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6.23 10:59
수정 : 2016.06.23 11:45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옐로스톤 협곡에서 만난 다큐 사진작가 릭 스미스
옐로스톤 국립공원 북동부, 라마 계곡을 탐방하고 돌아나와 옐로스톤 강 협곡에 걸린 타워 폭포를 보러 가는 길. 캐니언 로지 못미처 주상절리 지형 즐비한 협곡 전망대에서, 한눈을 찡그린 채 열심히 카메라 파인더를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을 만났다. 적당히 수염을 기른, 30대 후반의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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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매 암컷과 수컷의 교대 모습을 촬영하려고 기다리고 있던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릭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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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삼각대에 장착한 커다란 망원렌즈를 단 카메라를 협곡 아래쪽으로 위태롭게 들이민 모습이, 한눈에도 전문가의 자태다. ‘누군가 카메라를 들이밀고 있으면, 거기 반드시 흥미로운 뭔가가 있다’는 건 이미 겪었던 터다.
“저기 뭐가 있나?” “매다. 매를 기다리고 있다.”
매를 찍고 있는 게 아니라 기다리고 있단다. 그는 야생동물 다큐멘터리 영상을 제작 중인, 와이오밍주의 한 영상제작회사 소속 사진작가 릭 스미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가 친절하게도 협곡 절벽에 솟은 촛대바위 밑 바위틈을 계속 가리켰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저 바위 밑 틈 안에 매 둥지가 있고 거기서 매 암컷이 알을 품고 있다.” 그는 “매 암컷과 수컷의 교대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그는 고개를 돌려 절벽 밑을 살피다가, 다시 한쪽 눈을 찡그리며 파인더를 들여다보기를 반복했다. “매는 암수가 교대로 먹이를 구하러 다니고 알도 교대로 품는다. 지금 암컷이 알을 품고 있는데, 언젠가 수컷이 날아와 암컷과 교대할 것이다. 그 장면을 찍어야 한다.” 그는 매 수컷이 날아오는 모습을 찍기 위해 “새벽 5시30분에 이곳에 도착해, 5시간째” 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미국 케이블 방송 <스미스소니언 채널>에서 방영될,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경관과 야생동물을 다룬 6개의 테마를 2년째 촬영하고 있다. 한 달째 촬영 중인 이번 ‘옐로스톤의 봄’ 테마는, 앞으로 한 달쯤 더 찍어야 마무리될 거란다.
그는 “북미 전체에서 야생동물 촬영하기에 이곳만큼 좋은 장소도 드물 것”이라며 “좋은 사진을 찍으려면 자리를 잡고 오래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수컷 매가 날아올 때까지 몇 시간이든 기다릴 태세다.
작별 인사를 하고 돌아섰을 때, 크고 작은 카메라를 든 이들이 차를 세우고 다가와, 협곡을 내려다보며 그에게 물었다.
“저기 뭐가 있나.” 그가 대답했다. “매다. 매를 기다린다.”
옐로스톤 국립공원(미국 와이오밍주)/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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