가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답답한 모범생 옷차림으로,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내며 열창하는 모습은 대단한 반전이었다. 패션과 노래의 낯선 조합으로 장기하의 매력은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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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과 베이지가 섞인 하운드투스 체크 패턴(개의 이빨이 늘어선 것처럼 보이는 큰 체크 무늬)의 슈트를 선택한 장기하.
사진 <한국방송>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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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윤정 전 <데이즈드 앤 컨퓨즈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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