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6.01 23:10
수정 : 2016.06.02 10:05
[매거진 esc] 김소민의 부탄살이
‘행복의 나라’ 밤거리엔 약에 취한 청춘들이 있다. 낡은 청바지를 엉덩이 중간쯤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입은 청년들은 길거리 개들에게 시비 걸며 밤이 지나길 기다린다. 밤이 지나갈지는 알 수 없다. 수도 팀푸는 이미 청년들로 북적인다. 일자리 구할 곳은 없고 약 구할 곳은 많다.
|
사진 김소민 제공
|
지그미(26·사진 오른쪽)는 한 약물중독 재활센터에서 청소년 상대로 상담한다. 그가 여름 한낮에 몸을 벌벌 떨었다. 내뿜는 숨결마다 ‘스’ 소리가 묻어난다. 옛날 약물중독 후유증이란다. “센터에 온 애들한테 내 이야기를 들려줘요. 그리고 진짜 자신에게 정직해지라고 말해요. 저는 그 친구들이 얼마나 슬픈지 알아요.”
그는 11살 때 길에서 술을 배웠다. 집 나온 지 한 달째인데 부모님은 그가 가출한 줄을 몰랐다. 아버지는 사람이 너무 좋았다. 다 퍼줬다. 친척들한테 사기당해 집이 거덜난 뒤 부모님은 이혼했다. 엄마는 애가 아버지랑 있겠거니 했고 아버지는 그 반대로 알았다. 폐가에서 밤을 지새웠다. 거리가 집보다 따뜻했다. 친구들이 있었다. 구걸하던 그를 사촌형이 발견했다. 그 뒤 부모님은 살림을 합쳤는데 그의 마음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과자보다 술을 더 좋아하는 11살이었다.
‘어번 가이스’. 친구들은 모임을 그렇게 불렀다. 그의 진짜 집이었다. ‘도어스’, ‘메탈리카’, ‘너바나’가 인도 라디오를 타고 히말라야를 넘었다. “노래 속에서 그 사람들 마음이 느껴졌어요. 내 목소리 같았죠.” 고등학교엔 기타가 있었는데 그는 기타 치러 학교에 다녔다. 이 친구들 가운데 형편 좋은 애들은 인도 국경에서 약을 가져왔다. 그것도 공평하게 나눴다. 알약 모양을 삼키면 봄볕에 누운 개처럼 노곤해졌다.
2005년 12월9일 ‘반짝이는 돌’이 죽었다. ‘어번 가이스’ 가운데 한 명이었던 이 친구는 잘생겨서 이런 별명이 붙었다. 그 반짝이는 동그란 머리를 사무라이 칼이 갈랐다. 지그미도 그 패싸움 자리에 있었다. 그대로 도망쳤다. “친구가 죽던 날 무서운 줄도 몰랐어요. 약에 취해 있었거든요. 우리는 갱이 아니었어요.” 시작은 항상 비슷했다. 이 그룹 멤버가 저 그룹 지역에 갔다가 맞고 오면 복수로 이쪽이 저쪽을 한 대 치고 그러면 저쪽이 이쪽을 두 대 치는 식이었다.
15살 소년은 북쪽으로 걸어갔다. 팀푸에서 차로 족히 세 시간은 걸리는 ‘가자’ 지역까지 발길이 닿았다. 친구 집을 전전하며 찻길 내는 건설 현장에서 일했다. 해 뜨면 출근 해 지면 퇴근이었다. 온몸 구멍엔 황토가 가득 꼈다. 겨우 잘 곳이 생기나 했더니 홍수에 다 떠내려가 버렸다. 급류에 휩쓸려가는 애 한 명 안고 몸만 빠져나왔다. 구해 나온 애 부모가 옷 한 벌과 먹을거리를 줬다. 이번엔 남쪽으로 걸었다. 다시 막노동을 했는데 두 달째 월급을 못 받았다. 열이 뻗쳐 사장집을 부쉈다 또 도망치게 됐다. 다시 북쪽으로 걸었다. 걸어도 걸어도 없었다. 그가 있어도 되는 자리.
“그때부터 정말 바닥이었어요. 돈만 생각했어요. 약을 팔았어요.” 폭력에 약물 판매까지 겹쳐 2년형 선고받았다. “감옥에서 내면이 죽어가는 걸 느꼈어요. 금단 증상이 심했어요. 삶의 꼬투리를 붙잡듯이 노래를 썼어요.” 종카어로 ‘아장’, 후회라는 뜻이다. 노랫말은 이렇다. “언젠가 나는 이 세상에서 사라지겠지. 내 운명은 좋지 않았지. 왜 나만, 왜 나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내 인생은 눈물의 바다에서 익사 중이네.”
2009년 출소한 그는 세어 보았다. ‘어번 가이스’ 친구들 12명 가운데 5명이 남았다. 그 가운데 6명은 약물 과다 복용으로 숨졌다. “그때 마음속 나를 만났어요. 정말 살고 싶었어요.” 그는 팀푸로 돌아와 중독 치료 그룹에 들어갔다. 밴드도 만들었다. “우리 노래를 만들고 싶었어요. 진짜 노래.” 드럼은 비싸서 없다. 베이스는 망가졌다. 그래도 팬은 있다. ‘더 레이티스트 언마스크트 어번 프런트’(가명을 쓰지 않은 최후의 어번 프런트)라는데 너무 길어서 밴드 멤버들도 헷갈려한다.
지그미는 험한 말을 들어도 인상 쓰는 법이 별로 없다. 험한 말엔 이골이 났단다. 예전에 한번 그런 지그미 표정이 일그러지는 걸 봤다. 그가 한 방송 프로듀서와 얘기하는 중이었다. 지그미가 유튜브에 올린 자기 밴드 노래를 들려주니 40대 중반 피디는 이렇게 충고했다. “이런 록 음악은 외국에서 나온 거고 그쪽 사람들이 훨씬 잘해. 우리가 따라가봤자 그들보다 나을 수는 없어. 그러니까 전통음악을 해야지.” 지그미는 아무 말 안 하다 나중에 나한테 구시렁거렸다. “저런 말 들으면 답답해요. 어느 나라 음악인 게 뭐가 중요해요. 나는 그냥 우리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라고요.” 망가진 베이스를 언제 고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고 싶은 건 많다. “우리는 부탄 리듬에 록을 합쳐 부탄 메탈을 만들 거예요.” 끝났나 싶으면 이어지는 불면 치료제 부탄 리듬이 록과 만나면 어떤 노래가 될지, 나는 당최 모르겠다. 그래도 확실한 건 뭐가 됐건 그의 노래가 되리란 점이다.
그는 밤낮으로 일한다. 낮엔 상담사로 일하고, 밤에는 호텔 프런트를 지킨다. 호텔에서 월급 4천 눌트룸(8만원)을 받는다. 여덟달 된 아들이 있다. 아기 이름은 이톱, 세상의 축복이란 뜻이다. “저는 지금 현재에만 집중하려고 해요. 진짜 내 목소리를 듣고 깨어 있을 거예요. 인간과 동물을 나누지 않고 어떤 것도 괴롭히지 않을 거예요. 우리 아들을 그런 축복으로 키울 겁니다.” <끝>
김소민 자유기고가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