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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8.18 10:13 수정 : 2016.08.18 10:22

사양길 접어든 ‘정상적’ 여인숙의 두 갈래 길

대다수 여인숙 성매매 ‘그늘’ 속
일부선 장기투숙객·단골 상대 영업
지역공동체 운동 활발한 곳에선
청년·예술가 뜻모아 새단장하기도

낡은 여인숙에서 게스트하우스로 거듭난 춘천시 근화동의 ‘봄엔’.

불편하지만 저렴하고 조용히 묵을 수 있는 옛날식 여인숙 어디 없을까? 채송화·봉숭아꽃 흐드러진 작은 마당에, 쪽마루를 따라 이어진 작은 방들, 해 들면 따사롭고 비 오면 양철 지붕에 마당에 빗소리 자욱한 곳, 그리고 소박하고 친절한 주인아주머니…. 검색하고 추천받아 주변 분위기까지 확인해본 뒤 직접 찾아 나섰다.

“아이고, 오지 마씨요. 와도 못 잘 것인게.”

방은 있다면서 오지 말라는 건 뭔가. 군청을 통해 ‘여행자인데, 잘 만한 여인숙을 추천해 달라’고 해서 이름을 알아낸 전남 ㄱ군의 한 여인숙이다. 전화 속 여주인 ‘주장’을 종합하면 이렇다. “방에 선풍기밖에 없다. 너무 더워서 잘 곳이 못 된다. 모기도 많다. 모텔 가지 왜 여길 오느냐.”

찾아가 들여다본 이 여인숙은 망해가는 여인숙들 중에서, 그나마 꽤 괜찮은 ‘겉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50년 됐다는 ‘ㅁ’자형 한옥에, 작은 시멘트 마당과 꽃밭도 갖췄다. 주인은 친절했지만, 숙박 요청은 거절했다. “여름엔 그냥 문만 열어두는 거니까, 달방(월 단위 계약)이나 가끔 받고….” 굳이 숙박객을 안 받겠다는 이유가 설득력이 없었지만, 들여다본 방들은 정말 참을 수 없을 만큼 푹푹 쪘다.

이런 사정은 강원도 ㄴ시의 한 여인숙도 마찬가지. 줄강낭콩·동부 줄기가 벽과 지붕을 덮은, 주택 형식의 여인숙이다. 23년째 운영 중이라는 주인 이아무개(85)씨는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워서 못 잔다”고 했다. “여기서 자는 사람은 정해져 있어요. 혼자 사는 노인네들이나 막노동하는 사람들…. 달방이지.” 장기투숙자가 주된 고객이다. 그러고 보니 방 6개 중 5개의 문이 자물쇠로 잠겨 있다.

천안역 부근 한 여인숙의 객실.
천안역 앞 여인숙 골목.

쇠락한 골목의 퇴락한 숙소가, 갈 곳 마땅치 않은 가난한 홀몸노인이나 날삯노동자들에겐 요긴하고 저렴한 잠자리다. 여인숙에선 가물에 콩 나듯 찾아들어오는 숙박객보다, 적으나마 목돈을 쥘 수 있는 ‘달방’ 계약자를 선호한다. 그래도 두 곳 모두 이것저것 다 감수한다면, 봄가을 날씨가 선선할 때 하루쯤 묵어볼 만한 저렴한 숙소인 건 맞다.

여인숙 밀집 골목이 남아 있는 중소도시 여덟 곳을 둘러보니, 놀랍게도 여인숙 간판을 단 업소의 열에 아홉은 성매매 업소였고, 일부는 성매매 업소와 날삯노동자 등의 장기투숙 숙소를 겸하고 있었다. 특히 대도시, 중소도시를 막론하고 역 주변 오래된 골목들이나 재래시장 주변의 여인숙 골목에선 은근히 다가와 ‘놀다 가라’고 권유하는 할머니들을 숱하게 만났다. 장미여인숙·샛별여인숙·애련여인숙·물망초여인숙…. 모양도 예쁘고, 앙증맞고, 색깔도 빨간색·분홍색 일색의, ‘놀다 가는 여인숙’의 간판들이다. 이런 골목 들머리엔 사주팔자·철학관 간판을 내건 점집들이 즐비한 것도 공통점이다.

그러고 보니, 숙박을 거절한 앞의 두 여인숙 주인 모두 묻지도 않았는데 덧붙인 말이 하나 있다. “밤 시간 손님(놀고 가는 손님)은 ‘되도록이면’ 안 받아요.” 결국 두 곳 다 ‘달방’ 위주로 영업을 하고, ‘되도록 안 받’기는 하지만 가끔 ‘밤 손님’ 영업도 한다는 말씀. 여행자 숙박이 가능한 이 여인숙들도 ‘정상적인’ 모습은 아닌 셈이다.

