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6.09.08 11:29 수정 : 2016.09.08 13:01

[매거진 esc] 스타일
십대와 부모·교사 사이 갈등 요인 ‘색조화장’ 어떻게 봐야 할까

(※클릭하시면 확대됩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전국 각급 학교에 배포한 '똑똑한 화장품 사용법' 책자 표지와 내용. 원래 내용을 바탕으로 눈에 잘 띄게 가공했다. 그래픽 홍종길 기자 jonggeel@hani.co.kr

평소 ‘친구 같은 엄마’를 지향하는 임성민씨(41)는 얼마 전 딸의 생일 때 파우더팩트와 립틴트, 아이라인 펜슬을 선물했다. 딸은 올해로 중학교 1학년이고, 색조화장은 지난해부터 시작했다. “요즘은 ‘중2병’이 아니라 ‘초6병’이라고들 하잖아요. 처음에는 너무 일찍부터 외모에 신경 쓰는 것 같아 잔소리도 했었는데, 친구들도 죄다 틴트는 바른다면서 어찌나 난리를 치던지. 이젠 그냥 제 또래다운 욕구로 인정해주려 애써요. 날라리 아니냐고요? 아뇨, 학원 한번 안 빼먹는 성실한 애예요.”

몇 달 전에는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일도 있었다. 학교 춘계수련회가 코앞으로 다가온 무렵이었다. 딸애 앞으로 택배가 왔기에 뭘 샀느냐 물었더니 웬걸, 택배의 진짜 주인은 딸이 아니었다. 같은 반 친구였다. 상자를 열자 ‘뽁뽁이’로 칭칭 감긴 화장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남의 물건에 더는 손댈 수가 없어 세세한 품목은 보지 못했으나, 딸의 말에 따르면 인터넷 쇼핑몰에서만 파는 ‘대란템’들이라 했다. “그 집 부모님이 너무 엄해서 저희 집 주소를 썼대요. 순간 뭐랄까, ‘공범’이 된 것 같아 헛웃음이 나면서도 한편으론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화장도 음지보다는 양지에서 하는 게 그나마 낫지 않을까 싶은. 이성교제처럼요.”

초6이면 이미 보편화
“민낯이 예뻐” 훈계보다
화장품 성분·피부 성질 알려주고
꼼꼼한 세안 돕는 게 현실적

당연한 말이지만, 화장이 초등학생이나 중·고등학생에게 등 떠밀어 권장할 일은 아니다. 단지 피부에 해롭다거나 성조숙증과 여성암을 유발할 수 있어서만은 아니다. ‘여자라면 모름지기 화장을 해야 한다’는 잘못된 젠더 인식과 외모지상주의의 ‘씨앗’이 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정신건강에도 그다지 이로울 건 없다. 좀더 솔직한 이유도 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전소영(35)씨는 이렇게 말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화장할 시간에 공부나 더 했으면 좋겠고, 다른 학부모들이 자칫 ‘문제아’처럼 볼까봐 걱정된다는 것. 이게 아마도 화장을 반대하는 부모들의 솔직한 속내일 거예요.”

어른들의 시각이나 대처 방식이 어떻든, 생각보다 훨씬 많은 십대들이 화장을 한다. 이건 뭐, 립틴트를 바르면 입술이 붉어지고 미백크림을 바르면 얼굴이 뽀얘지는 것만큼이나 분명한 사실이다. 대한화장품학회지의 2013년 발표를 보면 중·고등학생 1092명 가운데 52.2%가 색조화장을 하고 있고, 색조화장을 하는 학생의 43.2%가 초등학교 때 화장을 시작했다. 같은 해에 발표된 논문 <중학생의 화장품 사용 실태 및 소비 성향>에서는 중학생들이 많이 쓰는 색조화장품 순위를 조사했는데, 1위가 비비크림, 2위가 틴트, 3위가 립글로즈, 4위가 아이라이너 순서였다.

같은 또래 모델과 앙증맞은 디자인의 제품들은 청소년들의 화장 욕구를 자극하기도 한다. 페리페라가 청소년 배우 김소현을 모델로 찍은 마스카라 광고.

십대들은 화장을 이미 유행처럼 즐기고, ‘뷰알못’(뷰티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 노력하며, 유튜브 영상을 보며 화장법을 배운다. 입문 패턴은 주로 이렇다. 초등학생 때는 틴트밤 정도를 바른다. 중학생으로 ‘레벨 업’된 뒤에는 미백크림이나 비비크림을 바른다. 아이라인을 그린다. 아이섀도를 칠한다. 홑꺼풀이라도 상관없다. ‘쌍테’(쌍꺼풀테이프)나 ‘쌍액’(쌍꺼풀액)을 쓰면 되니까. 여드름 자국은 컨실러로 보완한다. 그렇다고 성인 화장을 하지는 않는다. ‘투명화장’이 진리다. 파운데이션이 아니라 미백크림(사실상 톤업크림)이나 비비크림을 바르는 건 어디까지나 ‘쌩얼’처럼 보이기 위해서다.

