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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7.27 19:08 수정 : 2016.07.27 19:23

모양이 특이해 사진을 찍어 에스엔에스에 올렸던 렌즈구름. 홍창욱 제공

[매거진 esc] 홍창욱의 제주살이

모양이 특이해 사진을 찍어 에스엔에스에 올렸던 렌즈구름. 홍창욱 제공

7년 전 제주에 처음 왔을 때 3가지에 놀랐다. 첫번째는 제주 사람들의 눈썹. 진해도 너무 진했다. 특히 남자들의 눈썹은 숯이 많아서, 사람 많다는 제주시청 앞 대학로를 걸을 때면 남자들의 눈썹만 쳐다보았다. 나만 그렇게 보이나 싶어 주위에 물어보기도 하였고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기도 하였다. 결론은 내 눈썹이 덜 짙어서 민감하게 반응했던 거였지만 한동안 사람들 눈썹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두번째는 돼지고기의 맛. 가끔 회식 때 삼겹살을 먹었는데 맛이 기가 막혔다. 굳이 껍데기가 쫄깃하고 비싼 흑돼지를 먹지 않아도 제주 돼지고기의 맛은 내가 먹었던 여러 종류의 고기 중에 최고였다. 이유를 찾아보니 고기를 도축하여 식당에서 소비되기까지의 기간이 짧고, 좋은 공기와 물을 먹고 자라 원래부터가 맛이 다르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대학 시절 먹었던 싸구려 삼겹살은 냉장이 아니라 꽁꽁 얼은 냉동이거나 대패 삼겹살로, 먹고 나면 항상 배가 아팠던 것 같다. 매일 먹어도 맛있는 제주의 돼지고기지만 요즘은 수요가 공급보다 더 많아 수입산도 있고 육지에서 들여온 돼지고기를 쓰는 식당도 많다.

세번째는 구름이다. 수평으로 펼쳐진 지평선을 볼 때면 가슴이 뻥하고 뚫린다. 어린 시절을 보낸 창원 시골마을은 앞뒤로 작은 산이 있어 답답했고, 서울은 빌딩숲에 하늘이 가려져 있거나 그나마 있는 조각구름이라도 쳐다볼 여유가 없었다. 제주에서 차를 몰고 출퇴근을 할 때는 눈앞에 가득 보이는 하늘과 구름, 그 자체만으로 큰 기쁨과 여유를 누릴 수 있었다. 작은 언덕길을 넘어갈 때, 다음에 펼쳐질 전망이 파란 하늘에 시시각각 변하는 누군가의 하얀 붓터치이거나, 반은 에메랄드빛 바다이고 나머지 반은 하늘과 구름이라면 어떠할까.

제주에 맛있는 것을 먹거나 쉬러 오는 사람들은 많겠지만 구름을 보러 온다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세계 어느 곳에나 있는 구름을 제주에서 보고는 사진을 남기고 너무나 아름답다고 감탄을 한다. 왜 제주의 구름은 아름다울까. 우선은 캔버스 자체가 넓고 주위의 경관이 수려하기 때문이다. 대도시의 높은 빌딩숲을 걷다 보면 하늘이 노출되는 공간 자체가 좁아, 넓게 혹은 높게 퍼져 있는 구름 전체를 감상할 수 없다. 육지는 대부분이 산지로 둘러싸여 있는 데 반해 제주는 넓은 바다, 부드러운 선이 매력적인 오름이 있고 중심부에 한라산이 포인트가 되기 때문에 구름 전체를 섬의 여러 지형을 배경으로 조망할 수 있다.

등산을 하러 제주에 오는 사람은 올 때마다 날씨가 흐려 아쉽다는 얘길 많이 한다. 구름이 시야를 가려 아쉽기도 하겠지만, 구름이 한라산의 비경을 커튼처럼 가렸다가 조금씩 펼쳐서 보여주는 묘미도 있다. 멀리서 보던 구름을 눈앞에서 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 아닐까.

제주에 와서 수많은 구름을 보았지만 기억에 남는 구름들이 있다. 몇 년 전 제주시 지역에 사는 친구들이 에스엔에스(SNS)에 연달아 올렸던 렌즈구름과 가끔 산방산이 쓰는 구름모자는 신기해서 기록으로 남겨두었다. 나 또한 ‘제주에 사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렌즈구름을 찍어서 친구들과 공유를 했는데 제주 출신의 형은 별것도 아닌 것이 다 이유가 된다며 핀잔을 주었다. 늘상 눈 뜨면 보이는 구름이지만 짙은 파란색의 하늘에 뭉게구름이 피어날 때면 이상하게도 내 마음이 출렁거리고 당장이라도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진다. 제주의 구름처럼.

제주의 아름다움이 지속되려면 고정되지 않고 시시각각 변하는 구름, 이와 조화를 이루는 섬 전체의 경관과 조망, 하늘을 볼 수 있는 사람 마음속의 여유까지 모두 갖춰야 한다. 어려운 일이지만 가능한 일이지 않을까.

홍창욱 <제주, 살아보니 어때?>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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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ESC: 홍창욱의 제주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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