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11.18 20:33
수정 : 2015.11.19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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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 전통옷 키라와 고를 입은 행렬. 사진 김소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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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김소민의 부탄살이
지난 11일 새벽 5시30분, 해도 뜨기 전에 벌써 애를 둘러업은 가족들이 보였다. 길거리 개들도 놀라 짖어댔다. 벌써 늦었다. 창리미탕 스타디움 앞에 부탄 전통옷 키라와 고를 입은 행렬 끝이 아스라하다. 선착순 입장이다. 지금 왕의 아버지인 4대 국왕 지그메 싱기에 왕추크의 60살 생일 행사가 열리는 날이다.
몇 달 전부터 난리 북새통이었다. 내 직장 동료이자 여섯살짜리 딸을 둔 체링(35)은 한달 동안 퇴근하자마자 달려가 4대 왕에게 선사할 춤 연습을 했다. 누가 시킨 게 아니다. 한 고등학교에서는 아침 조회 시간마다 4대 왕의 업적에 대해 토론했다. 내가 다니는 체력훈련장엔 하루 운동 계획 옆에 “4대 왕의 생일을 맞아 반드시 운동량을 채우자”고 쓰여 있다. 한 신문에는 닭살 돋는 사설이 실리기도 했다. “그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꽃, 매일 물을 주지.” 그리고 그 모든 준비의 정점이 바로 이날이다.
나와 내게서 한국어를 배우는 부탄 친구 텐진(25)이 겨우 엉덩이 들이밀 공간을 발견했다. 행사 시작까지는 자그마치 3시간이나 남았다. 한참 조는데 텐진이 깨운다. 흰말을 앞세운 왕의 행렬이다. 왕에게만 허락되는 사프란 숄을 걸친 두 남자가 스타디움에 들어서자 모두 기립했다.
부탄 사람들은 왕을 강렬하게 사랑한다. 그런데 현 5대 왕이 40분 넘게 연설해버려 그 사랑을 시험에 들게 했다. 4대 왕의 업적을 조목조목 짚은 연설이었다. “16살이던 그가 왕위에 오른 1972년의 상황은 지금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옆에 앉은 가족이 부스럭부스럭 라면땅 과자를 꺼내 먹기 시작했다. 햇살이 쏟아지자 애들은 잠들었다. 운동장에 도열했던 백마가 자꾸 도망가려 했다. 관중은 말의 도피 행각에 더 집중했다. 막판에 5대 왕은 왕비의 임신 소식을 알려 백마한테서 주도권을 뺏었다.
모두 함께 왕을 위한 기도를 낭송한 뒤 춤이 이어졌다. 부탄 전통춤은 유연성 제로 막대기 몸에 최적화돼 있다. 거의 앞뒤로 왔다갔다만 한다. 학생팀, 직장여성팀에 부탄 소수민족인 네팔과 티베트 춤이 이어지는 사이 나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등받이가 없어 몇 번이나 뒤로 벌렁 넘어갈 뻔했다. 꿈결같이 텐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부탄 사람에게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왕 욕이다. 특히 4대 왕의 인기는 절대적이다. 왜냐. 하필이면 타시(36)에게 물었다. 그는 친절한데 말이 무지무지 많다. “4대 왕이야말로 최고의 사회사업가지. 그가 없었으면 우리가 어떻게 독립을 지켰겠어. 게다가 잘사는 사람들은 더 잘살고 못사는 사람들은 더 못살게 됐을 거야. 그리고 또 얼마나 검소하신지 몰라. 4대 왕 집에 가봐. 방 두 개밖에 없어. 그리고 항상 전통옷만 입으시지. 그리고 또….” 타시가 이렇게 침 튀기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는 21살에 양쪽 신장이 모두 고장났다. 기증자를 구했고 인도 병원에서 이식 수술을 받았다. 이 모든 비용은 부탄 정부가 냈다. 타시는 병원이 무료인 부탄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가난한 자기는 죽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무상의료를 강력하게 추진한 사람이 4대 왕이다.
내 한국어 학생 텐진에게도 물었다. “4대 왕이 없었으면 지금 부탄은 없어요. 학교 공짜로 만든 것도 4대 왕이에요.” 부탄 일간지 <쿠엔셀>을 보면, 1972년에 고등학교는 4개, 중학교는 15개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아동취학률이 90%다. 부탄에서 가난한 지역인 삼드룹 종칵에서 태어난 소남(47)은 처음 학교에 갔을 때를 기억한다. 이 지역에 학교가 들어선 건 1975년이었다. 정부 관료가 집집마다 돌며 학령기 애들을 찾았다. 부모들은 무서워 애들을 숨기기도 했다. 그렇게 집에서 하루 거리에 있는 학교에 가게 됐다. 학교 옆에 판잣집을 짓고 동네 애들이 함께 살았다. 마을 부모들이 돌아가며 판잣집에 머물며 애들을 돌봤다. “처음엔 흑판에 분필로 썼는데 몇 년 지나니 학교에서 밥이랑 책, 공책 다 줬지.” 무상교육에 무상의료라니, 혼이 정상이 아닌 왕이다.
1960년대 처음으로 세계에 빗장을 푼 부탄은 4대 왕 재위 기간 34년 동안 급속하게 발전했다. 1인당 국민소득은 1980년 325달러에서 2006년엔 1348달러로 뛰었다. 기대수명은 46살에서 66살로 늘었다. 국민총생산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총행복’이라고 주장한 것도 그다.
무엇보다 그는 왕정 좋다는 사람들에게 민주주의를 선물했다. 이 4대 왕은 2006년 스스로 왕좌에서 내려와버렸다. 왕의 정년도 65살로 정했다. “언제나 좋은 왕을 가질 거란 기대에 의지해 한 사람이 나라를 좌지우지하게 두는 것은 위험하다”며 헌법 초안을 마련했다. 당시 기사를 보면, 사람들은 충격 받았다. “그나마 위안은 그래도 왕이 우리 곁에 계실 거라는 거다.” 왕좌에서 내려온 그는 자전거 타는 남자가 됐다. 4대 왕의 뜻을 따라 5대 왕은 전통과 숲의 보호를 못박은 헌법을 공표하고 2008년 입헌군주제를 선포했다.
오후 1시께 스타디움 행사가 끝나고 비몽사몽 행렬에 밀려 나왔다. 시내 곳곳에서 다른 공연이 이어졌다. 젊은이들은 브레이크댄스를 추고 4대 왕에게 바치는 랩을 했다. “카딘체(고맙습니다). 카카카카카딘체.”
김소민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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