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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6.22 21:16 수정 : 2016.06.22 21:36

[매거진 esc] 라이프
2030세대에 부는 레코드판 바람…이태원 한복판 전문매장 생기고, 벼룩시장도 성황

서울 이태원에 문을 연 엘피 판매 매장 ‘바이닐 앤 플라스틱’. 이정국 기자

직장인 이수민(27·여)씨는 엘피(LP)에 관심이 많다. 2012년 1월 서울 중구 회현역 중고 엘피 가게에서 재즈뮤지션 레이 찰스의 음악을 듣고 나서부터다. “약속 때문에 지하상가를 지나가고 있었어요. 엘피 가게가 보여 신기한 마음에 쳐다보고 있었더니 주인아저씨가 들어오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아저씨가 레이 찰스의 앨범을 틀어줬는데 너무 좋아 자리에 털썩 앉아 한동안 계속 들었어요.”

2030에 부는 엘피 바람

이씨는 그 자리에서 3만원을 주고 엘피를 구입했다. 그 뒤로 해외구매 등을 통해 갖고 싶은 엘피를 10여장 모았다. 많지 않지만, 자신의 책꽂이 한켠을 차지한 엘피를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그렇다고 그가 집에 엘피를 들을 수 있는 오디오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모으고 있어요. 엠피(MP)3 같은 음악은 형체가 없잖아요. 그런데 엘피는 음악을 소유한다는 느낌을 줘요. 꼭 오래된 연애편지 같은 느낌이 나요. 낡아서 너덜너덜하지만 버리기 싫은 느낌이에요. 잡음이 나는 것도 완벽하지 않은 느낌을 줘서 좋아요.”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엘피를 듣는다’고 하면 무언가 고루한 취미 생활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이른바 ‘아재 취미’였다. ‘엘피의 소리가 시디(CD)보다 우월하다’는 오디오 마니아 사이에서의 논란도 ‘그들만의 리그’였다.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듣는 젊은층들은 “그게 뭐?”라는 반응이었다.

그런데 최근 엘피에 대한 젊은층의 시선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이씨처럼 ‘2030세대’에서 엘피 바람이 불고 있다. 우선 엘피 판매량의 변화가 눈에 띈다. 인터넷 음반·도서 판매업체인 ‘예스24’에 따르면 2010년 3838장 판매에 그친 엘피는 2015년 4만7148장이 팔려 10배가 넘게 성장했다. 2016년에는 5만여장을 돌파할 것으로 업체는 보고 있다. 20~30대가 지난해 판매량의 40%를 사갔다. 40대 37.3%를 뛰어넘는 수치다. 비록 20~30대를 합친 수치지만, 엘피를 직접 경험하지 못했거나 아주 어렸을 때 경험했던 세대가 엘피를 주로 들었던 세대보다 많이 사는 것이다. 엘피 판매의 폭발적 증가에 2030세대가 한몫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도 엘피 판매 뛰어들어

젊은층에서의 엘피 인기를 반영하는 ‘사건’도 생겼다. 현대카드는 엘피 판매를 위주로 하는 레코드숍 ‘바이닐 앤 플라스틱’을 10일 열었다. ‘바이닐’(vinyl)은 엘피의 정식 명칭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엘피는, 과거 한 면에 3~5분의 짧은 음악만을 담을 수 있었던 에스피(SP·숏플레잉)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나온 롱플레잉(LP)의 약자다.

바이닐 앤 플라스틱 전경. 현대카드 제공
서울 이태원 한복판에 지상 2층 규모로 세워진 이곳은 희귀 엘피를 포함해 4000종(9000여장)의 엘피를 보유하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다. 시디를 팔던 전통의 레코드숍이 문을 닫고 규모를 축소하는 상황에서, 대기업이 엘피 판매를 주로 하는 매장을 연 것은 이례적이다. 엘피가 대중문화의 한 트렌드로 자리매김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하다.

“지지직 잡음마저 신기”
엠피3과 다른 매력에 젊은층 반응
예술적인 커버 디자인에 반하기도
초보는 턴테이블 일체형 오디오가 적당

17일 들른 매장, 손님의 대부분이 20~30대 젊은층이었다. 여성 고객도 절반은 돼 보였다. 엘피를 고르던 한 20대 여성 직장인은 “그동안 엘피는 아저씨들이나 듣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보니 앨범 커버 등 디자인적 요소가 강해 예쁘다. 매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쪽엔 엘피를 직접 청음할 수 있는 곳이 마련됐는데, 빈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음악을 듣던 20대 남성 대학생은 “지지직거리는 잡음이 신기하다. 올드록을 좋아하는데 훨씬 느낌이 산다. 엠피3의 소리보다 음악성이 뛰어난 거 같다”고 말했다. 현대카드 쪽 집계에 따르면 하루 평균 800여명이 방문하는데 70% 정도가 20~30대라고 한다.

