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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6.16 10:13 수정 : 2016.06.16 11:11

[매거진 esc] 홍창욱의 제주살이

요즘 티브이(TV)에서 심심치 않게 제주말을 들을 수 있다. 제주 출신의 연예인이 아주 간단한 인사말을 제주말로 소개하고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에서는 제주말에 자막이 붙어 있는 그대로 전하기도 한다. 내가 들은 최초의 제주말은 ‘또시 꼭 옵서양’(다시 꼭 오세요)으로 큰누나가 삼십년 전에 제주 여행을 다녀와서 들려주었다. 제주에 와 도심지 회사를 다닐 때는 제주말을 있는 그대로 들을 기회가 없었고 내가 들은 말이 진짜 제주말인 줄 알았다.

농촌에 와보니 달라도 많이 달랐다. 5년 전 마을에서 처음 일할 때 아버지뻘인 형님들과 회의를 한 뒤 저녁식사를 했다. 50%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분명히 한 시간 전 회의 때는 알아들었는데 말이다. 저녁 자리에선 회의 때와 전혀 다른 말이 오갔다. 분명히 한국말이고 나도 한국 사람인데 굉장히 집중을 해야 대화의 반이나마 알아들을 수 있는 상황. 그 후 사석에서 형님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알아듣기까지는 족히 1년이 걸렸다. 아직 형수님들의 이야기는 애를 써서 들어야 하고 어떤 때는 통역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크게 불편하지 않고 심리적인 거리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제주말을 편하게 하는 상황 자체가 가족, 친지, 이웃들 간에 격의 없이 쓰는 경우이기 때문이다.

무릉 곶자왈. 홍창욱 제공
이주 7년차인 지금도 의아한 것이 제주 토박이들은 지역언어와 표준어를 가려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서울에서 거리가 멀수록 억양이 세고 사용하는 단어가 서로 달라 표준어를 쓰려고 치면 개그맨 수준이 되는데, 제주는 뭔가 다르다. 오래전부터 교육열이 높아 학교에서, 혹은 가정에서까지 표준어를 사용하게 했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과장된 면이 있는 듯하다. 친한 토박이 형에게 물어보니 제주말이 억양도 세고 이질적이긴 하지만 다른 언어에 잘 동화된다고 한다. 드라마에 나오는 표준말만 듣고도 곧잘 비슷하게 말한다는 형의 이야기가 신빙성은 없어 보이지만 왠지 그럴듯하다. 실제 제주말엔 한글의 고어 중에 아래아(ㆍ) 발음이 남아 있고 한자, 몽골어, 일본어까지 다양한 언어가 영향을 미쳐 현대의 일상에서 사용되고 있다.

이주 5년차에 귀농귀촌 교육을 받으며 제주말 수업을 들었는데 밭 종류만도 제주말로 수십 가지였다. 많은 사람들은 제주를 관광지로만 생각하겠지만 제주는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농업이 주된 산업이다. 농업이 중요하니 바람의 종류, 곡식의 종류, 심지어는 밭의 종류까지 수십 가지가 아닐까.

내가 일하는 마을에서 숲체험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설명하는 것이 ‘곶자왈’인데 화산섬인 제주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단어다. ‘자왈’은 자갈과 풀 등으로 뒤덮여 관리되지 않은 땅이란 뜻이다. ‘곶’은 나무숲을 일컫는다. 황무지 위에 생겨난 숲 정도로 해석된다. 곶자왈이 제주 지역의 생태 환경과 문화, 역사를 설명하는 중요한 단어이듯 제주말은 제주를 설명하는 많은 이야기와 자원을 담고 있다.

제주는 1차 산업이 근간이고, 섬이라는 환경이 언어와 문화, 역사를 보호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제주말은 제주에서 나고 자란 이에게 정서적으로 큰 힘이 되는 동시에 한국말을 풍성하게 하고 농업자원을 잘 담는 그릇 역할을 톡톡히 한다. 제주가 좋아서 이주한 내게 제주말은 생경하지만 가까이하고 싶은 친구와 같다. 몇년 전부터는 친한 형님의 제주말 말투를 따라 하고, 내 말투를 놀리면 ‘무사 경 햄수과’(왜 그러세요)를 날릴 정도가 되었다.

경상도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청춘을 보내고 현재 제주에 살고 있는 나는 경상도말도, 표준말도, 제주말도 제대로 쓰지 못해 답답할 때가 있다. 하지만 경상도말은 고향 엄마와 통화할 때, 표준말은 전주 출신 아내와 집에서 대화할 때, 제주말은 마을에서 일할 때 써먹으니 이 또한 괜찮지 않은가.

홍창욱 <제주, 살아보니 어때?>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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