이런 와중에 찾아낸 밝은 면 한 가지. 옛날식 여인숙을 찾는 ‘단골고객’이 여전히 있다는 사실이다. 해남의 한 여인숙 주인은 “나이 든 부부들이지만, 몇년째 꾸준히 찾아오는 분들이 있어 힘이 된다”고 했다. 주인은 단골들에겐 특별히, 에어컨·냉장고·욕실이 갖춰진 본채 내실을 내준다고 귀띔했다.

해남의 한 여인숙 객실.
그늘진 여인숙 골목에 또 다른 희망의 불빛도 보인다. 지역공동체 활성화에 뛰어든 지역 청년들과 이에 발맞춰 스스로 찾아드는 젊은 예술가들이 있어서다.

“손님이 한달에 400~500명쯤 돼요. 대부분 20대죠.”(봄엔 게스트하우스 조한솔 대표)

춘천시 근화동 옛 시외버스터미널 부근의 게스트하우스 ‘봄엔’은, 방치됐던 40년 된 ‘비선여인숙’ 건물을 임대해 새단장하면서 젊은 여행자들의 인기 숙소로 거듭난 경우다. 사회적 기업 동네방네협동조합 대표이기도 한 조씨는 “지역 활동가들과 함께 낙후된 여인숙 골목을 바꿔보려 게스트하우스를 열었다”며 “여관·여인숙 일색이던 거리가 젊은이들 발길로 조금씩 밝아져 가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2014년 6월 문을 연 이래 지금까지, ‘내일로 열차’를 이용한 대학생, 외국인 등 저렴한 숙소를 선호하는 8천여명의 손님이 이곳을 찾았다.

군산의 일본식 절 동국사 들머리엔 젊은 예술가들이 몰려드는 ‘여인숙’이 있다. 1960년부터 2007년까지 간장공장을 거쳐 여인숙(삼봉여인숙)으로 운영되던 2층 건물을 지난 2010년, 문화공동체 ‘감’과 지역 예술가들이 ‘창작문화공간 여인숙’이란 이름으로 새단장해 선보였다. 1층은 전시 공간으로, 2층은 작가들의 작업실 겸 숙소로 쓰인다.

군산 ‘창작문화공간 여인숙’ 간판
수원시 행궁동 벽화골목 낡은 한옥의 금보여인숙은 담벼락에 그려진 ‘황금 물고기’ 벽화로 이름난 곳이다. 100년 가까이 됐다는 한옥 여인숙의 간판과 내부는 낡았지만, 담벽을 따라 금빛으로 그려진 커다란 물고기는 생생한 모습이다. 2010년 벽화작업 프로젝트 ‘행궁동 사람들’에 참가한 브라질의 젊은 화가 라켈 ??브리가 그린 벽화다. 행궁동을 사랑했던 그는 안타깝게도 지난 6월 브라질에서 33살 나이로 세상을 떴다. 금보여인숙 부근 ‘예술공간 봄’(라켈이 머물며 작업했던 곳)에선, 지난 7월부터 라켈의 작품을 모아 추모전 ‘라켈을 기억하다’를 열고 있다.

대전의 대표적 ‘여인숙 게스트하우스’로, 젊은 여행자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대흥동의 ‘산호여인숙’은 올해 초 문을 닫아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하루 방값 최대 2만원

현실적으로, 여인숙은 세 가지 방법으로 소비된다. 당일 숙박과 한 달 단위의 장기숙박(달방), 그리고 ‘잠시 숙박’(흔히 ‘놀다 가기’로 표현하는 성매매)이다. 둘러본 8개 도시 여인숙의 당일 숙박 요금은 지역·위치에 따라 1만원, 1만5천원, 2만원 세 부류였다. 한 여인숙 주인은 “일용직 노동자나 외국인 노동자 등이 간청하며 깎아달라면 7천~8천원에 재워줄 때도 있다”고 했다. ‘달방’은 대체로 시설에 따라 10만원대 중반부터 20만원대 후반까지 가격이 형성돼 있다. 20만원대 ‘달방’ 중엔 에어컨·냉장고·욕실을 갖춘 곳도 있다. 역 주변 골목 여인숙들에서 횡행하는 ‘잠시 숙박’(성매매)은 8개 도시 모두 3만원이었다. 한 여인숙 주인은 “불러오는 여성은 대부분 40~50대”라고 했다. 이들 업소는 일반 숙박객은 받지 않았다.

춘천·수원·해남·강진 등/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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