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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가 아닌 ‘생활지’로서 제주의 삶은 당신의 삶과 다를 게 없다. 제주 바다가 보이는 밭에서 농민들이 양배추를 수확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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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홍창욱의 제주살이
우리 모두는 탈출을 꿈꾼다. ‘지긋지긋한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회사 가기 싫은 아빠, 아이 보기 지긋지긋한 엄마, 아침에 잠에서 깨어 유치원 가야 하는 딸에게도 일상은 끝없이 이어지는 축축한 장마와 같다. 나는 이 힘든 일상을 피해 2009년 ‘탈 서울 인 제주’ 하였다. 그로부터 8년차가 되기까지 참 많이도 받은 질문이 있다. “제주 살아보니 어때?” 내가 쓴 두번째 책 제목이기도 한 이 질문이 요즘만큼 무겁게 들려온 적이 없다. 총선을 앞두고 뉴스에서 심심찮게 접하는 것이 바로 ‘제주 이주민’ 이슈다. 이야기인즉슨 2010년부터 제주로 이주한 인구가 16만명으로 지역 전체 유권자의 4분의 1이나 되어 총선 판도에 영향을 미칠 수준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과연 왜, 어떤 연유로 제주에 둥지를 틀게 되었을까? “아파트 담벼락보다 바다를 볼 수 있는 창문이 좋아요”를 되뇌며 ‘인 제주’ 하였을 그들은 제각각 다른 사람이겠지만 나는 적어도 그들을 ‘자발적 유배인’이라 부른다. 그들 중 60%는 대도시인 수도권을 등진 사람들, 박후기 시인의 시 ‘움직이는 별’에 나오는 “불러오는 풍선의 표면에 들러붙은 티끌”이 되기 싫어 멀고 먼 제주로, 내 삶을 위해 이삿짐을 싼 사람들이다. 지난 8년 동안 살아본 제주의 삶은 캔버스를 닮은 하늘, 여름이면 일상과 여행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바다, 출근길에도 주어진 하루에 감사하게 되는 날들이었다. 그래, 내 삶에서 가장 잘한 선택은 바로 제주행이었다. 그동안 크게 바뀐 게 있다. 제주의 집값과 땅값이다. 서울 전세금을 빼서 제주에서만 두번의 이사를 했다. 연세와 전세를 거쳐 드디어 임대아파트 생활을 시작하였다. ‘빚지지 않고 안정된 주거를 할 수 있는 게 어디냐’라고 이야기할 텐데, 그나마 청약통장이 없었다면 우리 가족은 이주 10년이 되어도 주거문제에 관한 한 ‘노답’이었을 것이다. 지난 2~3년간 집값·땅값이 폭등하여 ‘제주에 집 사느니 차라리 경기도에 집 사겠다’는 이야기를 듣는 요즘, 제주로 이주해온 16만명의 삶이 더 행복해졌는지 묻고 싶다. 전국에서 임금이 가장 낮은 곳 중 하나가 바로 제주다. 여행지의 여유와 풍요로운 이미지를 소비하면서도 수면 아래 발길질을 열심히 해야 하는 곳이다. ‘그렇게 살기 싫어’ 찾은 제주겠지만, 또 ‘그렇게 살아야 가능한 것’이 제주에서의 삶이다. 괸당(넓은 의미의 친척), 이웃끼리 서로 돕는 공동체 문화가 살아 있는 제주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와 함께 ‘우리’를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제주살이’의 고비를 3년으로 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3년이 지나면 아무런 연고 없이 찾아온 제주 신입생에게도 괸당과 이웃이 생길 테니 말이다. 제주엔 동네 골목마다 생기는 치킨집보다 흔한 것이 있다. 바로 게스트하우스와 카페다. 제주에 살고 싶고, 살자니 누구나 도전하는 창업이 바로 숙박업과 카페업이었다. 몇년 전부터 ‘레드오션’에 진입했고 요즘은 비수기에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막노동이라도 해야 하는 상황까지 왔다. 이런 지경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육지로 발걸음을 되돌렸고, 내가 제주 이주에 관해 인터뷰를 했던 어떤 분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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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욱 <제주, 살아보니 어때?>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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