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말년 작가가 네이버에 연재중인 웹툰 <이말년 서유기>는 아재개그를 활용해 인기를 얻고 있다. 만화에서 아재개그 부분을 골라 재구성했다. 이말년 작가 제공
|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아재개그 전성시대
과거 천대받던 썰렁개그, ‘아재개그’ 새 옷 입고 새삼 인기몰이
‘아재개그’를 아시나요? 과거에는 ‘부장님 개그’라 불리던, 나이 많은 아저씨나 하는 썰렁한 개그를 일컫는 말이죠. 요즘 미디어를 통해 이 아재개그가 각광받고 있습니다. 브라운관 속 스타들이 주변의 질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재개그를 날리는데, 처음엔 썰렁하다고 손가락질하다가 점차 중독돼가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과거, 세대차의 상징이기도 했던 아재개그에 오히려 젊은이들이 열광합니다. 아재개그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이유를 물어보면 ‘안 웃기는데 들을수록 웃긴다’는 이상한 대답을 합니다. 안 웃기는데, 웃긴다뇨? 아재개그의 묘미가 바로 ‘반복’이랍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아재개그 특집 커버스토리. ‘알다가도 모를’ 아재개그의 매력을 ‘반복’해서 파고 또 파봤습니다. 다 읽고 나면 어느새 아재개그에 중독된 당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먼저 콩트 한편 보면서 배꼽에 슬슬 시동을 걸어보시죠.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그럼 오늘 일 안 하셨나요?
네일 아티스트니까
내일 일하는 거잖아요, 큭큭” 여: 저, 혹시, 최모모씨? 남: 아, 네, 처음 뵙겠습니다. 최모모라고 합니다. 여: 차가 좀 막혀서…. 늦어서 죄송합니다. 남: 아닙니다. (보자마자 그녀를 웃겨 서로의 거리를 좁힐 찬스를 엿보던 순간, 최모모씨의 유머가 번뜩였습니다.) 남: 혹시 영화배우 리차드 기어 아시나요? 여: 네? 네. 그런데요? 남: 하루는 리차드 기어가 약속시간에 너무 늦어서 운전기사에게 좀 빨리 갈 수 없느냐고 하자, 운전기사가 알았다며 천천히 가던 앞차를 향해 ‘빵빵’ 경적을 울렸답니다. 여: 그런데요? 남: 그러자 화가 났던지 앞차 운전자가 내려서 리차드 기어 운전기사에게 한 말이 뭔지 아세요? 여: ? 남: 야! 니차두 기어!! 큭큭큭큭. 여: 네? 니차두 기어…. 아하, 리차드 기어… 니차두 기어… 재밌네요. (하지만 여자의 표정에 웃음기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최모모씨는 여자의 외마디 “재밌네요”에 이미 자신감을 얻은 상태였죠.) 여: 차는 뭐로 하실래요? 남: 하하. 차는 소형차가 좋죠. 여: 네? 아아! 차, 소형차. 모닝이나 프라이드 같은? 그것도 좋지만 우리가 함께 마실 차는 뭘로? (여자, 슬슬 여길 왜 왔나 싶어집니다.) 남: 전 ‘돈 갚았잖아요’로 할게요. 여: 네? 남: 아, 카푸치노요. ‘카푸치노’, ‘갚았잖아요’, 비슷하죠? 하하하~. 여: …. (내친김에 하나 더 얹는 최모모씨.) 남: 오늘 식사는 좀 이따, 에스에스 제이비 어때요? 여: 네? 에스에스 제이비라면? 남: 삼선짬뽕이요. 