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10.26 19:23
수정 : 2016.10.26 20:20
[ESC] 강제윤의 섬에서 맛난 밥상
여수 소리도 해녀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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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홍합이 백미인 소리도 해녀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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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동아시아 바다의 가장 큰 해적은 대마도에 근거를 둔 왜구였다. 하지만 고려?조선인 해적들도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은 이들을 작전에 활용하기도 했다. 인천의 이작도는 본래 이름이 이적도였을 정도로 고려시대부터 해적의 근거지로 유명했다. 남해 바다에서 해적섬으로 유명했던 곳은 여수의 연도다. 본래 섬 중앙의 시루봉이 솔개를 닮아 소리도라 했는데 지명이 한자로 바뀌는 과정에서 솔개 연(鳶)자, 연도가 됐다. 지금도 등대는 소리도 등대라 하고 섬사람들도 소리도라 부른다. 소리도에 살던 해적의 이름까지 전해진다. 1592년께 장서린이란 해적 두목과 부하 수백명이 소리도 필봉산 중턱에 청기와 망루까지 지어놓고 해적질을 했었다고 한다. 관군에게 체포돼 장서린의 해적 생활은 끝이 났지만 아직도 소리도에서는 이곳을 ‘서린이 큰 도둑놈 집터’라 부른다.
해적 이야기와 함께 소리도에는 유난히 숨겨진 보물 이야기가 많다. 한마디로 보물섬이다. 먼바다에 위치해 물살이 센데다 은둔하기 좋은 지형 때문에 관군의 추적을 피하기 쉽고 외국을 오가는 상선들도 풍랑을 피해 자주 들어왔던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소리도에는 보물 동굴로 알려진 곳이 몇 개 있다. 그중 하나는 후백제 왕 견훤의 사위이자 고려 건국공신인 순천(승주) 호족 박영규의 보물 동굴이다. 서남해 제해권을 가졌던 그는 해상무역을 독점해 부를 축적했는데 소리도는 그의 해상 근거지였다 한다. 그 박영규가 소리도의 동굴에 엄청난 금덩어리를 숨겨두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소리도 등대 부근 솔팽이굴도 보물 동굴이란 이야기가 있다. 1627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상선이 일본에서 황금을 싣고 인도네시아 식민지로 가던 중 해적선에 쫓기게 되자 소리도 솔팽이굴에 급하게 보물을 숨겨 놓고 네덜란드로 도망쳤다는 것이다. 선장은 네덜란드에 돌아가서는 보물의 위치를 성경책에 표시해 두었다. 350년의 세월이 흐른 1972년 한 네덜란드계 미군이 한국 근무를 하게 됐는데, 어느 날 그 미군이 카투사였던 소리도 출신 손연수씨에게 지도를 꺼내놓고 보물 이야기를 전했다 한다. (지도상의 표시는 ‘SOJIDO’로 되어 있었다 하니 통영의 소지도일 가능성도 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본 손연수씨는 그 섬이 자신의 고향인 소리도라 생각하고 제대 후 동굴 탐사를 했으나 보물을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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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조선홍합, (오른쪽)뿔소라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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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어난 경관만큼이나 보물 같은 이야기들이 많은 섬 소리도. 진짜 보물은 바닷속에 있다. 보물을 캐는 광부는 소리도 해녀다. 현재 8명의 해녀가 있는데 제주 출신과 소리도 출신이 반반이다. 소리도 해역은 해산물이 풍부하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소리도 해녀가 차려내는 해녀밥상은 화려하기 이를 데 없다. 밥상에는 소리도 바다가 다 들어가 있다. 전복, 문어는 기본이고 과거 결혼식 잔치 음식으로 빠지지 않던 거북손, 군부(군봇), 배말(삿갓조개) 무침에 해산물 탕국, 합자(조선홍합)까지 전부 소리도 바다에서 해녀가 건져 올린 것들이다. 바다가 차려주는 풍성한 밥상. 그중에도 압권은 조선홍합과 뿔소라 구이다. 손바닥만큼 큼직한 홍합의 살은 쫄깃하면서 달다. 또 넓적하게 포를 떠서 구워낸 뿔소라 구이의 감칠맛은 전복으로 가는 손길을 되돌리게 만든다.
대체 이런 밥상이 어디 숨겨져 있다 이제야 나타난 것일까. 도시 생활에 지친 자신에게 포상 휴가를 주고 싶을 때 받으면 딱 좋을 선물 같은 밥상이다.
글·사진 강제윤 시인·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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