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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9.29 08:35 수정 : 2016.09.29 09:12

[esc] 커버스토리
풍동도서관 손편지 쓰기 강좌 들어보니…“삶과 인간관계 성찰할 기회”

“휴대폰 하나면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상대와 소통할 수 있는 시대인데 왜 우울증 환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늘어만 갈까요?”

지난 22일 저녁 7시 ‘삶이 바뀌는 기적의 손편지’ 수업이 진행된 경기 고양시 풍동도서관 교양교실이 술렁였다. <기적의 손편지> 지은이 윤성희씨가 던진 기습질문에 수강생들의 눈빛이 흔들렸다.

학창시절 손편지 추억 간직한
40~50대 여성 수강생이 다수
“가족·친구들 응원 편지 쓰고파”
글씨 탓 말고 진심 담는 게 비결

긴 침묵을 깨고, 10여명의 수강생 가운데 이나영(38)씨가 말문을 열었다. “힘들고 외롭다고 털어놓을 수 있는 누군가가 없어서일 거예요. 자신의 얘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절실했을 것 같아요.”

“네. 맞아요. 단 한 명이라도 ‘나 힘들어. 구해줘’라고 에스오에스(SOS) 편지를 쓸 친구가 있었다면…. 손편지가 사라지는 것과 비례해 세상이 점점 각박해지고 있어요. 지금 손편지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윤씨의 설명에 이씨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7년 동안 부산에 사는 또래 여자친구와 펜팔을 했어요. 사춘기 방황의 시절, 손편지를 나누며 슬기롭게 넘길 수 있었어요. 그 이후로 손편지를 써본 기억이 없는데, 이젠 쓰고 싶어요.”

“여기 오신 분들도 모두 손편지를 쓰고 싶어서, 써보겠다고 오신 분들이죠? 제 강의를 들으면 쓸 수 있습니다. 잘 쓸 수 있어요. 여러분들을 시작으로 우리나라에 손편지 바람이 불어오기를 희망합니다.”

“네!”

평소 가족과 지인들에게 편지를 자주 쓰는 유정아(55)씨도 강좌에 기꺼이 참여했다. 그는 “요즘 부쩍 허전했고,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고 싶은 욕망을 느꼈다”고 말했다. 유씨는 강의를 듣기 전, 젊은 시절 친구들과 나눴던 빛바랜 손편지들을 꺼내어 다시 읽었다고 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친구들, 이들과 함께 주고받았던 편지가 그립다”고 말하는 그의 눈가가 촉촉이 젖었다. 이나영씨도 “40년 가까이 살았지만, 내가 힘들 때 손을 내밀어줄 친구는 많지 않은 것 같다”며 “누군가가 내게 편지를 준다면 큰 힘이 될 것 같은데,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강의를 신청했다”고 말했다.

수강생들의 열의는 초반부터 뜨거웠다. 대부분 학창 시절 친구들과 편지로 우정을 나눈 추억이 있는 40~50대 중년 여성들이었다. 유방암에 걸린 친구한테 친구들이 의기투합해 손편지로 희망을 줘 회복하게 만든 사연, 대학교 절친과 사소한 오해 때문에 10년 넘게 왕래하지 않다가 손편지를 계기로 우정을 회복한 사연, 동서간의 갈등을 손편지로 해소한 사연 등등…. 너나 할 것 없이 경쟁적으로 자신들이 경험한 ‘손편지’와 관련한 일화들을 아낌없이 쏟아냈다.

수강생들은 2~3개의 단어를 활용해 문장을 구성하면서 글쓰기에 거부감을 줄이는 ‘실전 훈련’도 했다. 윤씨는 편지에서 중요한 건 그 안에 녹아 있는 진실한 마음과 정성이지 형식과 문체·글씨체가 아니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가령 응원편지라면, ‘결과’보다는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고 ‘과정’을 믿는 내용을 담는 것이 중요하다. 시험을 앞둔 친구에게 “시험 잘 봐! 파이팅~, 힘내!”가 아니라 “1등이 아니어도 괜찮아. 너는 이미 최고야!” 같은 내용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편지가 꼭 길 필요도 없다. 윤씨는 “음료의 겉포장을 바꾸거나, 한 장의 포스트잇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날 강의의 핵심은 ‘손편지=닫힌 마음을 여는 마법의 열쇠’였다. 손으로 꾹꾹 눌러쓴 편지 한 통은 값비싼 선물보다도 더 사람의 마음을 열어주는 특별한 열쇠가 된다. 손편지는 서로의 삶을 사느라 소원해진 관계를 복원해주기도 하고, 학창 시절의 친구들과 새롭게 우정을 맺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평생을 함께할 인연도 진심과 정성이 담긴 손편지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

