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8.18 10:13
수정 : 2016.08.18 10:21
‘정통파 여인숙’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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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시 근화동 삼화여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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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싸고 허름한 숙박업소, 여인숙을 여인숙답게 하는 구성물이 있다. 옛날 여인숙이든 요즘 여인숙이든 거의 변함없이 전해오는, 여인숙의 뼈와 살이다. ‘여인숙의 추억’을 지탱해주는 요소이기도 하다.
우선, 빛바래 희미하거나, 글자의 획 하나가 떨어져나가거나, 전체가 삐딱하게 걸린 여인숙 간판. 그 아래나 옆에 청색이나 황토색 페인트칠이 벗겨진 녹슨 철문 또는 나무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선다. 한옆에 손바닥만한 꽃밭(채송화·봉숭아·맨드라미나 줄장미 따위가 피어 있는)이 딸린 작은 마당이 나오고, 마당은 ㄱ자나 ㄷ자, ㅁ자 형의 객실 건물에 둘러싸여 있다. 벽에 간혹 반쯤 찢어진 ‘지명수배자 명단’이 붙어 있지만, 오래된 것이니 ‘뜨끔’해할 필요는 없다.
객실의 황토색 문짝들은 긴 쪽마루와 사각 기둥을 따라 촘촘히 이어지고 또 꺾이는데, 꺾이는 쪽마루 옆으로 어둡고 축축한 ‘세면장’이 입을 쩍 벌리고 있다. 타일 바닥과 타일 욕조엔 붉은색 ‘고무다라’와 찌그러진 알루미늄 세숫대야가 물을 담고 바로 놓이거나 엎어져 있고, 수도꼭지엔 청·홍·녹색의 고무호스가 연결돼 칭칭 감겨 있다. 물론, 반으로 자른 빨랫비누와 머리카락 엉겨붙은 세숫비누 그리고 수세미가 뒤섞여 있는 게 보통이다. 세면장 부근엔 ‘화장실’(변소)이 있는데, 수세식 화변기에 쪼그려 앉으면 오른쪽 벽에, 용변 뒤 당겨서 물을 내리는 긴 줄이 늘어져 있다. 대개 손잡이는 젖어 있고, 주황색 계열의 나일론 빨랫줄이나 녹색 노끈 줄이 유난히 많다.
손잡이가 덜렁덜렁하는 문을 당겨 열면, 담배나 라이터 불에 검게 타 눌어붙은 자국이 보이는 누런 장판 깔린 비좁은 방. 앞서 누군가 싸질러놓고 떠난 사랑과 고독의 흔적이 떠다니는 게 느껴진다. 이 공간을 ‘브이티아르’(VTR)가 딸린 브라운관식 텔레비전과 먼지 낀 벽걸이 선풍기, 쟁반 위의 물주전자와 컵 2개, 재떨이 하나와 통성냥 한 갑이 채운다. 벽엔 물방울무늬 또는 붉고 푸른 단색의 커튼 쳐진 쪽창문이 뚫려 있고, 대개 지역 국회의원·새마을금고·농수축협장 따위 이름이 적힌 굵직한 글씨의 달력이 벽에 걸려 있다. 가끔 야시시한 주류회사 달력도 없지는 않지만 손을 많이 타 해어지거나 찢겨져 있다.
중요한 건 이부자리다. 요와 이불은 정갈하게 잘 개어져 베개 두 개를 올리고 있지만, 펴는 순간 실망하기도 한다. 뭔지 모를 얼룩과 길고 짧은 머리카락들이 눈에 띄는 경우다. 드물지 않게 발견되는 꼬불꼬불한 털들만 없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누워 잠들 땐 두런두런, 소근소근, ‘아이 참, 자꾸 왜 이래요’, 그리고 쿵쿵쿵쿵…같은 옆방의 소리는 한 귀로 흘리되, 꼬부라진 철제 문고리(또는 끈 문고리)는 단단히 당겨 걸어놓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이따금 한밤중에 대판 싸우는 남녀나 술꾼들로부터 안전할 수 있을 테니.
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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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금강여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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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평화장여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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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삼화여인숙 공용 세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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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평화장여인숙 객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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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평화장여인숙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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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 길손여인숙 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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