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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1.06 20:31 수정 : 2016.01.07 10:45

1980년대 신혼여행 숙소로 각광받았던 하얏트 리젠시 제주의 당시 모습. 하얏트 리젠시 제주 제공

[매거진 esc] 홍창욱의 제주살이

1980년대 제주는 최고의 신혼여행지로 손꼽혔다. 2박3일의 짧은 일정이라도 비행기를 타야 하고 비교적 고급 호텔에서 묵어야 해, 당시 대표적 신혼여행지인 부산, 설악산, 경주보다 몇 곱절 비쌌다. 하지만 평생에 한번 가는 여행인지라 신혼 커플들은 돈을 아끼지 않았다. 지금이야 모든 정보들이 인터넷에 나와 있고 제주 항공료가 케이티엑스(KTX)보다 싼 시대에 살고 있지만, 당시 신혼여행을 간 대다수의 커플들은 제주 여행에 대한 정보도 없거니와 평생 첫 제주 여행이었다. 요즘은 아침에 서울에서 일을 보다 점심을 제주에서 먹고 밤늦게 서울 집으로 돌아오는 여행객도 있다지만, 80년대 제주 여행은 신혼여행 온 단체 관광객이 주를 이루었다.

검은색 양복을 입은 신랑과 연분홍색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신부가 단체로 제주 관광지를 돌아다니는 모습이 잘 상상 안 되겠지만, 당시엔 신혼부부 몇쌍이 버스를 타고 안내원의 가이드를 받으며 전속 사진사의 지도 아래 어색한 포즈를 취했다. 둘만의 여행인지 결혼 예식의 연장인지 헷갈리던 시절이었다. 요즘은 결혼식 전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제주 여행을 하며 마방목지, 금능해수욕장, 교래 자연휴양림 등에서 연예인처럼 포즈를 취하는 것이 유행이라면, 성읍민속마을에서 농기구를 잡거나 성산일출봉 유채밭을 둘러보며 단체로 강강술래나 율동을 하는 기묘한 사진들을 찍어대던 것이 ‘응팔세대’의 신혼여행 패턴이었다.

사진사가 가이드, 버스 기사와 함께 움직이던 시절, 워낙에 신혼여행 수요가 많다 보니 택시 기사들이 사진 촬영, 가이드 교육을 받고 운전과 함께 이 일을 병행했다. 이런 개인 관광택시의 성황은 제주 경제 발전에 큰 보탬이 되었다. 당시 중산층이 구매하기에 고가였던 카메라를 일본으로 이주한 친척을 통해 쉽게 구비하였던 택시 기사들은 사진 촬영을 통해 쉽게 부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2박3일의 짧은 일정으로 신혼여행 온 젊은 커플들은 관광버스나 택시로 이동하며 성산일출봉, 천지연폭포, 성읍민속마을, 산굼부리 등 제주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를 둘러보고 인근 관광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천편일률적인 여행의 패턴이 보통 그렇듯이 몇십년 뒤에는 그날의 기억은 사라지고 사진 몇장을 통해서만 간신히 추억을 건져 올릴 뿐이다.

‘신혼여행 하면 제주도’라는 공식이 깨지기 시작한 것은 1989년 정부의 해외여행 자유화 방침 때문이었다. 매년 10% 이상 증가하던 신혼여행객 방문 상승세도 92년 이후 꺾이게 된다. 제주 신혼여행 시대는 저물었어도 당시 여행산업 활성화를 통해 제주는 여행 편의시설 등 양적 토대를 마련하고 당시 제주를 처음 경험한 신혼여행 세대들에게 재방문의 여지를 남겨주었다.

홍창욱 <제주, 살아보니 어때?> 지은이
근래 들어선 해외여행 활성화와 더불어 ‘바가지 여행지’라는 오명으로 제주 관광업이 침체를 입기도 했다. 하지만 걸으며 삶을 성찰하는 새로운 여행 방식인 ‘올레길’의 탄생과, 때맞춰 도입된 저가항공이 다시금 제주 여행 바람을 일으켰다. 여행 때마다 새로운 마을 명소가 소개되고 뭍에서 제주로 이주한 사람들의 식당, 숙소들이 새로 문을 열면서 재미를 더해준다. 최근엔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의 <숨, 나와 마주 서는 순간>처럼 해녀의 삶을 조명하는 책이 큰 호응을 얻고, 제주 이주 붐이 몇년째 지속되는 등 이른바 ‘요즘 뜨는 제주’가 되었다. ‘응팔세대’ 이후 다시금 신혼부부의 사진 촬영지로 각광받고 있는 제주, ‘역사는 반복되고 세련미는 더해진다’고나 할까.

홍창욱 <제주, 살아보니 어때?>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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