에스에스 제이비, 삼선짬뽕. 큭큭큭. 여: 아아…. 남: 근데 요즘 요리엔 엠에스쥐가 너무 많이 들어가서. 여: 네? 쥐요? 남: 엠에스쥐, 엠에스지, 맛소금. 큭큭큭. 여: …. 남: 직업이 네일 아티스트라고 들었는데, 그럼 오늘은 일 안 하셨나요? 네일 아티스트시니까. 내일 일하시는 거잖아요. 큭큭. 여: …. (이제 여자, 얼른 집에 가고 싶어졌습니다.) 남: 제가 근데 요즘 속이 좀 안 좋아서요. 여: 네? 아아. 그럼 병원에 가보셔야. (여자, 핑계 삼아 얼른 이 대책 없는 남자를 병원에라도 보내고 싶어졌죠.) 남: 그렇죠? 여: 그럼요. 몸 안 좋으면 병원부터 가보셔야. 남: 근데, 지금 4시가 넘어서…. 여: 네? 병원은 6시까지 아닌가요? 남: 아뇨. 위가 안 좋아서 위내시경을 받아야 하는데, 내시경은 오후 4시경에 가야지 5시경에 갈 수는 없잖아요. 하하, 하하하, 하하하. (이 남자, 정말 대단합니다.) 여: 아아, 내시경. 근데요,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요. 남: 네? 한 가지 말고. 한 오이는 어떨까요? 아니면 한 상추? 크하하. 여: 오늘 뭐, 화나시는 일 있으셨나요? 남: 네? 여: 아니면, 제가 뭘 잘못했나요? (남자, 당황했지만, 여기서 밀리면 끝이다 싶어 얼른 말을 돌립니다.) 남: 아 참, 혹시 발레 좋아하세요? 여: 네? 발레는 왜? 남: 호주랑 우리나라랑 원래 사이가 안 좋았나요? 발레 제목이 <호주까기 인형>. 여: 네? 그건 <호두까기 인형>인데. 남: 아, 조크죠, 조크. 하하하하. (여자, 이쯤 되면 탁자 위 컵에 담긴 물이라도 뿌리고 도망가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맞선 주선자의 얼굴이 떠올라 조금만 더 참아보기로 합니다.) 남: 미드 좋아하시죠? 여: 네? 네. 남: 전 미드보다는 어드를 좋아합니다. 어린이 드라마 ‘어드’. 하하. 여: 아, 네…. (여자, 이젠 좀 지친 듯 대충 대꾸만 해줍니다.) 남: 요즘 미드 중엔 <셜록>이 제일 재밌던데. 그거 아세요? 셜록이 매일 마시는 차가 무슨 차인지? 여: 혹시, 설록차? 남: 어? 어떻게 아셨어요? 대단하다! (여자, 자신도 모르게 정답을 맞혔다는 말에 은근 기분이 좋아집니다.) 남: 요즘 아재개그가 각광받고 있는 거 아시죠? 여: 뭐, 들은 거 같긴 해요. 남: 근데, 불교에서도 아재개그를 상당히 높게 평가한다면서요? 여: (자기도 모르게 염불 외듯) 아제아제 바라아제…. 남: 우와~ 대박! 저랑 필이 통하시나 봐요. (여자, 남들이 하면 그렇게 비웃었던 아재개그를, 자신이 직접, 그것도 처음 본 사람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깜짝 놀랍니다. 이런 얘기들을 주고받고 밥 먹고 그날의 맞선은 끝났다고 하는데요. 이랬던 커플이 얼마 전 드디어 결혼식을 올렸다고 합니다. 주례자가 엄숙하게 “신랑, 신부, 맞…” 하자 둘이 동시에 이렇게 말했다고 하네요.) 남·여: (동시에) 맞고소? 큭큭큭큭. 아재개그도 이쯤 되면 이 시대에 없어선 안 될 청량음료까지는 아니더라도 ‘청량리 음료’ 정도는 되지 않을까요? 큭큭큭. 감사합니다. 최항서 <웃찾사>작가
|
이말년 작가가 네이버에 연재중인 웹툰 <이말년 서유기>는 아재개그를 활용해 인기를 얻고 있다. 만화에서 아재개그 부분을 골라 재구성했다. 이말년 작가 제공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