바이닐 앤 플라스틱에서 팔고 있는 다양한 턴테이블. 이정국 기자
엘피를 들을 수 있는 턴테이블을 파는 코너, 사람들은 빈티지한 턴테이블의 생김새에 “예쁘다”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과거 검은색 위주로 투박했던 턴테이블도 최근 젊은층의 인테리어 감각을 맞추기 위해 ‘컬러풀’하게 나오고 있다.

엘피의 인기를 가늠할 수 있는 행사도 있다. 18~19일 이틀간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센터에서 ‘서울레코드페어’가 열렸다. 올해 여섯번째인 이 행사는 90여개 중소규모 음반 업체들이 모여 엘피를 위주로 음반을 파는 일종의 벼룩시장이다.

18~19일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센터에서 열린 서울레코드페어. 이정국 기자
19일 찾은 행사장에는 이태원 ‘바이닐 앤 플라스틱’처럼 대부분의 관람객이 20~30대였다. 행사에 참가한 ‘김밥레코드’의 김영혁 대표는 “매년 관람객이 느는데 올해는 유독 늘어난 것 같다. 18일에만 4000여명이 다녀갔다. 특히 젊은층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행사에서는 최근 밴드로 변신한 원더걸스의 새 싱글앨범 <아름다운 그대에게>가 엘피로 처음 공개됐다. 신보를 음원이나 시디가 아닌 엘피로 첫 공개를 하는 것 자체가 파격적이다. 500장의 엘피는 18일 매진됐다.

엘피 커버는 영화 포스터처럼 인쇄돼, 음반보다 커버의 ‘디자인 예술’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팔리기도 한다. 행사장에서 만난, 미술을 공부한다는 20대 커플은 “골동품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젊은 느낌이 든다. 커버 디자인에서 예술적 가치가 느껴진다”며 엘피를 만지작거렸다.

원더걸스 새 싱글 <아름다운 그대에게> 엘피 커버. 서울레코드페어 제공
입문자는 일체형 턴테이블부터

서울레코드페어에서 원더걸스의 엘피가 다 팔리긴 했지만, 엘피를 산 대부분이 ‘들을 수가 없다’며 디지털 음원으로 변환해 유에스비(USB)에 담아 갔다고 한다. 턴테이블 같은 엘피플레이어를 가진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인테리어 소품으로 엘피를 구입한 게 아니라면, 소리를 직접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집에 오디오 시스템이 있고 앰프가 오래된 모델이라면 바로 엘피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과거 엘피가 주 음원이었을 때 만들어진 앰프 안엔, 턴테이블의 작은 전기신호를 증폭해주는 ‘포노(PHONO) 이퀄라이저(EQ) 앰프’가 앰프 안에 내장돼 있다. 이땐 앰프 뒤의 ‘포노 단자’에 턴테이블을 연결하면 된다.

엘피 음원을 유에스비(USB)에 저장할 수 있는 사운드룩의 턴테이블 오디오. 사운드룩 제공
요즘 나오는 앰프엔 포노앰프가 없는 경우가 많으므로, 별도로 구매해 앰프 뒤의 외부연결단자(AUX)와 턴테이블을 연결해야 한다. 포노앰프는 전문 오디오 브랜드의 경우 수십만원에서 수천만원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엘피 입문자이고, 음질에 그리 민감하지 않다면 차라리 포노앰프가 내장된 턴테이블을 사는 게 더 간단하다. 턴테이블을 살 때 포노앰프 내장형인지만 확인하면 된다. 포노앰프 내장형의 경우 ‘포노 이큐(EQ) 내장’이라는 표시가 돼 있다.

오디오 자체가 없다면 턴테이블에 스피커까지 달린 일체형 제품이 가장 편하다. 턴테이블 안에 앰프와 스피커까지 들어 있기 때문에 엘피만 있으면 소리를 바로 들을 수 있다. 대부분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들어왔던 20~30대 엘피 입문자에게 추천된다. 가격도 저렴해 10만원대부터 시작하고 디자인도 다양하다. 음질보다는 엘피 체험이 목적인 제품들이다. 요즘은 국산 제품들도 많이 나오는 추세다.

스피커가 내장돼 있는 아이온오디오의 턴테이블. 옥션 제공
주의할 점은 분리형이 됐든 일체형이 됐든, 엘피의 소리를 읽어내는 바늘(니들)을 300~400시간 사용하면 갈아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엘피를 듣는데 소리가 작아지거나 지글거리는 소리가 난다면 교체할 때가 된 것이다. 입문자용 턴테이블은 일반인도 손쉽게 바늘 교체가 가능하니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다. 바늘 값도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1만~3만원대로 큰 부담은 아니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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