소풍이나 축제, 수련회가 있을 때는 평소보다 좀더 신경을 쓴다. 돈이 부족하기 때문에 주로 로드숍이나 인터넷에서 저가 화장품을 구입한다. ‘단톡방’에서는 중고 화장품 거래도 활발하다. ‘스킨푸드’, ‘미샤’, ‘더페이스샵’, ‘네이처리퍼블릭’, ‘에뛰드하우스’. 이런 브랜드들은 십대들의 ‘갑’이다. 새로운 강자는 ‘토니모리’와 ‘비욘드’고, 클렌징 제품으로는 ‘클린앤드클리어’, ‘티엔’도 쓴다. ‘이니스프리’와 ‘마몽드’는 십대 화장품치고는 고가이기에 선물로 받기를 희망한다. 부모님으로부터, 친구들로부터. 생일선물이나 졸업선물로, 아니면 ‘애인과의 100일’ 선물로.

‘네 나이 때는 화장 안 한 얼굴이 제일 예쁘다’는 말은 식상한 ‘꼰대질’에 불과하다. 순진하게도 학교나 가정의 훈수가 먹힐 것이라 생각했다면 지금이라도 거둬들이는 게 좋다. 꾸지람도, 단속도 별 소용이 없다. 서울에 있는 한 초등학교 교사는 “초등학생 때는 그래도 하지 말라면 안 하는 편이지만, 졸업한 제자들은 대부분 풀 메이크업을 하고 찾아온다”고 말했다. 중학생 황아무개(16)양은 “우리 학교는 단속이 센 편인데도 한 번도 걸린 적이 없다”며 “선크림만 바르되 일부러 백탁 현상이 있는 제품을 고르거나, 선크림과 베이스를 2:1로 섞어 바르면 된다”고 ‘티 안 나는 화장 비법’을 귀띔했다.

또 다른 중학생 최아무개(15)양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요즘은 걸그룹 아이오아이(I.O.I) 소미의 화장법을 따라하는데, 부모님이 너무 싫어해서 등교하면 화장을 하고, 하교할 때면 지운다. 화장품 파우치는 친구한테 맡긴다.” 아이오아이 전소미는 최양과 동갑이다. 비슷한 또래인 배우 김소현, 김유정, 김새론 등도 십대들에게는 최고의 ‘워너비’ 스타인데, 공교롭게도 모두 화장품 모델이다.

추세가 이렇다 보니 아예 현실적인 대책들도 나온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1월 전국 초·중·고등학교에 ‘소중한 내 피부를 위한 똑똑한 화장품 사용법’ 책자를 전국의 초·중·고교에 배포했다. ‘예쁘게’가 아니라 ‘안전하게’에 초점을 맞춘 책자다. 안만호 식약처 대변인은 “청소년들에게 화장을 어떻게 해야 예쁘다거나 무조건 하지 말라는 말은 많이 해도, 올바르고 안전하게 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곳은 없다”고 책자를 낸 취지를 밝혔다.

1 스킨푸드 젤리포 마스크. 스킨푸드 제공 2 미샤 미니언즈 시리즈. 미샤 제공 3 잇츠스킨 마카롱 립밤. 잇츠스킨 제공

책자에는 이런 지침들이 담겨 있다. 씻지 않은 손으로 크림을 덜어내선 안 되고, 눈과 입술에 쓰는 화장품은 친구와 같이 써서는 안 된다. 퍼프나 아이섀도팁 같은 화장도구들은 중성세제로 세탁해 완전히 말린 뒤에 써야 한다. 색상이나 냄새가 변하거나 물과 기름이 분리된 화장품은 미련 없이 버리고, 립스틱은 공기 중에 있는 먼지나 세균과 잘 흡착하기 때문에 밥을 먹기 전에는 지우는 게 좋다.

청소년기의 피부는 피부장벽이 성숙되지 않아 자극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임이석 피부과 전문의는 “같은 화장품이라도 성인보다는 청소년이 쓸 때 유해성분이 쉽게 침투한다”며 “색조화장품은 대체로 성인들에게 맞춰져 있다는 점을 고려하고, 유분기가 많은 화장품은 피지 분비가 활발한 사춘기에 트러블을 일으킬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화장품을 고를 때는 사용기한을 성인보다도 더 꼼꼼히 따져봐야 하고, 파라벤이나 디부틸히드록시톨루엔(DHT) 같은 화학성분이 들어갔는지도 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강나연 객원기자 nalotos@gmail.com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