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12.21 19:54
수정 : 2016.12.21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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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치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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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강제윤의 섬에서 맛난 밥상
부드럽고 기름진 나로도 대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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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치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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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먹는 삼치구이는 어째서 그리 심심할까. 그건 제 모습의 삼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껏 생선구이 집에서 우리가 삼치라 알고 먹었던 고등어만한 생선은 사실 삼치 새끼다. 삼치는 본래 몸길이 1.5m, 무게 15㎏까지 나가는 대형 어종이다. 새끼나 어미나 그게 그거라고? 천만에! 병아리로 어디 통닭 맛을 낼 수 있는가. 그래서 부르는 이름도 다르다. 삼치 새끼는 ‘고시’라 한다. 민어와 통치, 농어와 껄떡, 도미와 상사리처럼 많은 생선이 크기에 따라 이름을 달리한다. 이름만큼이나 맛의 차이도 확연하다. 전혀 다른 생선처럼 느껴질 정도다.
섬이나 해안 지역에서 고시는 삼치 대접을 못 받는다. 무미하다 여긴다. 도시 사람들은 삼치가 원래 살이 좀 단단하고 담백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름진 맛을 싫어하는 이들은 그래서 좋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진짜 삼치는 게살처럼 부드러우면서도 기름지다. 낚시로 삼치를 잡는 어민들은 고시들을 그냥 살려 보내기도 한다. 더 커서 오라고. 어민들은 최소 3㎏은 돼야 삼치 대접을 하고 5㎏은 넘어야 제맛이 난다고 여긴다. 바다의 폭주족인 삼치는 시속 100㎞로 헤엄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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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치잡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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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놀라운 속도를 이용해 잡는 방법이 ‘마구리’라고도 하는 끌낚시다. 어선 양쪽에 설치한 장대 낚시에 가짜 미끼들을 달고 달리면 정신없이 질주하던 삼치는 생선 모양의 가짜 미끼가 살아 있는 물고기인 줄 알고 덥석 물어버린다. 소형 어선은 끌낚시로, 대형 선단은 유자망이나 정치망 등의 그물로 삼치를 잡는다. 소형 끌낚시 어선은 대형 어선과 달리 그날 출어해서 그날 귀어한다. 따라서 끌낚시로 잡은 것이 그물로 잡은 것보다 더 싱싱하고 맛있다. 또 당일 잡은 것이라야 “살이 짱짱하니 단단”하다. 그물로 잡은 것은 스트레스 때문에 진이 빠지게 되고 선도도 떨어진다. 당연히 맛의 차이도 크다. 삼치는 무른 살 생선이라 하루만 지나도 살이 더 물러진다. 당일 잡은 것은 피부가 새파랗고, 눌러보면 탄력이 있다. 잡은 지 오래된 것은 피부색이 검다.
가을부터 겨울, 삼치 철이면 남해 바다는 긴 장대를 날개처럼 달고 바다를 누비는 삼치잡이 어선들로 장관을 이룬다. 수상 비행기가 달리는 것 같다. 전남의 섬과 해안 지역 사람들은 겨울철 삼치회를 으뜸으로 친다. 특히 완도, 여수, 고흥, 목포 등에서 더욱 대접받는 생선이 삼치다. 같은 남해지만 경상도 쪽에서는 푸대접이다. 예부터 삼치잡이 메카는 고흥 나로도였다. 지금도 삼치의 본고장이다. 나로도는 내·외나로도 두 형제 섬을 통칭하는 이름이다. 나로도는 조선시대 국영 말목장이었다. 그래서 나라 섬이라 하다가 나로도가 됐다고 전해진다. 섬사람들은 아직도 나라도라 부르기도 한다.
외나로도의 축정항(나로도항)은 일제강점기 수산물의 수탈기지였다. 이 나라 섬 지역 중 가장 먼저 전기와 상수도가 들어왔고 시멘트 포장도로가 생기고 제빙공장이 들어섰다. 조선의 서남해 바다에서 잡혀 일본으로 보내진 수산물의 대부분이 축정항을 통해 빠져나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23년 나로도 어업조합이 설립됐고, 삼치 파시가 섰던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의 돈이 다 몰린다고 할 정도로 위세가 대단했다. 하지만 나로도 또한 어업 기술의 발달에 따른 대량 남획으로 어장이 고갈되면서 몰락의 길을 걸었다.
예전 같지는 않아도 삼치 철이면 축정항은 여전히 배들로 부산하다. 축정항 부근 횟집들은 일제히 삼치회를 주 메뉴로 내놓는다. 삼치회는 참치처럼 얼렸다가 김에 싸서 먹기도 하지만, 당일 잡은 생삼치 맛을 따라갈 수 없다. 부드럽고 고소해 살살 녹는다고 해야 할 정도다. 양념간장을 따로 만들어 소스로 쓴다. 구이용 또한 고시가 아닌, 한 토막이 한 접시가 될 정도로 큰 대삼치를 내놓는다. 아무리 기름진 고등어라도 제철 삼치 맛을 못 따라간다. 고소한 육즙이 배어나오는 스테이크 같다. 삼치는 찬바람 불기 시작하는 11월부터 겨울 동안 최고의 맛을 자랑한다.
글·사진 강제윤/시인·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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