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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1.16 19:22 수정 : 2016.11.17 08:50

[ESC] 홍창욱의 제주살이

비행기를 놓쳤던 청주공항. 홍창욱 제공
지난 8년 동안 육지를 다녀오려고 참 많은 비행기를 탔다. 제주공항을 이용할 때 항상 위치기반 소셜미디어에 체크인 기록을 남기는데 횟수를 세어보니 매월 1번 이상은 꼭 비행기를 탔다. 어떤 이들은 난생처음 비행기를 타고 제주 여행을 오는데 나는 제주에 사는 이유로 매번 비행기를 타야 타지로 갈 수 있다.

지금은 비행기 타는 것이 일상이지만 처음 비행기를 탈 때는 어떻게 표를 끊어야 하는지 어떻게 탑승을 해야 하는지 어렵고 헷갈렸다. 시골 사는 사람이 대도시 지하철을 처음 탈 때의 그 느낌과 똑같다고 봐도 된다. 옆에 몇 번 타본 사람이 있으면 다행이지만 모르는 사람에게 물어보고 따라 하는 것이 쑥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제주에서도 읍·면 지역엔 살아보지 않아서 공항 이용에 특별히 어려움은 없었다. 제주시 지역은 많은 버스가 공항을 기점으로 하고 서귀포시 지역 또한 공항행 리무진버스가 중문단지를 들러 자주 운행된다. 물론 첫 비행기를 타려면 서울과 마찬가지로 택시를 타거나 차를 끌고 공항으로 가야 한다.

제주에 살면서 여태 시간이 늦어 비행기를 놓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비행기 타는 것이 일상이라서 그런 듯하다. 하지만 사람 일을 장담할 수가 있나. 지난달 세종시 조치원에 출장을 갈 때 일이다. 지갑에 신분증 넣는 것을 깜빡했는데, 공항에 도착해서야 알게 됐다. 다행히 제주공항은 규모가 크다 보니 법무부 직원이 보안검색대에 상주한다. 확인을 받고 탑승에 성공했다.

문제는 ‘육지 공항’에서 발생했다. 조치원에서 열린 귀농·귀촌 사례 발표회 시상식에서 상을 받고 청주공항으로 향하는데 마침 비가 왔다. 배도 고파왔다. 대개 공항 식당의 밥맛이 일반식당보다는 못하니 급하게 포털 검색을 해 공항 인근에서 저녁을 먹게 됐다. 혼자 온 손님이라 그랬을까. 식사는 한참 있다 나왔고, 밥을 다 먹고 나니 비행기 시간이 임박해 있었다. 마지막 비행기였다.

비 오는 밤이라 택시는 잡히지 않았다. 허겁지겁 탄 버스는 거북이처럼 빈 정류소를 일일이 정차했다. 공항까지 세 정류장 남았을 때, 휴대전화에 불이 나기 시작했다. 항공사 직원이 어디냐고 계속 전화를 한 것이다. 겨우 공항에 도착했을 땐 출발시각 15분 전. 2번 개찰구 앞에서 직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신분증 가지고 계시죠?”

‘아차!’ 신분을 확인해주는 공항 직원은 이미 퇴근한 상황이었다. 신분증이 없다고 하니 직원이 주민등록초본 무인발급기 앞으로 나를 데려갔다. 오른쪽 엄지손가락의 지문을 지그시 누르는데 몇 번을 눌러도 등록된 지문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떴다. 직원이 바쁘게 비행기 탑승 직원과 무전기로 교신했다. 온몸에서 땀이 삐질삐질 나기 시작했다. 지문은 계속 ‘불일치’였다.

결국 제주로 향하는 마지막 비행기를 눈을 빤히 뜬 채 놓치고 말았다. 육체노동으로 지문이 지워진 상황이 왠지 모르게 웃프기도 했다. 아내는 ‘몸이 아픈데 아이 둘 보느라 저녁도 못 먹었다’며 매정하게 전화를 끊었다. 나는 청주에 홀로 남겨졌다.

숙소를 잡으려고 청주시내로 되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청주 출신 지인에게 급히 전화를 걸었다. 그는 마침 젊은 작가들의 전시회가 있다며 함께 가보자고 했다. 상장과 함께 받은 꽃다발을 전시회를 연 작가에게 축하한다며 전했는데 아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길어야 두 시간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청주의 작가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소셜미디어 친구도 맺고는 오래된 동네 수동 한옥 게스트하우스에서 홀로 잠을 청했다. 베갯잇 사이로 빗소리와 함께 아내의 원망 소리가 들려왔다. 밤새 몸을 뒤척이며 다짐했다. ‘다시는 신분증 놓고 다니지 말아야지!’

홍창욱 <제주, 살아보니 어때?>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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