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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런 행사 참가자들이 7㎞ 단축 마라톤을 위해 출발하고 있다. 월트디즈니 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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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라이프
아시아 최초로 열린 ‘마블런’, 이정국 기자가 함께 뛰어보니
이렇게 더운 날에 사람들이 뛸까 싶었다. 낮 최고 기온이 섭씨 33도에 달하던 22일 오후, 서울 마포 월드컵경기장 평화공원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가슴에 ‘MARVEL’(마블)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아시아 최초로 열린 ‘마블런’ 행사가 열리는 날이었다.
마블은 미국의 디시코믹스와 함께 세계 만화 시장을 양분하는 곳이다. 최근에 인기를 끈 <캡틴 아메리카>, <아이언맨>, <엑스맨>, <스파이더맨> 등 방대한 캐릭터를 보유해 ‘마블 유니버스(우주)’라는 말까지 생길 정도다. 이들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가 세계적인 흥행을 기록하자, 단순히 영화를 보며 즐기는 것을 떠나 직접 해당 캐릭터로 분장을 하는 적극적인 팬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마블런도 그런 현상 가운데 하나다. 겉으론 단축 마라톤 대회라는 형식이지만 팬들이 자신의 ‘마블 사랑’을 뽐내는 자리다. 스타워즈 팬들이 스타워즈 속 캐릭터로 분장하는 ‘스타워즈 데이’ 같은 행사를 떠올리면 된다. 마블 코믹스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인기를 끌기 시작한 3~4년 전부터 남미와 오스트레일리아 등에서 시작돼 세계적으로 20여 차례 열렸다.
행사 전부터 광장에 설치된 대형 무대에선 <개그콘서트>의 ‘니글니글’ 코너로 잘 알려진 개그맨 송영길, 이상훈이 사회를 보며 분위기를 띄웠다. 그들은 더운 날씨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탈수 현상을 언급하며 물을 많이 먹고 준비운동을 철저히 하라고 재차 강조했다. 참가자들도 더운 날씨를 의식한 듯 여기저기서 몸을 풀며 안전사고에 대비하는 모습이었다. 워낙 더웠던 탓에 지친 사람들은 그늘로 모여들었다. 그늘은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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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시작 전 참가자들이 마블 영웅 캐릭터 분장을 한 이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월트디즈니 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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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의 캐릭터 팬들 모여 달리기
30도 넘는 날씨에 땀범벅 ‘헉헉’ 여성 참가자가 절반은 돼 보였다. 최근 여성들 사이에서 부는 ‘달리기 열풍’을 실감할 수 있었다. 실제 아디다스와 나이키 같은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에서 여는 여성 마라톤 행사는 너무 빨리 마감돼 참여하기조차 힘든 상황이다. 과거 근육질의 남성이 모델이었던 것과 달리 최근 이들 스포츠 브랜드의 광고 모델도 대부분 여성이다. 그만큼 여성 스포츠 시장이 커진 것이다. 한 여성 직장인 참가자는 “달리기만큼 저렴한 비용에 즐길 수 있는 취미가 없다고 본다. 단축 마라톤 행사가 나오면 가능하면 다 참가하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행사에 참여한 8000여명(주최 쪽 추산)은 오후 4시 출발 신호가 떨어지자 일제히 뛰기 시작했다. 출발은 참가비(8만~4만원) 순서였다. 참가비에 따라 3개 그룹(브이아이피·스페셜·레귤러)으로 나뉘는데, 좀더 비싼 참가비를 낸 사람에게 먼저 출발할 권리를 준다. 기념품도 좀더 다양하다. 참가비에 따른 그룹 분류는 일반인이 참여하는 마라톤 대회에선 흔히 있는 일이다. “마라톤도 금수저냐”고 하면 곤란하다. 기자는 레귤러 그룹이었다. 첫번째 그룹과 출발에서 10여분 차이가 났는데 사람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오히려 참가자들 사이에서 과도하게 자사 제품을 홍보하는 홍보 도우미들이 불편하게 느껴졌지만, 그것도 속도가 붙기 시작하자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월드컵공원 내 평화의 공원에서 출발해, 하늘공원과 노을공원을 거쳐 돌아오는 총 7㎞ 길이의 코스였는데, 1㎞ 지점에 다다르자 사람들이 서서히 지치기 시작했다. ‘오버페이스’를 하는 사람은 늘 나오기 마련이다. 앞 그룹 사람이 뒤 그룹에서 보이기도 했다. 아예 뛰는 걸 포기하고 걷는 사람도 있었다. 아이언맨 가면을 쓴 한 참가자는 더위를 못 이겨 중간에 가면을 벗었다. 살인적인 더위도 더위였지만, 협찬사들의 경품 추첨 등 사전 행사가 많아 사람들이 더 지친 듯했다. 기자의 숨도 턱까지 차올랐다. 단축 마라톤이라고 해도, 이렇게 긴 시간을 계속 뛰어본 것은 학창 시절 체력장 이후엔 처음이었다. 결국 2㎞ 지점에서 뛰는 걸 포기하고 걷기 시작했다. 주최 쪽은 중간중간 “파이팅”을 외치는 응원단을 배치해 사람들을 격려했다. 1㎞ 정도를 걷다가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노을공원 서쪽으로 접어들자 비포장 흙길로 바뀌었다. 덥고 건조한 날씨에 수많은 인파가 뛰다 보니, 중국발 황사는 명함도 못 내밀 것 같은 먼지가 시야를 가로막았다. “쿨럭, 쿨럭” 여기저기 기침하는 소리가 들렸다.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고 뛰는 사람도 종종 보였다. 누군가는 “고비사막에서 뛰는 거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기자도 숨이 막혀, 뛰다가 결국 다시 걷기 시작했다. 힘겹게 중간 지점에 도착하니, 물을 먹을 수 있는 급수대가 설치돼 있었다.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 같았다. 목을 축이니 좀 힘이 났다. 그런데 갑자기 무리를 한 덕인지 발목과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다. ‘좀 참아볼까’라는 생각에 계속 뛰었는데 점점 발목에서 찌릿찌릿한 전기 신호를 보냈다. 결국 또다시 걷기로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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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크 분장을 한 참가자가 뛰고 있다. 이정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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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국 기자가 결승선에 들어오고 있다. 권도윤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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