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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2.02 19:10 수정 : 2015.12.03 10:07

풉 도지 스님. 사진 김소민 제공

[매거진 esc] 김소민의 부탄살이

이 청년들은 산양 같다. 해발 3000m에 난데없이 축구 골대가 등장했다. 선수는 스님들이다. 아래만 승복이고 위에는 브라질 대표팀 티셔츠 따위를 걸쳤다. 풉 도지(18) 스님은 축구화가 한짝뿐이다. 친구 스님과 나눠 신는다. “어차피 이쪽 발로만 공 차는데요, 뭐.” 그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광팬이다. 이 축구장에서 산자락을 좀더 타면 일종의 스님 고등학교인 도르지닥 절이 나온다. 거기 소속 청소년 스님 200여명은 주말을 이곳에서 틀니 같은 실밥이 겨우 붙들고 있는 축구공과 함께 난다. 너무 뻥 찼다간 공이 깎아지른 비탈을 타고 굴러떨어진다. 딱 하나밖에 없는 공이다. 청소년 스님 장딴지 근육 팽팽해진다. 그 가파른 길을 축지해 공을 건진다. 거의 소림 축구다.

청년 스님들은 한국 직장인만큼 주말을 기다린다. 평일은 빡빡하다. 새벽 4시 기상, 두시간 동안 아침 기도, 6시부터 8시까지 공부, 아침밥은 차로 때운다. 그 뒤에 주구장창 수업이 밤 10시까지 이어진다. 경전뿐 아니라 영어도 배운다. 중간·기말 시험도 보는데, 낙제하면 그 과목 다시 들어야 한다. 고등학교 졸업하면 5~6년 걸리는 대학이 버티고 있고, 그걸 마치면 3년 독방에서 홀로 명상한다. 그 명상 기간엔 세수도 마음대로 못한다. 어차피 혼자인데 그냥 자버리면 어떠냐니까 그 과정을 다 거친 교감 선생님 소남 스님이 그런다. “지도 스님이 기가 막히게 알아차린다니까.” 그렇게 버티면 라마가 된다. 뭐가 좋냐니까 소남 스님이 상 앞에 놓인 설탕을 보고 그런다. “이걸 갖고 싶다 쳐봐. 3년 그렇게 지내고 나면 뭘 갖고 싶다는 생각에서 좀더 자유로워지지.” 누구는 가지려고 죽도록 공부하고 누구는 가지고 싶은 마음을 버리려고 죽도록 공부한다.

2학년 우겐(21) 스님은 스마트폰을 달고 산다. 몰래몰래 보는 거 다 들켰다. 경전 밑에 숨겨두고 볼 때도 있다. 보통 학교를 다니다 1년 전에 머리 깎았다. 그렇게 세상이 궁금하면 왜 들어왔나. 그래도 여기가 좋단다. “새, 바람 소리만 들리는 밤이 얼마나 평화로운지 몰라요. 도시가 그리운 적 한번도 없어요. (진짜일까? 휴대폰 충전이 빵빵한데.) 세상 모든 생물들을 위해 명상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세상사에서 벗어나 도를 닦는 게 얼마나 자유로운지 몰라요. 얽매는 게 없고 걱정이 없잖아요. 어릴 때부터 스님이 멋있게 보였어요. 다음 생에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도 있고 부모님에게도 좋은 일이에요.” 우겐 스님은 새벽 4시에 칼같이 일어나야 하는 곳에서 더 자유롭단다.

왜 일요일이 ‘주일’이 됐는지 뭔 상관인가. 늦잠 잔 스님들 얼굴이 해사하다. 주말엔 7시까지 잘 수 있다. 게다가, 텔레비전 시청이 가능하다. 토요일 밤 점호, 엄숙하다. 교감 선생님 소남 스님은 말 한마디 않고 버티고 있다. 이 순간만 넘기면 풉 도지 스님은 호날두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 도르지닥 절엔 텔레비전 방이 네곳 있다. 할리우드 영화, 인도 오락 방송, 축구, 뉴스 등을 트는 방인데 당연히 뉴스방은 텅텅 비었다. 축구방은 북새통이다. 우겐 스님이 그런다. “인도 오락 방송 중에 <인디아 갓 탤런트>라고 있어요. 오디션 프로그램인데 스님들마다 다 미는 참가자가 한명씩은 있다니까요.” 우겐 스님은 할리우드 영화방 일편단심이다. “<타이타닉>과 <해리 포터>를 좋아해요. <타이타닉>은 10번도 넘게 봤어요. 러브스토리가 정말 감동적이지 않아요?”

일요일 아침, 안개 사이로 흰 랑구르 원숭이 몇 마리가 나무에 매달려 있다. 한 스님이 앉아 과자로 원숭이를 약올렸다. 아침 기도 시간이 지나면 일종의 장기자랑 대회가 열리고 그다음엔 오매불망 축구다. 도지 스님은 아끼는 가죽재킷을 꺼내 입었다. 인도 국경마을에서 넘어온 거라는데 표면이 현무암처럼 닳았다. 까까머리 이등병 같은 스님들이 큰 대야에 버터차를 끓이고 식빵을 뜯어 먹으며 축구를 봤다. 햇살이 노곤하니 개 한 마리 앉아 뒷다리로 옆구리를 긁었다.

이 축구 경기를 호화판 좌석에서 지켜보는 스님이 한명 있다. 호화판이란 건 흙바닥은 같은데 그 옆의 다른 스님이 우산으로 해를 가려주기 때문이다. 이 스님은 혼자 노란색 승복을 둘렀는데 볼이 오동통하다. 10살인데 보통 꼬마가 아니다. 린포체다. 어느 큰스님의 환생이란다. 세살 때 판명 났다. 우산 씌워주는 거 말고 이 꼬마를 봐주는 건 별로 없다. 공부도 형들과 똑같이 한다. 꼬마한테 말을 거니까 얼굴이 더 붉어졌다. 취미가 뭐냐니까 아주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만화영화 보는 거예요.” “무슨 만화?” 한참 망설이더니 눈을 내리깔고 말했다. “동물 나오는 거요.” 옆에서 수행하는 우산 스님이 보탰다. “그러니까 <톰과 제리> 같은 거죠.” 나랑 함께 간 빅토리아는 이 꼬마 린포체가 축복을 해주려고 손을 올린 걸 하이파이브 하자는 얘긴 줄 알고 주먹으로 받아쳤다가 옆의 우산 스님한테 한 소리 듣고 말았다.

이 보통 청년 스님들에게 왜 기도하고 공부하냐 물으면 답은 거의 똑같다. “만물을 위해서.” 그 기도가 대체 만물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 잘 모른다. 중요한 건 나도 너도 그 만물 가운데 하나라는 거다. 이 청년 스님들은 아무 이유 없이 그날 밤 우리 일행의 이부자리를 봐줬고 낡은 부엌에서 밥을 해줬고 차를 따라줬다. 꼬마 린포체는 축복한 색실을 주며 우리를 보호해줄 거라고 했다. 든든했다. 이 축구광 스님들의 조건 없는 ‘기도빽’이 있으니까.

김소민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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