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9.22 10:46
수정 : 2016.09.22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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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흐르며 추억·감동 부르는 근현대 ‘생활유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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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늘어나고 있는 근현대 생활사 박물관들은 잡동사니 창고를 방불케하는 곳이지만,‘ 추억의 공간’이자 ‘역사 학습장’이기도 하다. 파주 헤이리 한국근현대사박물관 전시공간의 일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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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모두에게 흔적을 남기고 흔적은 추억이 되어 돌아온다. 어릴 적 우표 모으기, 동전 모으기 한번 안 해본 이 드물 것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추억의 축적’ 방식이다. 최근 ‘응칠’ ‘응사’ ‘응팔’ 등 1980~90년대 평범한 서민층의 세세한 일상을 다룬 드라마가 잇따라 방영돼 큰 인기를 끌었다. 그 시대를 거쳐온 이들에게 당시의 일상생활 도구들과 장난감, 상품, 놀이시설, 티브이(TV) 프로그램,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장면들이 애잔한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추억의 열쇠가 된, 당시 흔하게 쓰이고 버려졌던 일상 생활용품들은 ‘생활유물’로 남았다.
어느 시대 생활용품이든 잡동사니 틈에서 이렇게 살아남아 유물이 되는 물건과 고물로 버려지는 물건이 있다. 유물과 고물, 그 차이가 뭘까? 생활유물 전문가들은 “일반적으로 물량이 얼마나 되는가, 즉 희소성의 원칙에 따라 유물과 고물이 갈릴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 시기가 오래될수록, 원형이 살아 있을수록, 그리고 일상생활에 밀착했던, 즉 많은 이들이 공유했던 것일수록 가치 있는 유물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보면 우표 모으기, 동전 모으기는 일반적인 생활유물 수집의 시발점이다.
국립민속박물관 김창호 학예사는 “근현대 생활사에서 유물이란, 다수에게 대표적인 ‘기억의 아이콘’으로 간주되는 물건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희소성 등 자료적 가치 외에 관람객 처지에서 볼 때 특별한 감동을 안겨주는 물건이라면 무엇이든 생활유물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고물이고 유물이고, 가치가 있고 없고를 떠나 세월이 흐를수록 애착이 가고 추억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통로가 되는 물건이라면, 모두 힐링(치유)에 이르는 자신만의 ‘생활유물’이 아닐까. 추억은 감동을 낳고 감동을 통해 힐링이 되게 마련이니 말이다. 경기 파주 헤이리 한국근현대사박물관 최봉권 관장은 “추억 어린 생활유물들을 만나 감동에 젖는 일이야말로 ‘힐링’이라 할 만하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건, 소소한 물건 모으는 취미가 나날이 발전하고 확장돼나간 끝에 ‘나도 감동하고 다른 이도 감동시키는’ 엄청난 생활사 유물을 수집하게 된 이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한 시기 일상적으로 쓰이다 소멸해가는 옛 물건들에 특별한 애착을 갖고 수집에 몰두해온 사람들이다. 거의 평생을, 거의 전 재산을 쏟아부어 전국을 돌며 방대한 분량의 근현대 생활유물을 모아, 전시공간을 마련한 이들도 적지 않다. 앞의 두 곳을 비롯해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박물관과 충남 부여 백제원, 제주 선녀와 나무꾼 등 최근 전국적으로 늘고 있는 공식·비공식 생활사박물관들이 바로 이런 이들의 노력과 고통과 보람이 어우러진 결과물이다.
주요 규모 있는 박물관에 전시된 생활유물들은 그 물량이 상상을 초월한다. 수천 품목 수만 가지 물건들이 관람 통로를 따라, 마구 쌓여 있다고 할 정도로 빽빽하게 진열돼 있다. 대충 보겠다면 30분이면 충분하지만, 한걸음 한걸음 다른 표정을 하고 나타나는 ‘추억 속 물건’들에 마음을 주며 찬찬히 살펴보려면 몇 시간도 모자란다. 해설을 신청해 설명을 들으며 둘러볼 수 있다. 머무는 시간만큼 감동이 커지는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문득, 우리의 인식 깊숙한 곳에 차곡차곡 쌓여 있던 그 시절의 흔적들이 하나하나 생명을 얻고, ‘행복한 추억 속’으로 우리를 데려갈 수도 있다.
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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