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10.05 19:19
수정 : 2016.10.05 19:31
[매거진 esc] 홍창욱의 제주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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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제주올레걷기축제 때 월령포구에서 먹은 점심. 홍창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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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는 축제가 많은 곳이다. 제주도청 홈페이지에 등록된 축제만도 대략 80개, 작은 단위의 마을축제를 포함하면 100개는 충분히 넘을 것이다. 몇 해 전부터 특색이 없고 프로그램이 중복되는 축제를 줄이려고 하는데도 이 정도다.
왜 축제가 이렇게 많을까? 특정 지역, 마을에 선심성으로 주어지는 예산도 이유가 되겠지만 지역 특산물의 소비 촉진이나 홍보, 경기 활성화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주다. 전국 각지의 지자체에서 경쟁하듯 축제판을 벌여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이를 통해 지역 상권을 살리겠다는 거다. 취지는 이해하지만 많아도 너무 많다. 며칠 전, 내가 집행위원으로 참여했던 서귀포의 대표적 축제 ‘서귀포 칠십리 축제’가 열린 주말 동안 제주에서 열린 축제만 7개다. 아무리 가족 단위로 외출하기 좋은 10월의 첫 주말이라 해도 이러면 지역민도 관광객도 분산될 수밖에 없다.
제주에서 7년을 살며 참여했던 축제를 꼽아보면 대략 10개고, 이 중 부스에 참여한 축제가 5개다. 특히 기억에 남는 나만의 축제를 꼽으라면 3개로 압축된다. 제주의 3대 축제 가운데 하나로 불리는 ‘제주마 축제’(9월30일~10월2일)는 처음 제주에 와서 경험하게 된 축제여서 기대가 컸다. 제주경마공원에서 펼쳐지기 때문에 기반시설이 잘 되어 있고 테마가 확실하여 기대 수준만큼 만족도 컸다. 제주마 콘텐츠를 체험하는 부스를 운영하며 가족 단위의 방문객을 많이 만났는데, 아이들이 좋아하는 아이템이야말로 축제의 생명임을 알 수 있었다.
다음으로 특색 있는 것이 바로 먹거리 관련 축제다. 내가 일하고 있는 대정 지역은 유난히 로컬푸드 축제가 발달되어 있다. 11월의 ‘최남단 방어축제’(12~15일)는 지역에서 제법 알려졌을 뿐만 아니라 관광객도 많이 찾는 축제로 다양한 방어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지난해에는 수온이 상승하여 축제용 방어를 마련하는 데 비상이 걸릴 정도였는데, 올해는 찰진 대방어회를 맛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매해 7월에 열리는 ‘대정암반수 마농축제’는 마늘을 홍보하는 취지로 열리지만 전국 마늘의 10%가 생산되는 주산지 농민들을 위한 성격이 짙은 편이다.
내가 제주에서 최고로 꼽는 축제는 바로 ‘제주올레 걷기 축제’(10월21~22일)다. 2011년부터 5년 동안 빠짐없이 참가했다. 이 축제에서 독특한 것은 올레길 위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공연, 체험, 식사, 서로 간의 소통, 이 모든 것이 걸으면서 진행되니 매년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가 없다. 모든 축제는 그 축제에 돈을 지원한 지자체장의 개회식 선포로 시작이 된다. 하지만 올레축제는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행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그 길을 걷는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사람의 행렬이 바다와 오름, 하늘과 겹쳐진다. ‘아, 올해도 장관을 다시 보게 되는구나’ 하는 마음에 벌써부터 설렌다.
아쉬운 점도 있다. 몇 년 동안 농산물 판매·체험 부스를 운영하거나 도시에서 온 회원들과 마을 주민이 함께 걷기를 하다 보니 정작 나는 이 축제를 한 번도 수요자 처지에서 제대로 느낀 적이 없다. 그래도 마을 주민들이 정성을 다해 만든 식사를 흙바닥에 주저앉아 맛있게 먹는 참가자들을 보면 이 축제가 누군가에겐 새로운 브랜드로 자리잡겠구나 싶다. 길 위에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만나, 조각보처럼 생긴 밭을 오름에서 함께 내려다보는 건 덤으로 주어진 행복이다.
몇 해 전 우도가 보이는 성산의 한 해변에서 제주도립교향악단 단원들이 칼바람에 손을 녹이며 공연하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중산간 저지마을의 올레길에서 열린 ‘들국화’의 공연을 보며 아내와 열광했던 순간 또한 생생히 기억한다. 축제는 이렇게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하거나 참가자들을 행복하게 할 때만 지속가능하다. 누군가의 가슴을 뛰게 하고 기다리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축제의 본령이 아닐까.
홍창욱 <제주, 살아보니 어때?>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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