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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8.10 19:31 수정 : 2016.08.10 19:50

픽사베이

[매거진 esc] 홍창욱의 제주살이

픽사베이
“돈을 벌기 위해, 승진하기 위해 자신과 가족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던 시대는 끝났다. 정신없는 세상을 내려놓고 잠시 달을 쳐다보자.”

2012년에 나온 한 번역서에 추천사를 이렇게 썼다. 인생의 속도를 늦추면 행복이 보인다는 내용의 책이었는데, 제주에 내려와 농촌마을에서 일하는 내 삶이 그 책 편집인 눈에는 ‘다운시프트’(소득이 적어도 여유있는 생활을 하며 삶의 만족을 찾으려는 태도)의 삶으로 보였나 보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굴이 화끈거리는 표현이지만 ‘내 삶의 주인 되기’라는 인생철학에는 변함이 없다. 주인이 된다는 것은 삶의 방향과 속도를 전적으로 본인이 결정한다는 것이고, 그 삶에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속도를 늦추거나 멈춘다는 것은, 더디게 성장하거나 성장을 멈춘다는 것이다. 방향을 바꾼다는 것은 현재까지 왔던 방향과 정반대로 갈 수 있다는 점에서 역주행, 역성장을 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성장 위주의 삶이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지는 우리 삶에서 속도와 방향을 스스로 결정한다는 건, 결국 모든 사물에 관심과 의문을 가지고 그로부터 새로운 삶의 실마리를 얻는다는 말이다.

최근 몇 년간 제주 이주 붐으로 많은 사람들이 섬으로 왔다. 초기에는 ‘이민’을 가고 싶을 정도로 한국이 지긋지긋하다는 사람도 많았고, 이 속도로 살다가는 죽을 수도 있겠다 싶어 내려왔다는 사람도 많았다. 스스로 멈추고, 삶의 속도를 줄이고, 방향을 정반대로 바꾼 사람들. 몇 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물질적 만족은 덜하더라도 훨씬 인간다운 삶을 살고 있으리라. 한 번 멈춰본 사람은 안다. 삶의 여유와 깊이를. 그가 어떤 이유로 다시 멈추게 되더라도 한 번 멈춰본 경험이 있기에 조급해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으며 내실을 채워나간다.

나는 살면서 두 번을 멈추어보았다. 첫 번째는 서울의 삶을 멈추고 제주로 이주한 것이다. 서울을 떠난다는 것은 무미건조한 내 삶에 숨구멍을 낸다는 점에서 좋은 일이었지만 제주행은 내 인생에 가장 큰 도전이었다. 문화콘텐츠 산업의 인프라가 전혀 없었던 제주에서 ‘제주말 스토리텔링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지역을 아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출퇴근 시간은 걸어서 10분, ‘저녁이 있는 삶’을 누렸으니 ‘별 볼일 없던’ 서울의 생활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두 번째 멈춤은 다니던 제주의 회사를 그만둠으로써, 넥타이 매는 일반적인 회사생활을 그만둔 것이다. 회사를 그만둔 이유 중에는 돌 지난 아이를 내 손으로 키우고 싶은 욕심이 컸다. 5년 전 육아를 시작한 첫날, 대낮에 아이를 데리고 만날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회사 동료들이 점심때 야구를 하던 공터로 유모차를 밀고 갔다. 담장 너머로 바라보이는 그들과 나는 이미 다른 삶을 사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삶의 방향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3년 후엔 아이의 이쁜 모습을 육아책으로 내기까지 했다.

이제 마흔하나가 된 나는 세 번째의 멈춤을 기다리고 있다. 그동안 마을일(‘무릉외갓집’)을 하며 땀과 눈물을 흘릴 일도, 보람을 느낄 일도 많았는데 이제는 자립을 위해 잠시 멈추기로 했다. 두 번의 극단적인 멈춤과 방향 전환을 경험하며 배운 것은 현재의 나를 긍정하고 다시 시작하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또 멀리 보면 이 또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멈추기를 두려워했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제주와 육아, 마을을 지난 7년간 두루 겪었고 이는 내 삶의 큰 자산이 되었다. 고냐 스톱이냐, 더 고민하지 말고 마음이 가는 대로 가고 또 멈춰서자. 그때 보이는 것은 또 다르지 않을까. 멈춘 자리에 피어난 꽃과 나무가 나를 어떤 향기와 아름다움으로 이끌게 될지 기대된다.

홍창욱 <제주, 살아보니 어때?>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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