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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2.16 19:11 수정 : 2015.12.17 10:08

이정국 기자가 서울 강북구 우이동 코오롱등산학교에서 실내 빙벽을 체험하고 있다.

[매거진 esc] 라이프
황정민 등 영화 ‘히말라야’ 배우들이 훈련한 높이 20m 실내 빙벽에 이정국 기자 매달리다

16일 개봉한 영화 <히말라야>는 해발 8750m 에베레스트에 묻힌 후배 대원을 구하러 가는 ‘휴먼 원정대’를 그린 실화다. 황정민, 정우, 김인권, 라미란 등 배우들은 실감나는 연기를 위해 전문 산악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원정대에 참여했던 김미곤 대장이 훈련을 맡았는데, “배우들이 무서움을 어떻게든 극복하고 자기 스스로 해내려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자연조건에서 훈련이 어려운 까닭에 배우들은 실내 빙벽장을 이용했다. 취미생활로 실내 암벽을 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실내 암벽장은 지역마다 심심찮게 볼 수 있지만, 실내 빙벽장은 전국에서 단 한곳뿐이다. 바로 서울 우이동 북한산 국립공원 초입에 자리잡은 코오롱등산학교 교육센터다. 영화 개봉에 맞춰 높이 20m로 기네스북에 오른 세계 최대 실내 빙벽장 체험에 기자가 나섰다.

영화 <히말라야>에 출연한 배우 김인권(오른쪽)의 실내 빙벽 훈련 모습.

다리 힘으로 올라야 하는데
턱걸이 하듯 팔 힘 쓰다 탈진
다음날 온몸이 욱신욱신
며칠 지나 ‘다시 도전해볼까’

지난 11일 오후 겨울비가 내리는 스산한 날씨에 등산학교에 도착했다. 김성기 팀장이 ‘정신교육’부터 시킨다. “단순한 체험에 머무르지 말고, 내가 왜 이것을 하는지, 또 하고 나서 무엇을 얻었는지 설명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행위를 설명할 수 있으면 그게 바로 전문가입니다.” 일반인들은 보통 빙벽을 ‘전문가나 하는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는 설명이었다.

“옷 가져오셨나요?” 김 팀장이 물었다. 가방에서 삼선 트레이닝 바지를 꺼내자 그는 “이거 입으면 얼어 죽습니다” 했다. 고어텍스 재킷과 기모 바지를 빌려 입은 뒤 지하 3층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자, 냉동창고에나 있을 법한 큰 철문이 보였다. 문 안쪽이 매우 춥다는 걸 직감했다. 먼저 장비를 장착했다. 장비는 빙벽화와 크램폰(등산화 밑창에 미끄럼 방지를 위해 덧대는 금속물. 보통 아이젠이라 부름), 아이스툴(손에 쥐고 얼음을 찍는 손도끼 모양의 도구), 헬멧과 안전벨트 정도다. 대여료 1만5000원을 내면 장비 일체를 빌릴 수 있다.

두꺼운 철문을 열자 “아이쿠 추워” 소리가 절로 나왔다. 영화 13도였다. 여름에 오면 피서가 따로 없을 것 같았다. 우선 높이 8m 연습용 빙벽 앞에 섰다. 경력 11년의 김한진 강사가 시범을 보였다. 에너지 소모가 가장 적은 ‘엑스보디’ 자세가 초보자에게 맞다고 했다. 뒤에서 보면 몸이 X자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강사가 날렵하게 얼음을 찍어 성큼성큼 빙벽을 올라갔다. 쉬워 보였다. “팔에 최대한 힘을 빼고, 하체의 힘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이다. 어떤 스포츠든 “하체를 써야 한다”고 말한다. 야구에서 팔이 빠져라 던지는 투수에게도 “하체를 써야 한다”고 늘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이스툴로 얼음을 내리쳤다. 어라! 잘 안 박힌다. “힘을 빼고 스냅으로 내리치세요.” 말처럼 잘 안됐다. 콘크리트에 못질하는 것처럼 몇번 내리치니 겨우 박혔다. 오르기 전부터 팔힘이 빠지는 것 같았다. 양손의 아이스툴로 망치질(타격)을 하고 나선 ‘키킹’(발로 차 크램폰을 빙벽에 박는 것)을 해야 한다. 사실상 발가락으로 지탱하는 셈이다. 뒤에서 보면 흡사 나무 사이를 오가는 오랑우탄처럼 보인다. 하체는 구부정하고 팔은 축 늘어져서 매달려 있다. 양팔과 양다리를 고정한 뒤 하체 힘을 이용해 일어나야 한다. 아뿔싸, 하체 힘을 이용해야 하는데, 팔로 잡아당기고 말았다. 마치 턱걸이처럼 말이다. 초보자가 가장 많이 하는 실수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하지만 몇번 하다 보니 팔에 완전히 힘이 빠졌다. 턱걸이를 계속할 순 없는 노릇이다. 중간에 “아이고, 팔에 힘이 빠졌어요”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한 3m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내려오는 건 더 힘들었다. 팔에 힘이 더 많이 들어갔다. “내려오는 게 더 힘드네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더니 강사는 “그래서 내려올 땐 그냥 로프 타고 내려옵니다”라며 웃는다. 일주일은 해야 자세가 겨우 잡힌단다. 연습을 마치고 쉬는데 팔이 덜덜 떨렸다. 그 추운 곳에서 온몸에 땀이 뻘뻘 났다.

