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11.09 19:26
수정 : 2016.11.09 19:30
[ESC] 강제윤의 섬에서 맛난 밥상
전남 진도군 모도의 꽃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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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진도군 모도의 꽃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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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행거사, 무장공자. 손암 정약전이 <자산어보>에서 거론한 게의 별칭들이다. 옆으로 걷는다 해서 횡행거사, 창자가 없다 해서 무장공자다. 등딱지 안에 노란 살이 있어서 내황후라고도 한다. 횡행거사니 무장공자니 하는 별칭은 게의 행태에서 비롯된 부정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속창아리(철) 없는 놈, 정도를 가지 못하는 놈이란 뜻으로 쓰인다. 그래서 과거 우암 송시열이나 사계 김장생 집안 등의 양반가에서는 게 먹는 것을 금하기도 했다 한다. 정도를 가지 못하고 창자도 쓸개도 없이 사는 삶의 태도를 경계하기 위한 경책이었을 것이다. 속 창자가 없거나 말거나 옆으로 걷거나 말거나 선인들과는 달리 요즘 사람들의 게에 대한 사랑은 무조건적이다. 꽃게, 대게, 털게부터 킹크랩까지 무한정이다. 게살이 주는 에로틱한 맛 때문일까. 딱딱한 외피를 벗겼을 때 드러나는 한없이 부드러운 속살은 왠지 입맛을 달뜨게 한다.
진도군 모도 선창가. 해마다 영등 철이면 바다가 갈라져 진도 본섬과의 사이에 신비의 바닷길이 생기는 바로 그 섬이다. 꽃게잡이 그물을 가운데 놓고 선주 가족들이 둘러앉아 바다에서 거둬온 그물에서 꽃게를 따고 있다. 어느 섬엘 가나 올해는 물고기의 씨가 말랐다고 아우성이다. 꽃게 또한 마찬가지다. 그래서 조업을 포기한 어선도 수두룩하다. 정부나 언론은 물론 어민들까지 중국 어선들 탓으로만 돌리지만 나그네가 보기에는 자업자득인 측면도 있다.
중국 어선이 없던 과거에도 우리 바다에 조기와 꽃게의 씨가 말랐던 적이 있다. 치어까지 마구잡이로 잡아들인 선주들의 탐욕 탓이었다. 그렇게 사라졌던 어족들이 인간의 손길을 피해 깊은 바다에 숨어 개체 수를 늘리는 게 탐지되자 우리는 또 쫓아가 미친 듯이 싹쓸이해왔다. 이제 다시 어족의 씨가 마를 때가 된 것이다. 얘기가 잠깐 옆길로 샜다. 하지만 실상 무관한 얘기는 아니다. 어족의 씨가 마른다면 무슨 해물요리인들 가능하겠는가. 오래오래 맛난 음식을 먹기 위해서라도 함부로 남획하지 말자는 얘기다. 안 그러면 영영 맛볼 수 없게 된다.
귀한 꽃게가 오늘 모도 어부의 그물에는 사과처럼 주렁주렁 열렸다. 우리에게 익숙한 꽃게 요리는 찜이나 탕, 무침이나 간장게장 정도다. 실상 이 또한 배불리 먹기는 힘들다. 옛날에는 꽃게 알을 말린 꽃게 알포란 것도 있었지만 지금은 꿈도 꾸지 못할 요리다. 오늘 모도의 어부는 새로운 꽃게 요리법을 알려준다. 그는 칠십 평생을 어선만 타고 살았다. 한국 바다를 바늘로 꿰라면 꿸 정도로 바다 사정에 훤하다. 배를 탔을 때 그의 최고 “쏘주 안주”는 꽃게 회(
사진)다. 그냥 생선회처럼 날것 그대로 먹는 회다. 통영 지역에도 꽃게 회란 것이 있다. 싱싱한 꽃게를 급랭해놨다가 꺼내서 자른 뒤 양념간장을 부어서 먹는 것이다. 발효를 시키지 않고 생것을 그대로 먹는다는 것이 게장과의 차이점이다. 그런데 모도 어부의 꽃게 회는 좀 더 야생적이다. 날것 그대로의 꽃게 회.
어부는 평생 배를 탔던 그의 작은아버지에게 꽃게 회 먹는 법을 배웠다. 꽃게를 민물에 잘 씻은 뒤 게딱지와 몸을 분리하고 맞춤하게 잘라서 접시에 올리면 그만이다. 소스는 간장에 다진 마늘과 풋고추, 참깨, 참기름을 넣어 만든다. 고추냉이나 겨자를 곁들여도 좋다. 즉석에서 꽃게를 손질해 회를 만들었다. 하얀 속살이 탱탱하다. 꽃게 다리를 하나 들고 장에 찍어 입에 넣으니 다디단 속살이 눈 녹듯이 녹아버린다. 전혀 비리지 않다. 살짝 냉장 숙성을 거치면 더 감칠맛이 날 듯도 하다. 그래도 이 얼마나 호사인가. 선창가에서 꽃게 회라니. 어부가 한마디 하신다. “재벌도 이 맛을 모를 거야.” 바다 박사 어부가 알려주는 팁 하나. “수족관에 있는 산 꽃게는 맛없어. 뱃멀미, 차멀미에 시달리느라 진이 다 빠져 부러. 차라리 배에서 막 잡아 급랭한 것이 더 맛나.”
글·사진 강제윤/시인·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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