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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2.14 19:18 수정 : 2016.12.14 19:37

[ESC] 홍창욱의 제주살이

왼쪽 둘째부터 하동준·한은주·김순일씨. 홍창욱 제공
5년 전 아무 생각 없이 마을 일을 시작했다. 제주올레 뉴스레터에서 무릉외갓집 사업을 처음 알고는 ‘참 특이한 일을 한다’ 싶었는데 2011년에 내가 함께하게 된 것이다. 제주시의 정보통신회사를 그만두고 돌 지난 딸아이를 돌보며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던 나는 제주올레 안은주 국장의 소개와 벤타코리아 김대현 대표의 배려로 그 사업에 발을 들였다.

1년 12달 제주의 작은 마을에서 나오는 농산물을 도시의 회원들에게 보내는 무릉외갓집 일은 보통 힘든 게 아니다. 매달 선물상자에 들어가야 할 제철 농산물을 선택하려면 농산물 품질과 배송을 두루 잘 알아야 했다. 농촌 출신이란 ‘자부심’만으로 감당하기 어렵다. 물가를 훤히 아는 깐깐한 주부회원들과 소통하는 것도 버겁긴 마찬가지다. 잠시 마을카페 운영을 도왔던 지인은 ‘농촌계몽운동가’나 ‘성직자’ 아니면 버티기 어렵겠다고까지 말했다. 사무실도, 책상도 없이 월급 백만원을 받으며 시작했지만 그래도 딸아이를 데리고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시작한 지 2년이 지났을 때, 매달 농산물을 받는 회원이 500명으로 갑자기 늘면서 첫 직장동료가 생겼다. 하동준씨는 서울에서 전산직으로 재직 중 ‘이렇게 일하다가는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사표를 내고 제주로 왔다. 아내와 대정읍에서 ‘감성별당’이라는 멋진 이름의 숙소를 운영하던 그는 우연히 방송에 나온 나를 보고 무릉외갓집의 문을 두드렸다. 지역과 함께할 수 있는 일이기에 관심이 갔다고 한다. 동료가 되자마자 그 힘들다는 고객 응대와 회원 관리를 동준씨가 맡게 되었는데 3년이 지난 지금 무릉외갓집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다.

세 번째 멤버 김순일씨가 합류한 지는 딱 1년 되었다. 페이스북에 ‘점심 막걸리 가능자, 제주 농촌 애호가, 지게차와 트랙터 드라이버, 내 삶의 주인공’으로 영상 구인광고를 올렸는데 ‘사진 찍는 마케터’ 순일씨가 지원했다. 보통은 ‘제주’에 살고 싶어서 원래 하던 것과 다른 일이라도 찾는 편인데, 순일씨는 ‘무릉외갓집에서 일하고 싶어서’ 다니던 서울 직장을 그만두고 왔다. 매일 아침 아이들 손을 잡고 학교까지 바래다주는 그의 꿈이 제주에 와서 현실이 되었다. 아직 지게차는 몰 수 없지만 금능리에 터를 잡고, 점심땐 동료들과 막걸리를 마시며 무릉외갓집의 새로운 배송 서비스를 이끌고 있다.

마지막 멤버인 한은주씨는 올봄에 콜라비 수확 체험에서 만났다. 첫 만남에선 동료들 누구도 은주씨와 함께 일하게 될지 몰랐다. 한 영국인 교사가 우리를 찾아와 인근 영어교육도시 선생님들을 위한 로컬푸드 배송 서비스를 해줄 수 있냐고 요청하면서 은주씨와의 인연이 이어졌다. 지난 9월부터 배송 서비스를 시작한 우리는 영어 능통자가 필요했고, 수확 체험에서 만난 은주씨는 알고 보니 영국 유학생이었다. 남편은 영어학교 교사였다. 연극인인데다 요리까지 잘해 스콘, 당근케이크도 자주 얻어먹고 있다.

마을에서 처음 일을 시작할 때 내가 전산 프로그래머와 사진 찍는 마케터, 요리하는 연극인과 함께 일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내가 이들을 영웅이라 칭하는 이유는 미래 농업의 비전을 제시하거나 농민 소득을 증대시켰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 자신이 ‘삶의 주인공’이다. 자신의 삶을 개척하기 위해 바다 건너 제주로 왔고, 고된 노동과 소박한 형편에도 만족할 줄 안다. 곧 무릉외갓집 멤버들이 만든 100번째 선물이 바다를 건넌다. 땀 흘린 나의 영웅들에게 박수를.

홍창욱 <제주, 살아보니 어때?>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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