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김소민의 부탄살이
소남의 넉달 된 딸 나르셀은 좀체 우는 법이 없다. 이 애는 전생에 ‘소’였단다. 그러고 보니 달 없는 밤 같은 깊고 까만 눈이 닮았다. 부모는 아기가 태어나면 친구들을 불러다 ‘창게’라는 술을 마신다. 막걸리 같은데, 대체 왜, 계란을 팍 풀었다. 이 술이 달면 애 인생도 달콤하게 풀린다고 믿는다. 이 창게를 퍼주면서 나르셀 엄마가 말했다. “하여간 여자애들은 다 전생이 동물이라니까.” 애 태어난 시각, 날짜를 알려주면 점성술사나 스님이 ‘키치’라는 문건을 써주는데 거기 전생부터 앞으로 인생 굴곡이 적혀 있단다. “나르셀이 이번 인생에 복을 많이 지으면 다음에도 사람으로 태어날 거고, 이번 인생에 죄를 많이 지으면 새가 될 거래.” 나는 죄도 실컷 짓고 새가 되는 게 남는 장사인 거 같았다. 한 시민단체 대표인 탄딘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사회학 석사를 받았다. 그는 자기 딸이 전생에 뱀 나라인 ‘나가’의 공주였다고 생각한다. 믿으려 작심하면 증거야 널렸다. 임신했을 때 탐스러운 뱀이 과일처럼 주렁주렁 걸린 꿈을 꿨다. 스님이 써준 ‘키치’에도 그렇게 나온다. 게다가 딸은 탄 음식이라면 기겁하는데 그게 다 ‘나가’ 나라 뱀의 특징이다. 그가 ‘키치’를 우스개 반 진담 반 하며 대체로 믿는 까닭은 자기 팔자 때문이란다. “40살까지 무지 고생한다고 그랬거든. 남자 잘못 만나서. 내가 딱 그렇잖아. 그래도 이 생에서 좋은 일 많이 해 공덕을 쌓아야지, 잘못하면 다음 생에 닭으로 태어난다고 했어.” 모든 아기에게는 ‘수호 절’이 있다. 아기가 태어나면 이름은 각 지역 대표 절(라캉)에서 스님한테 받는다. 때론 스님이 일이 바쁜 건지 깊은 뜻이 있는 건지 형제 넷 이름을 똑같이 붙여주기도 한다. 하여간 이름을 주는 라캉은 일종의 심리적 둔덕이 돼준다. 애가 아프거나 인생이 꼬이면 그 지정 라캉에 가서 공양이라도 드려볼 수 있는 거다. 반대로 공양을 소홀히 했다간 애가 병나는 수 있다. 그래도 큰 액운이 닥치면 ‘공양을 소홀히 했구나’. 말이 되건 안 되건 이유라도 있는 게, 속수무책 어처구니없게 당하는 것보다는 견디기 낫지 않을까. 그런데 요즘은 자기 ‘지정’ 라캉에 가기가 그리 쉽지 않다. 젊은이들이 고향을 떠나 수도 팀푸로 몰려들기 때문이다. 푼조(25)도 동쪽 끝 타시강에서 팀푸로 와 여행가이드로 일한다. 고향 절에 공양 못 드려 화가 닥치면 어떻게 하냐니까 걱정 말란다. “어머니가 하루가 멀다고 그 절에 가 기도하시는걸요.” 공양으로는 성이 안 차는지 부탄의 아이들은 구루 림포체 등 고승들의 초상화를 담은 목걸이를 걸고 다닌다. 나르셀은 목걸이가 무려 세개다. 평생 나르셀을 지켜줄 목걸이다. 한발짝 앞을 볼 수 없는 인생이니 부모는 목걸이에라도 의지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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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터. 사진 김소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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