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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1.18 20:54 수정 : 2015.11.19 14:53

11월12일 경기 고양시 로얄새들 승마장 원형마장에서 올봄 승마에 입문한 김진영(25·대학원생)씨가 속보를 연습하고 있다. 김씨는 “나를 위해 말을 타는 게 아니라, 말을 위해 탄다는 마음을 가지면 말이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승마 대중화시대
말과 교감하는 레포츠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건강은 물론 양보·배려 배운 것도 큰 소득”

쯧쯧쯧, 끌끌끌…. 혀 차는 소리다. 꽉 막힌, 불통의 세상이 답답하고 기가 차서 혀를 차는 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소리는 소통의 언어다. 말에게 출발을 알리는 ‘부조’(발진신호)의 하나로 쓰인다. 말은 온순한 동물이지만, ‘가자! 이랴, 낄낄!’ 식의 일방적 명령으로는 통하지 않는다. 정해진 룰과 원칙에 충실한 동물이다. 그러니, 형식과 내용이 따로 노는 이른바 ‘유체이탈식 화법’도 좋아하지 않는다. 피부로 접촉하고 교감하며 대화하는 걸 좋아한다. 매만지고 쓰다듬고 토닥토닥해주며 신호를 보내면 웬만한 말귀 다 알아듣는다. 이게 승마의 기본이란다. “대화하고 소통하지 않으면 낙마하는 수가 있다”고, 말 좀 아는 이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승마가 ‘교감의 레포츠’로 불리는 이유다.

말을 통해 소통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늘고 있는 걸까. 인간과 동물이 서로 교감하며 즐기는 유일한 운동이라는 승마가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대중화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고 한다. 서양 사람들이나, 돈 많은 국내 일부 계층이 즐기는 ‘귀족 레저’로 인식돼온 승마가 일반인들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거다. 승마가 생활 레저의 하나로 떠오르고 있는 건, 유명 관광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체험승마 시설들과 전국 곳곳에 새로 들어서고 있는 승마장, 그리고 도시 한복판에서도 벌어지는 승마페스티벌 등에서 체감할 수 있다. 한 승마장 교관은 “승마장 수가 몇천개씩 되는 선진국과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우리도 여가활동이 다양해지면서 최근 승마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는 걸 느낀다”고 했다. 승마가 무엇이고 어떤 매력이 있는지, 우리 곁에 어디까지 와 있는지, 그리고 초보자들은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등을 알아봤다.

대표적인 ‘귀족 레저’에서
누구나 쉽게 접하는 ‘생활 레저’로
근육·유산소운동 결합된 전신운동
1회 체험에 2만~10만원대 다양

평민들에게 다가오는 ‘귀족 놀이’ 승마

지난달 25일 오전 경기 고양 일산 호수공원 한울광장. 승마클럽별로 팀을 이뤄 참가한 초·중학생들의 코스프레 마장마술 경기가 한창이다. 신랑·신부 차림, 동물 모습 등 다양한 옷차림의 어린이들이 말을 타고 등장해 걷고 달리고 멈춰서며, 음악과 스토리가 있는 승마 기술을 펼쳐 보였다. 경기 진행 방식과 기술 등을 토크쇼 형식으로 설명하는 장내방송도 흥미로웠다. 경기 뒤 관중에게 인사할 땐 말도 함께 고개를 숙여 박수를 받았다. ‘보고 즐기는 승마종합축제’를 내건 제2회 코리아승마페스티벌(10월23~25일)의 한 장면이다. 국내에서 일반인 대상으로 펼치는 유일한 말 축제이자, 도심 속에서 벌어진 첫 승마 행사다. 지켜보던 한 40대 주민은 “이런 행사가 있는 줄 모르고 공원을 산책하다 들어와 보게 됐다”며 “승마 하면 달리고 장애물 넘고 하는 걸로만 알았는데, 이렇게도 탄다는 걸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승마페스티벌을 주최한 ㈔승마인 박윤경 대표는 “승마를 일반인들이 보고 즐기는 스포츠로 활성화해보자는 취지에서 축제를 열고 있다”며 “지난해보다 관람객이 크게 늘었고 호응도도 훨씬 높아졌다”고 말했다.

승마페스티벌에 나선 어린이들이 선수급의 숙련자들이라면, 지난 11일 강원 홍천 소노펠리체 승마장의 실내마장에서 만난 어린이들은 초보자였다. 부잣집 자녀들이 아닌 평범한 시골 어린이들이다. “몸을 곧게 펴고, 일어났다 앉았다 리듬을 타보세요.” 어린이들이 교관의 설명에 따라 초보 승마기술의 하나인 경속보를 배우고 있다. 몸집이 다소 작은 유럽산 품종 포니의 말안장에 올라앉아 고삐를 움켜쥔 아이들의 자세에선 긴장감이 묻어난다. 하지만 말과 함께 호흡하며 즐기는 낯빛이 뚜렷했다. “말이 지시를 잘 따라주었을 땐 천천히 목덜미를 쓰다듬어주면 좋아해요.” 홍천 서면 대곡초등학교 전교생(16명) 어린이들이 한국마사회 지원 프로그램을 통한 특별활동의 하나로 지난해에 이어 2년째 승마를 배우는 중이다. 자신이 탈 차례를 기다리던 신동임(11)양은 “말의 눈이 정말 예쁘고 매일 말을 만지고 싶다”며 “속보로 탈 때가 진짜 재미있다”고 했다.

