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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0.13 10:58 수정 : 2016.10.13 11:07

[esc] 맞벌이·1인가구 늘며 쓰임새 줄어든 주방 되살리기

개수대를 거실 쪽으로 둔 ‘대면식’ 주방. 이장경씨 제공
초등학교 6학년 아이를 둔 직장인 권혜미(41·경기 고양시)씨는 최근 주방이 지나치게 크게 느껴진다. 불필요한 공간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나마 아이가 어릴 땐 주방에 출입했는데 좀 크고 나니 들어갈 일이 거의 없어요. 남편은 저녁까지 먹고 들어오고 아이도 학교에서 대부분 급식으로 해결해요.”

주말에 간혹 집밥을 해 먹으면 결론은 “외식하는 게 낫다”로 모인다. 출입이 줄어드니 주방 불은 대부분 꺼져 있다. 배달 음식을 먹어도 거실 탁자가 식탁을 대신한다. “1990년대에 지어진 아파트라 주방이 쓸데없이 커요. 차라리 거실이 더 컸으면 좋겠어요.” 주방은 밥을 해 먹는 공간이 아닌 잡동사니를 쌓아놓는 ‘반 창고’처럼 돼버렸다.

거실 쪽으로 개수대 끌어내니
가족 대화·집밥 기회 늘어
수납장 놓고 식탁 상판 바꾸자
머물고 싶은 공간’으로

“주방 좋아한다” 6% 불과

권씨처럼 맞벌이와 1인가구가 대세가 되면서 주방은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주방이 다른 공간보다 상대적으로 큰 집들이 지어졌다. 주방 안에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인터폰 등을 설치하는 인테리어도 유행했다. 가족 구성원들이 그만큼 주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주방은 변방이다. 늘 불은 꺼져 있고, 개수대에는 어쩌다 해 먹은 밥 때문에 생긴 밀린 설거지거리만 가득하다. 밥을 같이 먹는다는 뜻의 ‘식구’는 의미를 상실한 것처럼 보인다.

최근 나온 설문조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지난 9월 가구업체 이케아 코리아가 여론조사업체 티엔에스(TNS)코리아에 의뢰해 한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으로 ‘주방’을 고른 사람은 6%에 그쳤다. 1위는 거실(51%), 2위 침실(32%)이었는데 차이가 컸다.

수납장을 활용해 주방을 정리한 예. 김주리씨 제공
가족 위한 주방 부활 움직임

이런 흐름 속에서도 주방을 ‘가족 생활의 중심’으로 바꿔보려는 사람들도 있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 밥을 해 먹고 설거지를 하는 시간을 통해 소통과 교감을 시도하려는 이들이다.

올 1월 경기 판교에서 전세로 살던 32평 아파트를 산 주부 이장경(32)씨는 인테리어를 새로 하면서 예산 대부분을 주방 꾸미는 데 투자했다. 다른 곳은 도배만 새로 하는 정도로 끝냈지만 부엌의 경우는 구조부터 과감하게 바꿨다. 주방의 역할을 되살리기 위해서다. “맞벌이를 하니까 주방에 있을 일이 거의 없었어요. 저녁은 당연히 야근이었고, 주말도 거의 외식이었어요. 주방이 방치 상태였죠.”

이씨의 선택은 주방 개수대를 벽에서 거실 쪽으로 끌어낸 것이다. 상하수도관을 거실 쪽까지 끌어와야 해 녹록지 않은 공사였지만 단행했다. 한국 주방의 대부분은 요리를 하든 설거지를 하든 벽을 보게 돼 있는 ‘벽면식’인데, 그 시간에 가족과 마주볼 수 있는 ‘대면식’으로 공간을 바꾼 것이다. 요리를 할 수 있는 아일랜드 식탁만 거실 쪽으로 둬도 대면식 주방이 되지만, 이씨는 좀더 욕심을 냈다.

다양한 크기의 벽수납장 조합이 가능한 ‘메토드' 시스템. 이케아 코리아 제공
효과는 컸다. “전에는 벽을 보고 있으니 아이(4살)가 거실에서 무엇을 하는지 한편으론 걱정이 됐어요. 하지만 이제 아이를 보면서 요리나 설거지를 하니, 마음이 편해요.” 주방에 머무는 시간도 길어졌다. “가족을 보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대화할 기회가 많아지더라고요. 주말 외식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죠.” 이씨는 바뀐 주방 구조에 만족해했다.