에너지 소모가 적어 초보자에게 알맞은 ‘엑스보디’ 자세를 취한 이정국 기자.
본격적으로 20m 빙벽 앞에 섰다. 지하 3층부터 지상 4층까지 이어져 있는 높이를 올려다보니 까마득했다. 안전을 위해 로프를 맸다. 쉬는 동안 팔의 힘은 회복되지 않았다. 특히 악력을 담당하는 전완근의 힘이 필요한데, 일반인은 잘 쓰지 않는 근육이라 견디기 힘들었다. 얼마 올라가지도 않았는데 아래를 보니 등골이 오싹했다. 2톤 무게를 견디는 로프가 묶여 있는데도 공포감이 밀려왔다. 문득 실제 상황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혹여 떨어질까봐 죽기 살기로 매달려 있는 동안 팔에 힘은 점점 빠져갔다. 내 몸 하나 지탱 못하는 저질 근육이 창피하기까지 했다. “그냥 내려오세요.” 강사가 소리쳤다. 내려오는 게 더 힘든데 어쩌라고. “팔다리 다 떼고 편하게 로프에 몸을 의지하세요.” 강사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눈을 질끈 감고 팔다리를 놓았다. 잠시 몸이 떨어지는 듯하더니 로프에 튕기는 느낌이 들면서 멈춰섰다. 살았다!

결국 20m 중 채 3m도 못 올라가 로프에 의지한 채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바닥에 닿았는데도 이미 풀린 팔다리 때문에 술 취한 사람처럼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올려다보니 빙벽엔 제대로 박히지도 못한 아이스툴이 덜렁덜렁 매달려 있었다. 강사가 아이스툴을 빼기 위해 올라가는 뒷모습을 보니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힘 안 드세요?” 물으니 “살을 좀 빼시면 될 것 같아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왜 이 힘든 걸 할까? 김 강사는 “어려운 코스를 올랐을 때 쾌감이 있어요. 어려운 문제를 풀었을 때 느낌하고 비슷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체험 뒤 며칠 몸살을 앓았다. 체험 땐 팔만 아팠는데, 하루 자고 나니 허리, 배, 허벅지 등 온몸이 다 쑤셨다. 그야말로 전신운동이었다.

며칠 뒤 서서히 몸이 풀리자, 다시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일단 지루할 틈 없는 운동이고, 목적이 분명하다는 장점이 있다. 일반인도 충분히 도전해볼 만한 분야다. 대한산악연맹에 따르면 현재 국내 빙벽 인구는 1만여명이다. 확장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렇다고 일반인들이 무작정 자연 빙벽에 도전하는 건 목숨을 내놓는 일이다. 일단 등산학교 누리집(www.kolonschool.com)에서 교육 정보와 비용 등을 검색하는 것이 첫걸음이다. 여러 과정이 있는데, 강습과 장비대여를 포함한 1일 체험반(3시간)의 경우 6만5000원이다.

실제 전문가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내년 1월15일부터 국제산악연맹, 아시아산악연맹, 대한산악연맹 공동주최로 경북 청송군 얼음골에서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과 아시아선수권대회가 열린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사진 씨제이이앤엠 제공, 장소·장비 협조 코오롱등산학교, 의류 협조 코오롱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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