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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2.02 20:28 수정 : 2015.12.03 10:04

[매거진 esc] 양윤정의 패션을 부탁해

마른 여자에 대한 로망이 강해서인지 나는 육감적인 여자에 대한 미감은 현저히 떨어지는 편이다. 건강하다든가 섹시하다든가 하는 느낌이 내게는 ‘둔하다’의 다른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여 건강 미인으로 꼽히는 김혜수는 나의 레이더에 걸리지 않는 여배우다. 하지만 매년 11월만은 다르다. 이때 열리는 청룡영화제에서 그녀가 보여주는 스타일링은 꼭 챙겨 보게 된다. 올해도 역시, 김혜수는 진정한 ‘드레스 여신’이었다.

1994년 청룡영화제에서의 김혜수. 양윤정 제공
여배우들의 ‘시상식 드레스 역사’는 김혜수 등장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1994년 시작부터 ‘넘사벽’ 드레스를 선택했던 김혜수. 당시 짧은 쇼트커트에 금빛 튜브 톱 드레스(마치 인어를 연상시키는 소재의)와 팔꿈치까지 올라오는 긴 장갑을 낀 스타일링은 파격 그 자체였다. 이전까지 여배우들은 시상식에 주로 앙드레 김의 예복, 벨벳처럼 고급스러워 보이는 소재의 재킷이나 원피스, 또는 한복을 선택했다. 드레스는 거의 웨딩드레스에 가까워 시상식이라기엔 과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지만 김혜수는 달랐고, 그녀의 드레스는 매년 더 대담해졌다. 주로 풍만한 상체를 당당하게 강조하는 디자인이었다. 팔과 어깨를 고스란히 내놓는 것은 기본, 가슴골을 훤히 드러내거나 가까스로 유두를 가린 드레스도 서슴지 않았다. 시스루 소재의 드레스로 아슬아슬함의 극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김혜수의 과감함에 힘입어 이후 여배우들은 앞다투어 자신의 매력을 드레스를 통해 어필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레드카펫 위 드레스’를 즐기게 된 셈이다.

2015년 청룡영화제에서의 김혜수. 양윤정 제공
올해 김혜수의 청룡영화제 1부 룩은 블랙 롱 드레스. 가슴 라인이 살짝 보이는 네크라인에 파워숄더를 연상시키는 어깨 라인이 매력적이다. 2부에서도 같은 블랙 컬러, 대신 한쪽 어깨를 드러내는 원숄더 디자인을 골랐다. 검은색이 주는 무거움을 덜어내기 위해 선택한 목걸이와 팔찌, 반지는 청룡영화제가 축제임을 상기시켜주기에 충분했다. 김혜수에게 당연히 기대하게 되었던 과감한 노출은 없었다. 그렇지만 이전보다 살짝 마른 듯한 몸매가 은근히 드러나는 실루엣, 심플한 쇼트헤어는 그녀를 ‘지적으로 섹시하게’ 보이게 만들었다. 더이상 육감적인 섹시함은 김혜수에게 기대할 바가 아니지 않은가. 청룡영화제 22년차 사회자이자 데뷔 30년차 여배우의 노련함과 원숙한 아름다움을 드러내기에 훌륭한 선택이었다.

양윤정 전 <데이즈드 앤 컨퓨즈드> 편집장
청룡영화제는 여배우들의 드레스 전쟁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배우들은 이날 하루를 위해 몇달 전부터 드레스를 고르고 또 고른다. 스타일리스트들은 독특한 드레스를 찾느라 자체 제작은 물론, 해외에서 직접 공수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생방송이 나가자마자 누리꾼들과 기자들은 베스트·워스트 드레서를 선정하고, 그에 따라 댓글도 폭주한다. 남들은 북새통을 이루는 사이, 언제나 고고하게도 김혜수의 드레스는 환하게 빛난다. 그것은 그가 이미지, 취향, 몸매의 장점을 고스란히 반영해 자신의 매력을 극대화시켜줄 수 있는 드레스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나는 노출에 대한 악성 댓글이나 비난에도 불구하고 패션에 대한 소신과 자신감을 잃지 않는 그의 태도에도 손을 들어주고 싶다. 그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의 높은 노출 수위에 대해 “옷이라는 것은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것인데, 그런 걸 나랑 좀 달라도 그대로 봐줄 수 있는 여유를 갖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무척 동의한다.

양윤정 전 <데이즈드 앤 컨퓨즈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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