2시간30분의 수업이 끝날 즈음 수강생들의 표정에선 ‘편지를 반드시 쓰고 말겠다’는 의지가 읽혔다. 수강생들은 “편지쓰기가 자신의 삶과 인간관계를 성찰하고 재발견하는 기회를 준다는 걸 깨달은 것이 큰 수확”이라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최은주(46)씨는 “가족한테도 손편지를 잘 안 썼다. 편지를 통해 가족과 관계회복을 해볼 생각인데, 기대된다”며 만족해했다. 황경미(57)씨는 “가족과 지인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도 글쓰기가 두려워 실천을 못했다”며 “나도 글 잘 쓰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어 기쁘다”고 말했다.

22일 처음 열린 풍동도서관의 손편지 강좌는 10월20일까지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풍동도서관 교양교실에서 무료로 진행된다. 문의 (031)8075-9144.

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사진 풍동도서관 제공

■ ‘기적의 손편지’ 윤성희 작가의 편지쓰기 꿀팁
“받는 이가 공감할 이야기 써보세요”

윤성희 작가
손으로 직접 쓴 편지는 인간관계에서 어떤 의미일까. <기적의 손편지>를 쓴 윤성희 작가는 손편지가 “받는 이에게 무한한 감동과 위로를 준다”고 말한다. 편지지를 고르고, 편지를 쓰고, 우표를 붙이는 일이 모두 받는 사람을 생각하며 이뤄지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즉각적인 감정 표현이 가능한 카카오톡과 달리, 손으로 꾹꾹 눌러 편지를 쓰는 데는 많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 그는 “손편지는 그 시간과 정성까지 전달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도구”라고 했다. 지난 22일 윤 작가를 만나, 손편지 잘 쓰는 법을 물었다.

-손편지를 잘 쓰는 노하우가 있다면?

“편지는 수필이다.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서 사실 특별한 방법이 있다고 하긴 어렵다. 다만, 편지는 다른 수필들과 달리 수신인이 정해져 있다. 그 사람을 떠올리면서, 그에 맞는 이야기를 최대한 잘 쓰는 게 노하우라면 노하우다. 나는 이걸 ‘7 : 3의 법칙’이라고 부르는데 받는 사람 이야기를 70%, 쓰는 사람 이야기를 30% 비율로 맞추는 것이다. 안부편지라고 할지라도 내 얘기만 써 놓은 편지를 상대방은 원하지 않는다. 받는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찾아서 쓰면 좋다.”

-글솜씨와 글씨체가 나빠 손편지를 망설이는 사람도 있다.

“편지도 글이라, 많은 분들이 ‘미문’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름다움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예쁜 글보다는 솔직한 글이 더 감동을 준다. ‘가을바람이 불어오고, 낙엽이 떨어지고…’ 이런 문장보다 ‘가을이 왔습니다’라고 쓰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글씨는 ‘개성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문장도 그렇지만, 글씨 또한 사람마다 잘 쓴 것과 못 쓴 것을 구별하는 기준이 다르다. 최인호, 피천득, 레오나르도 다빈치, 베토벤… 모두 개성체의 소유자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꾸준히 작품을 썼기에 작품과 이름이 남았다. 글씨 탓하지 말고 꾸준히 쓴다면, 누군가의 가슴에 잊히지 않는 이름으로 남을 것이다.”

-손편지의 효과를 배가시키는 방법이 있다면?

“격언을 인용하거나 스티커·그림을 넣을 수 있겠다. 둘만의 특별한 관계를 표현하는 호칭을 쓰는 방법도 추천한다. 편지지 대신 한지나 자신이 직접 찍은 사진 등에 편지를 쓰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나는 사진을 애용하는 편이다. 요즘엔 우체국에서 편지에 접수 스티커를 붙여주는데, 우표와 국제우편봉투를 활용하면 상대방에게 색다른 감정을 전할 수 있다.”

-꼭 긴 편지여야 할까?

“편지라고 하면 길게 써야 한다는 강박감을 많이들 갖고 있다. 그러나 짧은 엽서나 사진 뒷면에 적는 몇 줄의 글도 훌륭한 편지가 된다. 가족이나 동료, 친구라면 포스트잇이나 작은 쪽지에 한두 줄을 적는 것도 효과 만점이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버리고, 편한 마음으로 누군가를 떠올리면서 진심을 글씨에 담았으면 좋겠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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