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패밀리사이트

  • 한겨레21
  • 씨네21
  • 이코노미인사이트
회원가입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5.12.16 19:35 수정 : 2015.12.17 10:13

[매거진 esc] 김소민의 부탄살이

부탄 수도 팀푸에서 만나기 힘든 건 물건이다. 여섯달 동안 전신거울을 못 샀다. 만나기 쉬운 건 사람이다. 이 낯선 땅에 도착하고 일주일 지나자 길 나서면 여기저기 내 이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디 가?” 이래저래 안면이 팝콘 터지듯 터지는 곳이다. 인구 8만명 정도인 이 수도 주민들은 한두 다리 걸치면 다 아는 사이인가 보다.

영혼의 창자를 꺼내 보이는 사이와 ‘밥 먹었냐?’ 따위 인사 하는 엷은 일상의 네트워크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면, 한때 외로움계의 숨은 고수였던 나는 후자를 택하겠다. 일단 배가 불러야 반찬 투정 하는 거다. 외롭지 않으려면 ‘인간’과 접촉하는 일정 면적이 확보되어야 한다. 거기엔 동네 가게 주인, 옆집 애들과 그 개들도 포함된다.

팀푸에선 그 면적 확보하는 게 거울 사는 것보다 쉬웠다. 집 앞 골목에 동네 꼬마(8)가 머리에 꽃을 꽂고 앉아 있었다. “거기서 뭐 해?” “꽃하고 얘기해요.” “왜 꽃하고 놀아?” “친구가 없어요.” 순 뻥이란 건 이튿날 밝혀졌다. 우리집 문을 두드리기에 열어봤더니 어제 꽃아기다. 땟국물이 흐르는 애들 다섯명 줄줄이 데려왔다. 주소도 안 가르쳐줬는데 알아냈다. 정신이 혼미했다. 어떤 애는 갑자기 자기 공책을 보여주며 몇점 맞았는지 자랑하고, 다른 애는 만지지 말라는데도 태블릿피시를 탐했고, 다른 애들은 어딨는지도 모르겠다. 이 허리케인 애들은 저녁밥 먹을 때가 되자 다시 꽃소녀들로 돌아가 얌전히 흩어졌다. 그 다음날 집에 돌아오니 현관문 밑으로 그림 하나가 끼워져 있었다. 팔다리로 보이는 선 네 개에 머리로 보이는 동그라미 하나다. 그 아래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안티.’(이모, 고모, 아줌마)

사진 김소민 제공
그렇게 오다가다 만나는 사이다. 한번은 길을 잃어 무작정 걷다 한 손으로 연신 기도바퀴를 돌리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만났다. 신발은 슬리퍼였고 발톱은 새카맸다. 한 할아버지는 종카어로 연신 말을 걸더니 손을 내밀었다. 엉겁결에 악수하니까 할아버지가 웃었다. 기겁했다. 이가 시뻘겋다. 부탄 사람들이 많이 씹는 도마 빛깔이다. 이어 할머니들이 일렬로 걸어오기에 사진기를 들이대니까 맨 앞줄 할머니(사진)가 포즈를 잡고 서버려 연쇄추돌이 벌어졌다. 맨 앞줄 할머니가 가까이 오라더니 내 손에 물컹한 걸 쥐여준다. 오이 조각, 바나나 조각인데 누가 양말 속에 넣고 백두대간 종주를 한 것 같은 몰골이다. 도저히 못 먹겠다. 할머니가 보이지 않자마자 버렸다. 나중에 부탄 친구에게 물어보니 그 오이, 바나나는 절에서 축복받은 공양물일 거란다.

팀푸 토박이들은 11월께 ‘초쿠’라는 명절을 지낸다. 한국 추석 비슷한데 이웃들까지 싹 불러 하루 종일 뭘 자꾸 먹이는 행사다. 탄딘이 초대한 그 잔치, 가기 싫었다. 부탄 음식 공포증 때문이다. 부탄 전통식 3층짜리 집에 들어서니 1층은 이웃들에 점령당했다. 애들만 최소 10명이다. 그 위층엔 가족들이 모였다. 3층에선 스님들이 하루 종일 불경을 읊어댔다. 부탄 치즈와 고추를 넣고 끓인 에마다치, 돼지고기 비계 요리 팍샤 등이 차려져 있다. 최대한 조금, 최대한 게걸스럽게 먹는 척하기가 내 목표다. 겨우 한 접시 끝내고 도망가려는데 붙들렸다. 특별식이 남았단다. 단팥으로 만든 ‘???琯 단팥만 들었으면 얼마나 좋겠나. 마른 치즈가 한 움큼이다. 이날 이웃들은 아침, 점심, 저녁 다 이 집에서 끝장 본다. 초대했는데 안 가는 것도 실례다. 단팥만 골라 깨작거리다 도망가려니까 또 ‘이리 가면 아니되오’다. 한국 소주와 닮은 아라가 나왔다. 소주 맛이기만 하면 좋을 텐데 거기에 확, 대체 왜, 계란을 푼 걸까? 붙들려 있다 보니 탄딘의 사돈의 팔촌까지 아는 사이가 됐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안젤리(27)는 부탄이라면 환장한다. 두 번이나 왔다. “나는 여기서 덜 외로운 거 같아.” 아플 때 집주인이 챙겨준 밥, 가끔 지나갈 때 이야기 나누는 단골 기념품 가게 주인과 동네 사람들 때문이다. 어떤 엷은 막에 둘러싸여 있는 느낌이란다.

