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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1.30 19:44 수정 : 2016.11.30 20:38

[ESC] 홍창욱의 제주살이

제주 구좌읍 월정리 해안.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사람이 싫어서 떠난 서울이 아니었다. 제대 뒤 서울로 돌아오니 사람들은 다들 자신의 길로 가고 있었다. 어느덧 내 20대는 끝이 나 있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을 해볼까 고민했다. 편하게 쉴 수 있는 내 집 하나 없는 서울에서의 삶이 고단하고 힘이 들었다. 그런 서울에서 벗어나는 것에서 내 삶의 실마리를 찾기로 했다. 큰 용기는 필요치 않았다. 다만 아는 사람들의 그룹에서 이탈한다는 것에 왠지 모를 상실감이 들었다.

제주로 와 처음엔 넥타이를 매고 출퇴근하는 직장생활을 했다. 2년이 채 되지 않아, 친했던 동료가 서울로 돌아갔다. 제주 토박이인 동료들과는 업무가 달라 친해질 기회가 없었다. 그들 사이는 이미 혈연과 학연, 지연이 빼곡하게 메우고 있었다.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가끔 아내를 따라 동네의 작은 도서관을 드나들었는데 거기서 만난 사람들의 7할이 나처럼 이주해온 사람들이었다. 그들도 친분을 쌓으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었다.

이들과 관계를 돈독히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소셜미디어 그룹을 만들어 보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연’들과는 달리 ‘약한 고리’인지라 마음을 맡기고 정을 붙일 수는 없었다. 그렇게 입도 1년이 지나고 나니 내 목표는 ‘제주 사람’을 사귀는 쪽으로 바뀌어 있었다. 언뜻 바보 같은 목표 같지만 당시에는 내가 제주에 뿌리내릴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 그때 처음 만났던 토박이가 ‘피자굽는 돌하르방’ 장창언 대표인데 내가 던진 질문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제주에는 혈연, 학연, 지연이 굉장히 강하다고 들었는데 아무 연고가 없는 내가 이 모든 연을 물리치고 형과 가장 친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사람 사귀기에 한이 맺힌 사람처럼 굴다 보니 나 역시 학연, 지연 등을 찾게 됐다. 한 선배가, 내가 나온 고등학교 모임이 제주에도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해 송년모임에 참석했다가 “10년 동안 후배가 없어 모임 총무를 했다”는 선배에게 그 자리를 물려받았다. 몇 달 후엔 옆 사무실 대표가 대학 선배인 것을 알게 되어 총회에 나갔다가 또 덜컥 총무가 되었다. 그 후로 한 모임에선 동문수첩에 회보까지 만들었고 또 한 모임에선 매달 정기모임의 연락책을 맡고 있다. 내가 제주에 온 지 일주일 되었을 때 중요한 조언을 해주었던, 대학 선배 최낙진 제주대 교수도 인연에서 빠질 수 없다.

학연만 있는 게 아니었다. 2011년부터 새롭게 일을 시작한 곳은 제주의 중산간 농촌 마을로, 경남 창원의 농촌에서 나고 자란 내게는 그곳이 고향같이 느껴졌다. 그곳에서 목수로 일하는 형을 만났는데 알고 보니 동향 출신인데다 중학교 선배였다. 급기야는 연락이 두절되었던 사촌형을 제주에서 만나게 됐다. 차로 20분도 안 되는 거리에서 김밥집을 하고 있었다.

아무런 연고가 없는 제주에서의 ‘외로운’ 적응기는 채 3년도 되기 전에 운명을 다했다. 내가 운이 좋아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그사이 제주는 토박이와 고향으로 되돌아온 제주 출신, 타지역 출신, 타국인들로 꽤나 역동적이고 복잡한 사회가 되었다. 처음엔 고등학교 모임에서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에 편안함을 느끼고, 대학 모임에선 학창 시절 이야기에 동질감을 느꼈는데 이제는 그들과 내가 어떤 연유로 연결되었든 현재가 제일 중요하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한다. 혈연, 학연, 지연은 운명이 만드는 것이겠지만 그보다 질긴 사람의 인연은 사람이 만든다고. 내가 제주사람을 아끼고 사랑한다면 제주사람 또한 내 곁에 있지 않을까.

홍창욱 <제주, 살아보니 어때?>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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