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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8.18 13:39 수정 : 2016.08.18 13:45

[매거진 esc] 라이프
음악감상실, 디지털화·고급화로 ‘3040 세대’서 다시 주목받기 시작

스트라디움 외관 전경. 스트라디움 제공

1970~1980년대는 음악감상실의 부흥기였다. 고가인 오디오가 대중화되기 전 사람들은 음악을 들으려고 음악감상실로 모여들었고, 그런 음악감상실은 상가 건물마다 하나씩 들어찼었다. 교복을 입은 학생부터 화이트칼라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같은 음악을 ‘다 함께’ 들었다. 신청곡도 받았다. 서울 종로 ‘르네상스’, 충무로 ‘필하모니’ 등이 유명세를 탔고, 대구의 ‘녹향’, 부산의 ‘필하모니’는 지금도 남아 있는 ‘1세대 음악감상실’이다.

1980년대 말엔 대학가를 중심으로 외국 가수들의 뮤직비디오를 틀어주는 ‘2세대 음악감상실’이 생겨났다. 입장료 3000~4000원을 내고 들어가 콜라, 환타 같은 탄산음료 한잔을 마시며 테이블 위 메모지에 신청곡을 적어내면 뮤직비디오를 틀어줬다. 뮤직비디오라는 말조차 생소하던 당시 한국에서, 선망하는 뮤지션의 연주를 화면으로나마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은 음악 애호가들에게 엄청난 매력이었다. 서울 신촌 ‘백스테이지’, ‘엠티브이’(MTV), 혜화동 ‘엠티브이’(MTV) 등이 유명했다. 상호에 엠티브이가 많았던 것은 대부분 이곳들이 미국의 뮤직비디오 전문채널인 <엠티브이> 뮤직비디오를 ‘떠서’(불법 복제를 뜻하는 은어) 틀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까지 유행했던 2세대 음악감상실은 1995년 개국한 케이블티브이(TV)에 직격탄을 맞았다. 안방까지 뮤직비디오가 들어오자, 사람들은 더는 입장료를 내고 음악감상실에 가지 않았다. 새 ‘밀레니엄’이 오기 전 대부분의 2세대 감상실은 문을 닫았다.

개업 60주년 맞은 ‘학림’은
엘피 대신 디지털음원 도입
스트라디움·뮤직라이브러리 등
기업의 대규모 음감실도 성업

‘학림’의 예스러운 내부. 이정국 기자

디지털·개인화·고급화로 ‘르네상스’

당시의 추억을 간직한 ‘3040 세대’가 문화 소비의 중심이 되면서, 음악감상실이 ‘부활’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열쇳말은 디지털화, 개인화, 고급화다.

감상실의 디지털화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올해로 개업 60년을 맞은 전통의 음악감상실 ‘학림’이다. 12일, 서울 대학로의 학림을 찾았다. 매장은 손님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입구 위쪽에 붙어 있는 고풍스러운 탄노이 레드 스피커와, 린 손덱 턴테이블은 60년 세월을 보여주는 듯했다. 앗, 턴테이블 위에 돌아가고 있어야 할 엘피(LP)가 보이지 않았다. 대신 한쪽에 작은 음원기계가 보였다. 바로 무손실 고음질 디지털음원을 재생하는 ‘아스텔앤컨’의 플레이어였다.

‘학림' 이충열 대표가 ‘아스텔앤컨'의 디지털음원 플레이어를 조작하고 있다. 이정국 기자
이충열 학림 대표는 “학림의 상징성은 지켜나가야 한다. 커피를 직접 볶고, 신청곡을 받고, 고풍스러운 내관을 지켜나가는 것 등 말이다. 하지만 이제 시대가 바뀐 것을 받아들일 필요도 있다”며 “음원기기 정도는 디지털화해도 괜찮을 거 같다고 생각해, 올해 초부터 디지털 음원을 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매번 판을 뒤집어야 하는 수고도 없을 뿐만 아니라, 주기적으로 턴테이블 카트리지를 교체하지 않아도 된다. 엘피 놓을 데도 없어 가게 바깥의 다른 곳으로 분산해 보관 중인데 디지털 음원은 그런 수고로움도 덜어준다”고 덧붙였다. ‘음질’을 묻는 질문에는 “물론 아날로그가 주는 맛이 있지만, 디지털 음원도 이제 상당히 우수하다”고 답했다. 개업 60년을 맞은 음악감상실이 음원을 디지털로 교체한 것은 분명히 상징적인 ‘사건’이다.

