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10.19 21:28
수정 : 2016.10.20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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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고창 도산리의 탁자식 고인돌. 얼마 전까지 민가 장독대가 옆에 있어서, 장독대 고인돌로도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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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커버스토리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역사 품은 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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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고창 도산리의 탁자식 고인돌. 얼마 전까지 민가 장독대가 옆에 있어서, 장독대 고인돌로도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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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하디흔한 게 돌이다. 돌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뚫어지게 바라보면 알 수 있을까. 오래 들여다보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 땅에 나뒹구는 돌덩어리엔 선사시대부터 살아온 조상들의 숨결이 스며 있기 때문이다.
지구는 하나의 커다란 돌덩어리다. 사람은 돌 부스러기 틈에서 태어나 돌 틈으로 돌아간다. 사람은 돌을 쪼개고 다듬고 일으켜 세우며 삶의 자취를 남겼다. 그 돌에 기대어 돌과 함께 살아온 흔적들이 지구촌 곳곳에 남아 있다. ‘고인돌의 나라’이자 ‘빗돌의 나라’인 우리나라는 더욱 그렇다. 우리 민족은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만주 벌판과 한반도 일대에서 돌과 함께 생활해온 족속이다. 석기시대·청동기시대의 무덤이자 제단이었던 고인돌 무리와, 바위에 새긴 그림(암각화)들, 종교적 신념으로 다듬고 새긴 무수한 불교 유적들, 그리고 주로 권력층이 권세를 유지하려고 남겼던 각양각색의 비석이 전국 곳곳에 남아 있다. 돌을 활용했기에, 무너지고 쓰러지고 닳아가면서도 무수한 세월을 버텨올 수 있었던 귀한 유산들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강의 ‘고인돌 왕국’으로 불린다. 세계 7만여기의 선사시대 고인돌 중 절반 이상이 우리나라에 있다고 한다. 남방식·북방식, 탁자식·바둑판식·개석식 등 다양하게 분류되는 크고 작은 고인돌이 전 국토에 공동묘지를 이루고 있다. 돌에 깃들어 살아왔다는 방증이다. 대표적 고인돌 분포지인 강화·고창·화순의 고인돌 1000여기는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선사시대에, 바위벽에 또 고인돌에 새겨 넣은 동물상·도형 등 다채로운 그림도 매혹적인 기록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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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고령 장기리의 암각화. 양전동 암각화로 불렸지만, 행정구역 개편으로 ‘장기리 암각화’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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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흔해서 방치되고 주목받지 못해온 선정비·불망비·공적비 등 빗돌 무리는 고을마다 몇십 기씩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품고 남아 있다. 이색 빗돌도 즐비하다. 노비를 기려 세운 충노비, 의견의 활약을 새겨 넣은 충견비, 꿈에 나타난 도깨비를 기려 세운 비석에 하마비·척화비·금표비 등에도 그 시대의 삶과 역사가 기록돼 있다. 왕자의 태를 묻어 보관했던 태실은 어떤가. 태실 문화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특이한 돌문화 유산이다.
선사시대 고인돌 무리와 암각화(바위 그림), 조선시대 주요 고을마다 즐비하게 세워진 빗돌 무리, 거기 깃든 이야기를 만나러 간다. 고인돌과 비석 쪼가리 여행이라니…, 얼핏 돌처럼 딱딱하고 무겁고, 고리타분한 이야기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 돌에 깃든 선인들의 삶의 자취를 더듬노라면, 돌 속에서 해와 달이 뜨고 지고 청춘도 사랑도 흐른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시가 그걸 귀띔해준다.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주었네…(하략)….(이성복의 ‘남해금산’ 일부)
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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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화순 효산리~대신리의 바둑판식 고인돌 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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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부근리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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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고령시청 옆에 모아놓은 선정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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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성주의 ‘세종대왕자 태실’. 세조, 단종 등 19기의 태실이 모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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