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홍창욱 제공
|
[매거진 esc] 홍창욱의 제주살이
건널 제(濟)에 고을 주(州). 요즘에야 ‘구제하다’, ‘성하다’, ‘더하다’라는 긍정적 의미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제주는 육지 관점에서 보자면 바다를 건너야 하는 ‘먼 나라’ 땅이었다. 6년 전 제주행을 결심했을 때도 어머니는 “내가 갑자기 아프기라도 하면 어떻게 창원까지 오려고 멀리 제주까지 가냐”는 이야기를 하셨다. 지금은 아침에 육지 공항에서 출발해 점심 미팅을 하고 남는 오후 시간엔 드라이브까지 할 정도로 가까운 곳이 된 제주. 여행용 캐리어를 끌고 비행기를 타는 기분은 어떤 면에선 ‘해외여행’ 같은 특별함을 선사한다. 요즘 제주로 많은 사람들이 이주하는 이유에는, 해외로 이민을 가고 싶은 심정이지만 타국에 비해 정착하기 쉽고, 육지와는 풍광이 다르며, 비행기를 타고 육지를 오가는 특별한 경험이 고려되었을 것이다. 오랜 기간 제주는 배편으로만 육지와 연결되었고, 기상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바다를 건너다 죽거나 표류하기도 하고 특정 시기엔 출륙금지령까지 내려 제주 사람들은 ‘섬’에 고립된 채로 수백년을 살아왔다. 그런 여망 때문인지 설문대할망 신화는 육지와 연결하고픈 제주 사람들의 의지와 좌절을 그대로 드러낸다. 광목 한 필이 모자라 육지와 다리를 놓는 데 실패한 제주 사람들과 그들의 소원을 뿌리친 제주의 거대여신 설문대할망. 세월이 한참 흐른 21세기인데도 제주는 바람과 안개 같은 기상 영향으로 항공기 결항·지연이 빈번히 발생한다. 어떻게든 결심한 것을 이루고야 마는 현대인이 고작 바람과 안개 때문에 섬에 발이 묶이다니. 처음에 제주에 왔을 때 육지 생활을 경험한 제주 출신의 지인에게서 “밤에 불 꺼진 공항을 보면 섬에 고립된 것 같아 답답함을 느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제주가 서울의 3배나 되는 크기인데 왜 답답할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마도 그 답답함의 이유는 제주가 돈이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만능 서비스의 대도시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가끔 지역 언론을 통해 육지와 연결하는 교통편에 대한 다양한 이슈를 접하게 된다. 전남과 제주를 다리로 연결하겠다는 이야기를 몇 년 전 뉴스로 처음 접했을 때 혹시나 실행이 되면 안 되는데 하며 혼자서 조마조마했다. ‘섬’의 매력은 아무나, 어느 때고 이곳을 밟을 수는 없다는 ‘한계’에서 오는 것이고, 그 제한에 이끌려 많은 사람들이 제주로 향하기 때문이다. 늘 그 자리에 있어 언제든 볼 수 있는 한라산이 아니라, 갈 때마다 안개로 인해 얼굴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 한라산의 ‘자존심’이 제주를 다시 찾게 만든다. 물론 이는 오랫동안 설문대할망과 함께 살아온 제주 선주민의 생각이 아니라 고작 몇 년 제주를 알아온 이주민의 생각이다. 6년간 제주 생활을 하며 느끼는 아쉬운 점 중 하나는 비행기를 타는 특별한 경험이 자주 육지를 오가는 서민 처지에서는 부담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지난해 둘째를 출산하기 위해 전주 처가에 있던 아내를 보러 매주 제주~군산 공항을 오갔다. 예쁘게 화장하고 옷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환하게 웃는 승무원과 그가 따라 주는 주스 한 잔이 없더라면 조금이라도 경비를 아낄 수 있지 않을까. 도민에게 30%를 할인해주는 혜택도 저가항공이 들어서면서 10~15%로 줄고, 빈 시간대를 이용하면 할인폭이 커지지만 중복할인이 안 되면서 사실상 도민 할인 혜택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
홍창욱 <제주, 살아보니 어때?> 지은이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