승마의 매력에 빠져드는 사람들

승마가 대체 어떤 운동이기에 한번 빠져들면 누구나 ‘애마 부인’, ‘애마 아저씨’, ‘애마 어린이’가 되고 만다는 걸까. 소노펠리체 승마장 한원탁 팀장은 “승마는 한마디로 근육운동과 유산소운동이 결합된 전신운동으로, 동물과의 교감을 통해 정서적 안정까지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운동”이라고 말했다. 체형교정·혈액순환·변비·다이어트는 물론이고 우울증·자폐증 등 심리치료에도 효과가 있다는 게 승마인들의 한결같은 대답이다.

로얄새들 승마장의 마사.
흔히 승마를 ‘말을 길들여 타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말 타는 이들의 말은 다르다. “승마는 말과 사람이 서로에게 길들여져야 하는 운동이죠. 타는 대상물로만 인식하던 사람 처지에선, 오히려 한발 물러서서 말의 생각을 이해하고 존중해야 합니다.”(로얄새들 승마장 박성재 계장) 승마에 빠져들기 시작한 이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지난 12일 경기 고양 로얄새들 승마장에서 만난 김진영(25·대학원생)씨는 올해 들어 입문해 중급자 수준에 이른 여성이다. 그는 유럽산 품종인 웜블러드를 타고 구보를 연습중이었다. “오늘이 51번째 기승인데, 이제 말이라는 동물을 조금 알 것 같아요.” 승마를 배운 뒤 성격이 많이 느긋해졌다는 김씨는 “승마 기술은 말과의 ‘밀당(밀고 당기기) 기술’이란 걸 알게 됐다”고 했다. 김씨는 “심신이 가뿐해진 것뿐 아니라, 양보하고 기다리고 배려하는 태도를 배운 게 큰 소득”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기꺼운 마음으로 말에게 길들여져가고 있는 셈이다.

말을 만나 일상생활이 바뀌었다는 이도 있었다. “강아지든 뭐든 동물 자체가 무섭고 싫었다”는 하순선(59·주부·서울 성수동)씨는 “말을 만나고부터 모든 게 바뀌었다”고 했다. 젊었을 때 배드민턴 선수로 활동하며 다양한 운동을 접해봤다는 그는 “그 어떤 운동과도 비교할 수 없는 행복감을 주는 게 승마”라고 말했다. “매주 말을 만난다는 생각에 일주일이 정말 활기차고 행복해졌어요.” 몸무게가 줄면서 몸이 한결 유연해지고 하체 근육도 훨씬 강해졌다고 한다.

로얄새들 승마장 양형규 팀장은 “몇년 전만 해도 ‘나도 승마한다’는 식의 과시성 초보자들이 많았지만, 이젠 건강과 체형관리 등 구체적인 목표를 정해 찾아오는 이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초보자는 어디서 어떻게 배우나

최근 몇년 새 승마장 수가 크게 늘어나 초보자 선택의 폭도 넓어졌다. 2014년 말 기준으로 전국에 395곳의 승마장이 들어서 있다.(한국마사회 자료) 체시법(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른 승마장(190곳)과 농어촌 체험승마시설(109곳) 등 신고 승마장과 미신고 승마장(96곳)을 합한 수치다.

전문가들은 초보자들이 승마장을 선택할 땐 집에서 가까운 곳을 고르되, 인가된 승마장인지, 자격증을 갖춘 교관(코치)을 보유하고 있는지, 그리고 배상책임보험에 가입했는지 등을 따져보라고 권한다. 이용료(강습료)는 승마장 시설이나 정해진 시간(1회 30~45분)에 따라 다른데, 대체로 1회 체험에 2만원대부터 10만원대까지 다양하다.

한 승마장 교관은 “입문할 땐 먼저 1회 쿠폰을 사 체험승마를 해본 뒤 승마가 자신에게 맞는 운동인지 판단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이용권은 강습을 포함해 10회권·20회권 등 쿠폰이나 기간 기준으로 판다. 초보 체험자들이 승마를 위해 준비해야 할 장비는 없다. 필수 안전장비인 안전모·안전재킷·챕스(각반) 등을 승마장에서 빌려준다.

우리나라 레저승마 수준은 어디?

대중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여가활동으로서의 우리 승마 수준은 어디까지 와 있는 걸까. 한국마사회 자료를 보면 국내 승마장 수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395곳이다. 승마장을 정기적으로 이용하는 승마 인구는 약 4만명, 말을 타본 경험이 있는 승마체험 인구는 77만여명으로 추산한다. 말 사육 마릿수는 2만5819마리로, 이 중 승용마가 35.4%이고, 나머지는 경마용(30.4%)·번식용(16.5%) 등이다. 국내 승마장 수가 급증하고 승마 인구도 늘었다고 하지만, 유럽 등 승마 선진국에 비하면 걸음마 수준이다. 승마장 7500여곳에 승마 인구가 150만명에 이르는 프랑스나, 승마장 7600여곳, 승마 인구 170만명의 독일의 경우, 말 산업 규모 자체가 다르다. 말 사육 마릿수가 각각 100만마리를 헤아린다고 한다. 8만여마리의 말을 보유한 일본도 승마장 수가 1000곳에 이르고, 연간 135만명 이상이 승마클럽을 이용한다.

한 승마인은 “우리나라 말 산업은 경마 중심으로, 경마 수익의 90%가 다시 경마로 투입되는 게 현실”이라며 “말 산업 규모가 커지려면 승마장 확충 등을 통한 승마 대중화가 필요하고, 이와 함께 말의 거래가 활발하게 일어나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천 고양/글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사진·영상 조소영 피디 azu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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