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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9.07 19:32 수정 : 2016.10.06 16:44

[매거진 esc] 강제윤의 섬에서 맛난 밥상
하의도 냉연포탕

하의도에서는 연포탕을 차갑게 먹는다. 강제윤 제공

대한민국 15대 대통령 김대중의 고향. 하의도에 가면 대통령에 대한 원망의 소리를 종종 듣는다. 고향에 특혜를 주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나그네는 그 원망이 찬사처럼 들린다. 대통령은 결코 특정 지역만의 대통령이 아니라 모든 지역의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새삼 그가 존경스럽다. 하의도는 또 섬 주민들이 조선의 정명공주 가문에 빼앗긴 농토를 300년 넘게 싸워서 되찾은 불멸의 땅이기도 하다. 드라마 <화정>의 주인공으로도 나왔던 정명공주는 선조의 딸이자 인조의 고모였다. 1623년 인조는 섬 주민들이 황무지를 개간해 만든 농토를 강탈해 정명에게 선물했는데 공주는 홍씨 가문으로 시집가면서 이 땅을 혼수품으로 가져갔고 대물림됐다. 하의도 농민들은 지난한 투쟁 끝에 1956년에야 겨우 농토를 되찾을 수 있었다. 극이 아닌 현실에 낭만 공주 따위는 없다.

내해와 외해의 경계에 위치한 신안의 하의·장산·신의도 인근 갯벌들은 ‘뻘’이 검다는 고정관념을 확 깨게 만들어준다. 속살을 파보면 우윳빛이다. 찍어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깨끗하다. 이 갯벌들에서 나는 낙지를 최고의 뻘낙지로 친다. 낙지는 가을낙지가 제맛인데 오뉴월 세발낙지가 가을이면 문어만큼이나 굵어진다. 옛날에는 아이들 키만큼 큰 것도 있었다. 그런데도 돌낙지와는 달리 뻘낙지 살은 질기지 않고 더없이 부드럽다.

하의도 사람들도 남도 사람답게 낙지탕탕이와 초무침 같은 낙지 요리를 즐긴다. 하지만 그들이 무엇보다 선호하는 요리는 연포탕(연포)이다. 연포탕은 본래 낙지와는 무관한 음식이었다. 옛 문헌에는 두부와 닭고기로 끓인 국을 연포탕이라 했지만 요즈음은 연포탕이라면 낙지 요리를 말한다. 하의도 사람들이 먹는 연포탕은 우리가 익히 아는 그런 뜨거운 연포탕이 아니다. 냉연포탕이다. 차가운 국물에 삶은 낙지와 야채를 곁들인 요리다. 낙지 살은 쫄깃하고 국물은 고소하고 감미롭다. 여름에만 냉연포탕을 먹는 것이 아니다. 하의도 사람들에게 연포탕은 언제나 냉연포탕이다. 인근의 신의·장산도 역시 같다. 겨울에는 조금 따뜻한 국물로 낼 뿐이다.

목포와 신안 섬들을 오가는 여객선에서 우연히 그 여인을 다시 만났다. 그는 오랫동안 하의도에서 식당을 운영하며 냉연포탕을 만들어 맛으로 찬사를 받았었는데 아쉽게도 이제는 접었다. 그에게 연포탕은 어릴 적 어머니가 늘 해주던 밥반찬이었다. 그때는 낙지가 지천이었다. 저녁 찬거리가 필요하면 어머니는 집 앞 갯벌로 나갔다. 뻘에 들어갈 필요도 없이 물웅덩이의 돌멩이 하나를 뒤집으면 거기 낙지들이 바글거렸다. 갯벌이 냉장고였다. 가을이면 어린 그도 낙지를 잡으러 가곤 했는데 물웅덩이에는 산란이 끝나 흐물흐물한 어미 낙지 몸에 수없이 많은 새끼들이 거미 떼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새끼들은 어미의 몸을 뜯어먹고 컸다. 자신의 몸을 새끼들에게 다 내준 어미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소녀는 어미를 먹고 자라는 낙지의 생태를 보며 알 수 없는 비애를 느꼈다. 슬픔의 정체를 알게 된 것은 자신도 어미가 되어 새끼들에게 살을 내주게 된 뒤였다.

어머니는 끓는 물에 낙지를 살짝 데쳐놓고 낙지 삶은 물은 식혔다. 낙지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고 다시 낙지 삶은 물에 텃밭에서 잘라온 부추를 넣었다. 거기에 소금 간을 하고 부뚜막의 식초와 마늘, 풋고추와 참깨 등의 양념을 하면 냉연포탕이 완성됐다. 모든 음식은 주재료가 신선하고 풍성해야 맛이 산다. 하지만 요즈음은 낙지 값이 비싸 연포탕에도 낙지보다 채소나 과일 같은 것이 더 많이 들어간다. 하의도에서도 냉연포탕은 집집마다 약간씩 다르다. 전통 방식대로 맑은 연포탕을 고집하는 집도 있고, 칼칼한 맛을 내기 위해 고춧가루를 약간 넣는 집도 있고, 도시인들의 입맛에 맞춰 물회처럼 달달한 초장 소스를 만들어 쓰는 집도 있다. 미리 얘기하면 맛은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국물을 차게 해서 내는 점은 어느 집이든 동일하다. 하의도 인근 뻘낙지는 섬 지역 밖으로 나가는 일이 드물다. 맨손어업으로 소량씩만 잡기 때문이다. 이 가을, 냉연포탕을 맛보러 남도 섬 여행을 떠나야 할 이유다.

강제윤 시인, 섬연구소장. facebook.com/jeyoon.kang.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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