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5.25 19:56
수정 : 2016.05.26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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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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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요리
제주 바람은 색도 다양하다. 바다에서 부는 바람에는 새파란 색이, 한라산 자락에서 내려오는 바람에는 짙은 흙색이 묻어 있다.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에 위치한 100만평 규모의 오설록 차밭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찻잎의 녹색이다. 이곳은 여행객들이 자주 찾는 관광지이기도 하다. 1979년 아모레퍼시픽이 황무지를 개간해 만든 녹차밭이다. 관광객들은 녹차밭을 둘러보고 ‘오설록 뮤지엄’을 찾는다. 옆 건물인 ‘오설록 티스톤’에서는 하루 두 번 ‘힐링의 시간’을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차 소믈리에의 강연과 안내로 50여분간 직접 차를 우리는 체험행사다.
지난 13일 오후 4시, 오설록 티스톤의 문을 두드렸다. 건물은 거대한 벼루 같았다. 추사 김정희 선생의 벼루를 상징화해 만들었다고 한다. 추사의 유적지가 차로 10분 거리에 있다. 묵향이 절로 피어오르는 듯했다. 3면이 유리로 된 벽으로 찬란한 5월의 햇살이 들이쳤다. 일대를 걷는 관광객들은 밖에서 유리창 안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그 안쪽, 티스톤 체험장은 하늘 위 구름 속처럼 소리가 삭제된 공간 같았다. 시끄러운 세상이 저만치 사라지고 없었다. 무념무상의 경지에 자연스럽게 올랐다. 굳이 우리고 마시지 않아도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지난 삶을 반추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20대 연인 두 쌍과 나홀로 여행족 한 명과 함께 체험 프로그램이 시작되길 기다렸다. 체험장 안에 문소미 차 소믈리에의 차분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혼자 차를 즐길 때는 2g 정도 우리는 것이 좋아요. 앞에 놓인 차는 오설록의 후발효차인 삼다연과 세작, 동백꽃차입니다.” 아담한 나무판 위에 작은 찻잔 두 개와 주전자, 물식힘잔 등과 세 종류의 찻잎이 있었다. 삼다연을 우리고 난 다음 두 잔에 나눠 따르자 신기하게도 같은 차인데도 색이 다르다. 그는 “수색이라고 하는데, 짧은 시간에도 차는 계속 우러나기에 색이 다르다”고 했다.
주전자에서 나오는 마지막 찻방울을 ‘옥로’라고 한다. ‘맑고 깨끗한 이슬’이라는 뜻으로, 귀한 손님에게 대접한다고 한다. 옥로를 찻잔에 따르는데 문소미 차 소믈리에가 갑자기 찻잔을 들여다보라고 했다. “혹시 차 안에 짙은 가루가 세로로 줄 선 분 계신가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여행객들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가 말을 이었다. “그걸 보면 커다란 행운이 찾아온다고 합니다. 다도 애호가들은 새해가 시작되는 날에 유난히 더 살펴보곤 합니다.” 모두들 아쉬워했다.
체험이 끝나자 티스톤 안내원은 지하의 삼다연 발효 창고로 안내했다. 마치 이탈리아의 와인 창고 같은 공간이었다. 차가운 기운이 스며들어 더위 따위는 사라졌다.
티스톤 체험 프로그램은 오전 9시30분, 11시와 오후 1시, 2시30분, 4시 등 하루 5번 있다. 가격은 1만5000원.
제주/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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