사람뿐 아니라 길거리 개들과도 안면을 튼다. 저 절 앞에 가면 자동차 지나갈 때마다 혼자 뺑글뺑글 도는 검은 개가 있고, 저 골목 들어서면 꼭 샛길 앞에서 수금하듯 졸고 있는 누렁이가 있다는 걸 훤히 알겠다. 개들도 나를 안다. 밤이 오면 어김없이 이웃집 개들이 짖어대는데 그 소리를 들으면 이제 대충 저건 브라우닌데, 저건 렉시 소린데, 이건 못 듣던 개 소리인데 하게 된다.

서울 살 때, 인간과 접촉 면적 엄청 넓었다. 하지만 내가 그들을 ‘인간’으로 느꼈는지, 잘 모르겠다. 마트 아줌마를 계산기로만, 화장품 가게 호객 알바생을 소음으로만, 경비 아저씨는 문에 붙은 비밀번호로만 여겼던 거 같다. 모든 게 너무 컸고 너무 바빴다.

팀푸는 서울에 비하면 동네 한 귀퉁이만할까. 그런데 무섭게 커지고 있다. 시골 청춘들은 대개 ‘팀푸로, 팀푸로’다. 남쪽 푼촐링에서 팀푸로 와 직장에 다니는 체왕(25)은 이웃이 누구인지 모른단다. 올해 국민총행복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부탄 사람들의 전체적인 행복감 지수는 5년 전 0.743에서 0.756으로 늘었다. 빠른 성장에 물질적 만족도가 높아진 게 한몫했다. 그런데 커뮤니티 소속감은 떨어졌다. 공동체를 위해 쓰는 시간과 돈도 3% 줄었고, 이웃에 대한 믿음은 11%나 떨어졌다. 도시의 체온이 떨어지면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이 추워질 텐데 말이다. 그런 한기는 비싼 거위털 파카로 막아지지 않는데 말이다.

김소민 자유기고가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많이 본 기사

전체

정치

사회

경제

지난주

광고

트위터 실시간글

bjchina123 RT @badromance65 : 국민 수신료 받는 KBS, ‘일베’ 기자 결국 임용 http://t.co/ds93Rpk4mr1일 정식 임용…KBS 기자협회와 노조 즉각 반발회사 관계자 “법률 검토했으나 임용 취소 힘들어”이러다 친일도 모자라 …

EuiQKIM RT @qfarmm : [포토]42년 만에 최악 가뭄···위성사진으로 본 소양강댐 http://t.co/BMpS2UjVoq http://t.co/r4OxEINQ1z

LAST_Korea RT @cjkcsek : [사설] ‘어린이 밥그릇’까지 종북 딱지 붙이나 홍준표의 유치한 종북몰이는 자신의 ‘저질 정치인’ 면모만 부각시키며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을 뿐이다. http://t.co/XxOwP51oyK

idoritwo RT @parkjj35 : [한겨레] “할머니들도 ‘기껏 1번 찍어줬더니 아그들 밥값 가지고…’ 성토”http://t.co/ukHxPKTNnm[오마이] 홍준표, '해외골프' 뒤 첫 출근길에 비난 펼침막http://t.co/xn…

HillhumIna RT @jmseek21 : 국민 수신료 받는 KBS, ‘일베’ 기자 결국 임용 1일 정식 임용…KBS 기자협회와 노조 즉각 반발회사 관계자 “법률 검토했으나 임용 취소 힘들어” http://t.co/whlFjwWSl9

CbalsZotto 보궐선거용 거짓 립서비스~ “ @shreka3880 : ‘세월호 피해자 가족’ 챙기기 나선 새누리당 http://t.co/tfkk6gGEci 세월호 진상조사나 방해나 하자말라”

cess0 RT @badromance65 : 국민 수신료 받는 KBS, ‘일베’ 기자 결국 임용 http://t.co/ds93Rpk4mr1일 정식 임용…KBS 기자협회와 노조 즉각 반발회사 관계자 “법률 검토했으나 임용 취소 힘들어”이러다 친일도 모자라 …

idoritwo RT @parkjj35 : [한겨레]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는 왜 대통령 면담을 요구할까요.http://t.co/RyPp5DzeRr[미디어오늘] 유가족들 우려가 현실이 됐다http://t.co/coAAtDbtRQ

sookpoet RT @badromance65 : 국민 수신료 받는 KBS, ‘일베’ 기자 결국 임용 http://t.co/ds93Rpk4mr1일 정식 임용…KBS 기자협회와 노조 즉각 반발회사 관계자 “법률 검토했으나 임용 취소 힘들어”이러다 친일도 모자라 …

idoritwo RT @parkjj35 : [한겨레] 헌재 ‘김영란법’ 헌법소원 심리키로http://t.co/UMzV2bA4hY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