기업도 개인화, 고급화 전략을 내세워 대규모 음악감상실 운영에 뛰어들었다. 현대카드는 지난해 5월 ‘뮤직라이브러리’로 첫 테이프를 끊었다. 현대카드 회원이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2층짜리 음악감상실이다. 5달 뒤엔 아이리버가 뮤직라이브러리 길 바로 건너쪽에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의 ‘스트라디움’을 열었다. 지하에는 과거 음악감상실처럼 무대 쪽으로 의자를 배치해 뮤직 큐레이터가 선곡한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뮤직룸 2개가 있다. 위층에는 전문 음악 공연이 가능한 스튜디오와 루프톱 카페가 있다. 입장료 1만원을 내면 모두 이용할 수 있다.

개인별 음악 청취가 가능한 서울 이태원 ‘스트라디움’의 뮤직 앨코브. 스트라디움 제공
스트라디움이 특이한 것은 뮤직 앨코브(alcove)라는 개인 청취공간을 만들어 놓은 것. 앨코브는 벽면을 뒤로 밀어 공간을 만드는 건축양식인데, 이곳에서 편하게 혼자 앉아 헤드폰으로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물론 재생기기와 헤드폰은 수백만원대를 호가하는 고급 제품들이다. 12일, 뮤직 앨코브에서 음악을 듣던 30대 여성은 “근처(한남동)에 사는데 호기심에 처음 와봤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 너무 좋다. 보통 시간 날 때 만화방에 자주 갔었는데 훨씬 쾌적한 것 같다. 멤버십에 가입할까 생각중”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서울 신사동에 문을 연 ‘오드 메종’도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독일의 하이엔드 오디오 부르메스터 등으로 꾸며진 고급 음악감상실을 운영하고 있다. 입장료는 없으나 사전예약을 해야 한다.

음악감상실 재연 행사 열려

사라져간 음악감상실을 그리워하며 부활을 시켜보자는 움직임도 최근 있었다. 2002년 문을 닫은 동인천의 ‘심지’를 재현하는 ‘심지 리로디드’ 행사가 지난 6월 열린 것이다. 1981년 재즈와 클래식 전문 감상실로 문을 연 심지는, 1987년 뮤직비디오를 틀어주는 2세대 감상실로 탈바꿈해 팝과 록, 메탈까지로 감상실 음악의 장르를 넓혔다. 그래서 인천의 ‘록 키드’들에게 심지는 성지나 다름없었다고 한다.

지난 6월 인천에서 열린 음악 감상실 ‘심지’ 재연 행사. 오석근 작가 제공
인천 출신 직장인 이연희(39)씨는 “고등학교 때 남자친구와 자주 갔었다. 디제이(DJ)도 잘생겨 인기가 많았다”며 “당시 화장실이 무대 스크린 오른쪽에 있었는데, 그 때문에 여학생들이 화장실 가는 걸 창피해했다”고 추억했다.

심지 재현 행사가 열린 것은 그만큼 심지와 음악감상실을 추억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방증이다. 장소는 심지가 아닌 다른 라이브 클럽이었지만, 심지를 기억하는 50여명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당시 음악을 선곡하던 디제이를 불러오고, 기다란 소파까지 빌려와 그 당시와 비슷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행사를 기획한 사진작가 오석근(38)씨는 “중학교 때 우연히 친구 따라 심지에 간 뒤에 록 키드가 되어버렸다. 행사를 기획할 때만 해도 사람들이 올까 싶었는데 수십명이 모여 뮤직비디오를 보며 손을 흔드는 광경을 보니 가슴이 뭉클했다”고 말했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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