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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7.13 21:26 수정 : 2016.07.13 22:03

[매거진 esc] 홍창욱의 제주살이

예래마을 논짓물. 홍창욱 제공

제주에 와서 여름휴가를 육지로 가본 적이 없다. 아니 휴가 자체를 써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여름을 보내고 싶은 휴가지, 제주도에 살고 있고 나름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기 때문이다. 제주시에 살 때는 트위터 친구들과 번개를 했는데 검은 모래로 유명한 삼양해수욕장에 모였다. 평일 저녁 파도소리를 들으며 먹는 맥주 맛이 기가 막혔다. 멀리 함덕이나 금능을 가지 않아도 소박한 바다를 만날 수 있으니 좋았다.

제주 서남쪽 마을에서 일을 하고부터 내 단골 여름휴가지는 제주시 초입에 위치한 이호해수욕장이었다. 퇴근길에 만나는 일몰이 너무나 아름다워 해가 바닷속으로 빠질 때까지 소나무숲 언덕 아래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맨발로 미지근한 바닷물 위를 걸으며 대금 연습을 할 때면 왠지 집시가 된 듯한 느낌도 들었다. 해변에 아이들 수영장이 있고 밤에는 영화도 상영되며 조명을 켠 밤바다에서 수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어떤 때는 풍등이 멀리 하늘 저편으로 올라가는데 노을과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이 몽환적이었다. 수질이 다른 해수욕장에 비해 덜 깨끗하고 모래도 덜 부드러워 제주 최고 해수욕장은 아니지만 시내에서 제일 가깝고 주변 여건도 좋아서 매일 찾았다.

아이들과 작정하고 물놀이를 갈 때는 튜브와 구명조끼를 차에 싣고 동쪽으로 간다. 함덕에서 시작한 물놀이는 사람이 많다 싶으면 김녕으로, 해파리가 출몰하면 월정으로 옮겨가게 되는데 평일 한산한 월정리 바다는 얕고 크기도 아담하여 놀기에 딱이다. 최근엔 카페가 많이 조성되어 찾는 이들이 늘면서 유명 관광지가 되었지만 바다가 어디 거기뿐이랴. 아래로 내려오면 우도가 코앞에 있고 카약을 맘 놓고 즐길 수 있는 하도도 있고 더 넓은 백사장에서 유유자적할 수 있는 표선도 있다. 안전하고 깨끗하며 비용 또한 거의 제로에 가깝다 보니 우리 가족 여름휴가의 8할은 바다에서 보낸다.

서귀포로 이사 오니 일상 휴가지가 더욱 늘었고 집에서 가까워졌다. 주말을 기다리지 않고 날씨만 좋으면 퇴근길에 아이들을 데리고 바다를 찾는다. 예래동 논짓물은 우리 가족의 단골 코스. 요즘 해안가나 포구에 아이들 수영장을 많이 짓는데 논짓물은 옛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멀리 중문과 서귀포 범섬까지 탁 트인 바다 전망이 탁월하고 용천수를 막은 수영장에 그늘막이 있어 어른들이 먹고 놀기에 좋다.

서귀포 시내 자구리 해안은 바닷물놀이장이 작지만, 언덕의 예술품을 감상할 수 있고 밤에는 조명이 있는 바닥 분수가 나와 아이들이 특히 좋아한다. 아주 더운 날에는 가끔 집에서 나와 천지연폭포를 거니는데 폭포에서 나오는 냉기와 시원한 폭포소리는 폭염을 떨치게 해준다.

내가 제주를 떠나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8월 초순에 열리는 제주국제관악제 때문이기도 하다. 제주도 동서남북의 해변과 폭포, 갤러리와 학교, 소공원 등 총 15개 공연장에서 펼쳐지는 관악제는 열대야로 잠을 못 이루는 시민들의 가슴을 뻥 하고 뚫어준다. 지난해 서귀포 천지연폭포에서 감상한 관악공연은 어찌나 환상적이던지. 공연이 끝나고 폭포야경을 감상한 것도 색다른 재미였다.

고향 경남 창원에서 아주 더울 때면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있는데 밀양 얼음골이다. 제주에는 밀양 얼음골을 능가하는 용천수가 해안가 마을마다 있는데 몇년 전 제주시 도두동 인근 작은 포구에서 경험한 얼음물을 잊을 수 없다. 포구 횟집에서 저녁을 먹고 나오는데 용천수 노천탕(홀캐물)이란 간판이 있어 술김에 손님들과 옷을 벗고 물을 맞았다가 온몸이 얼어붙는 경험을 했다. 단돈 500원에 이런 멋진 추억을 쌓을 수 있으니 이 또한 여름휴가를 제주에 꽁꽁 묶어놓는 이유가 아닐까.

홍창욱 <제주, 살아보니 어때?>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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