‘주방의 부활’에 꼭 비싼 비용이 드는 건 아니다. 인천 송도 35평 주상복합아파트서 사는 항공사 승무원 김주리(30)씨는 최근 ‘정리’를 통해 주방 살리기에 성공한 사례다. 출산을 앞두고 휴직 중인 그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주방 정리였다. “서로 바쁘니까 밥을 잘 해 먹진 않았어요. 가끔 뭘 해 먹더라도 그냥 거실에 들고 와서 먹었었죠. 주방은 역할이 없었다고 봐도 돼요.”

출산을 앞둔 그는 이대론 안 되겠다 싶었다. 전세라 마음대로 구조를 바꿀 수도 없었다. 그는 수납장을 최대한 활용했다. “자질구레한 것들을 안 보이도록 했어요. 보이는 곳엔 그동안 모아왔던 피규어 등을 놓았죠. 그랬더니 주방이 예뻐 보이고 자꾸 가고 싶더라고요. 최근에는 밥도 많이 해 먹고 활용도가 높아졌어요.” 그도 나중에 집을 사면 아일랜드 테이블을 거실 쪽으로 두는 대면식으로 주방을 꾸미고 싶다고 했다.

건축사무소 담의 박하연 대표는 “최근엔 가족 중심의 대면식 주방으로 구조 변경을 하는 경우가 많다. 구석이라는 느낌을 주던 주방이 가정 생활의 중심으로 나오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1인가구라도 포기하지 마세요

좁은 공간에서 활용도가 높은 ‘순네르스타' 미니주방. 이케아 코리아 제공
함께 사는 가족이 없는 1인가구라고 해서 주방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가족이 없다고 주방의 기능마저 없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주방에 조금만 신경을 쓰면 친구를 초대해 함께 밥을 먹을 수도 있고, 혼자라도 ‘우아한 한끼’를 즐길 수 있다.

프리랜서 최상욱(32)씨는 혼자 살면서 주방을 적극적으로 꾸민 사례다. 그는 외식보다 집에서 파스타 등 요리해 먹는 것을 즐긴다. 천편일률적인 흰색 부엌이 싫어, 별도로 아르누보풍(덩굴, 담쟁이 등 식물의 형태나 독특한 곡선·무늬가 특징인 양식)의 녹색 대리석 상판을 주문해 아일랜드 식탁 위에 얹었다. 수납장 손잡이는 가죽으로 덧씌웠다. 어머니가 모았다 전해준 로열코펜하겐이나, 크리스토플 같은 고급 식기도 개방형 수납장에 넣었다. “제가 보기에 예쁘니까 주방에 있는 게 더 즐거워지더라고요.”

조리대 상판만 바꿔도 주방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 사진은 ‘바르카보다 조리대'. 이케아 코리아 제공
최씨처럼 부엌을 확장할 수 없는 1인가구는 이렇게 식탁이나 개수대 상판을 바꾸기만 해도 분위기 전환이 된다. 개성 있고 저렴한 가격의 상판이 많이 출시돼 있다. 주방 벽의 색을 바꾸는 것도 시도해봄직하다. 최근엔 손쉽게 벽에 붙일 수 있는 타일이나 시트지도 많이 나와 있어 셀프 시공이 가능하다.

수납 공간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정리가 안 돼 지저분한 주방은 보고 있기만 해도 심란하다. 요즘엔 소형 주방에 적합하도록 조합이 가능한 모듈형 수납장이나, 이동식 수납장도 많아 좁은 공간을 최대한으로 활용할 수 있다. 아예 조립과 해체, 이동이 자유로운 미니 주방까지 나와 있다.

안톤 허크비스트 이케아 코리아 인테리어디자인 총괄은 “한국 대부분의 주방이 빌트인 형태라 구조 자체를 바꾸는 게 어렵다는 것을 안다”며 “상대적으로 주방 공간이 넉넉하면 아일랜드 식탁을, 주방이 상대적으로 작은 1인가구는 다양한 형태의 수납장을 사용하면 좁은 주방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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