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5.11 20:31
수정 : 2016.05.12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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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 아래 앉은 연인 한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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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이별은 소중한 경험
많은 사람은 이별의 기억을 ‘나쁜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든 잊으려 한다. 하지만 정상적인 사람이 이별과 같은 강렬한 기억을 잃는 것은 불가능하다. 간혹 성폭행 등을 겪고 난 뒤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람의 기억이 통째로 사라지는 경우가 있다. 이것을 정신의학에선 ‘해리 장애’라고 부른다. 일종의 기억 상실증이다. 해리 장애는 인간의 생존 본능이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계속 갖고 있으면 사람이 살아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별의 기억이 통째로 사라진다면 고통이 없겠지만, 건강한 정신상태라면 절대 그럴 수 없다. 평생 기억하며 살아가야 한다. 대한트라우마협회 회장인 김선현 차의과학대학교 미술치료대학원 교수는 “이별의 기억이 본인의 삶에서 불편함이 없도록 만들어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상처를 입으면 흉터가 남는다. 하지만 흉터로 삶이 힘들어져서는 안 된다. 이별도 마찬가지다. 마음에 난 상처가 우리의 삶을 불편하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나쁜 기억을 좋은 추억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바로 감정 표현이다. 음악이나 영화 감상, 그림 그리기, 노래 부르기 등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웃기도 울기도 하면서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다. 나의 실연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실연 테라피’에서 여러 사람이 모여 이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공감을 얻기 위함이다.
이런 과정을 겪으며 사람은 성숙한다. 이것을 ‘외상 후 성장’이라고 부른다. 김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이별의 아픔은 파도와 같다. 한번에 끝나는 게 아니라 주기적으로 몰려온다. 본인이 성장하지 않으면 휩쓸리고 만다.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찾으면 자신을 성숙시킬 수가 있다. 이별의 고통이 자기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빨리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자신만의 감정 표현 방법을 찾지 못했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다. 일상으로 빨리 복귀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실연의 주인공이 아닌, 사회 속의 자신으로 살아가면서 스스로를 객관화시켜야 한다. 그것이 일상의 힘이다.
이정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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