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12.21 19:56
수정 : 2016.12.21 20:17
[ESC] 요리
잔치국수부터 보말칼국수까지···오은 시인의 쫄깃한 국수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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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 뜨끈한 칼국수만한 먹거리도 없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물과 쫄깃한 면이 위안이 된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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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면을 좋아한다. 밥을 먹을까 면을 먹을까 고민하면, 열에 아홉은 면 쪽으로 기울어진다. 밥도 좋아하니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면을 더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밀가루, 메밀가루, 감자 가루 등 면을 만들 수 있는 모든 재료들을 보면 입 안에 절로 침이 고인다. 호로록호로록 면발을 빨아들이는 상상을 하면 방금 전에 식사를 했어도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흥분은 쉬 가라앉지 않는다. 나도 모르게 이런 다짐을 하고 만다. “오늘 저녁 땐 무조건 면을 먹어야겠어!” 그러고 나면 자연스레 다음과 같은 질문이 따라온다. ‘그런데 어떤 면을 먹지?’ 나는 커다란 반죽 덩어리를 떠올린다. 재료의 종류부터 그것의 배합과 반죽, 썰어내는 굵기와 모양에 따라 반죽 덩어리는 뭐든 될 수 있을 것이다. 저녁이 되려면 시간이 한참 남았는데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시장 안 ‘엄마표 칼국수’ 잊지 못해
퇴근 뒤 칼국수, 기차역에선 가락국수
혀를 휘감는 면발의 매력에 빠져
‘일일 삼면’도 가능한 ‘면돌이’로
간혹 면을 왜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맛있잖아요”라고 답하고 씩 웃고 말지만, 단순히 맛있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면발을 씹을 때 이와 혀를 휘감는 특유의 느낌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면발보다는 국물이나 양념을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게 면은 여유를 선사해주기도 하고 쫄깃쫄깃한 즐거움을 가져다주기도 하는 것이다. 야근 후 집에 들어가는 길에 포장마차에서 먹던 잔치국수는 따뜻했고, 기차역에서 출발 시간을 기다리며 먹던 가락국수는 더없이 든든했다. 면을 다 먹고 국물을 들이켤 때면 뱃속에 매달려 있던 고드름들이 단박에 녹는 것 같았다. 여름날 친구와 함께 먹던 냉면은 그야말로 속 시원해지는 폭소 같았고 출출할 때 야식으로 먹던 라면은 몸과 마음에 평정을 되찾게 해주었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면이 있지는 않았지만, 일상의 중요한 국면에는 늘 면이 있었다.
어느 날 친구가 내게 물었다. 그 친구는 내가 면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이따금 나를 ‘면돌이’라고 불렀다. “은아, 넌 일일삼면(一日三麵) 할 수 있잖아. 근데 면 중에서 뭐가 제일 좋아?” 나는 단박에 대답하지 못했다. 무수한 면들이 서로 자신을 택해달라고 내 온몸을 휘감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소면을 택하자니 국수가 울고 우동과 메밀국수, 파스타의 아우성에도 자연히 귀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엄밀히 말하면 파스타는 면이 아니다. 파스타의 종류 중 스파게티나 페투치네처럼 긴 선 모양을 한 것만 국수라고 칭할 수 있을 것이다.? 일일삼면을 할 정도로 면을 좋아하는데 제일 좋아하는 면을 고르는 게 가능하다는 말인가! 그렇다고 우문현답을 할 자신은 없어서 나는 잠시 동안 고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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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가마솥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칼국수.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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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국수. 모든 종류의 칼국수.” 대답을 하고 나니 갑자기 배가 고파졌다. “출출하지 않아? 칼국수나 한 그릇 먹으러 가지 않을래?” 때마침 우리는 원주의 중앙시장 초입에 있었다. “저기 보인다, 칼국수 파는 데.” 친구의 눈썰미 덕분에 초조함은 이내 기대감으로 바뀌었다. ○○칼국수가 아니라 그냥 ‘칼국수’라고 적힌 간판이 왠지 모르게 미더웠다. 칼국수 두 그릇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내가 이때껏 먹었던 무수한 칼국수들을 떠올려보았다.
멸치 육수에 고춧가루를 풀어 만드는 형식이 가장 많았다. 담백함과 얼큰함을 둘 다 느낄 수 있는 남도식 칼국수였다. 때때로 묵은 김치를 잘게 다져 넣은 칼국수를 먹기도 했는데, 고유의 칼칼함 덕분에 먹는 내내 감칠맛이 돌았다. 바지락칼국수는 물론 홍합을 넣은 칼국수 또한 내 미각을 자극하는 데 결코 부족함이 없었다. 몇 년 전, 제주도에 가서 처음 맛보았던 보말칼국수는 비행기에 오를 때까지 입맛을 다시게 만들었다. 성게칼국수의 깔끔한 뒷맛에 대해 말을 보태는 것은 괜한 일일 것이다. 멸치 국물에 들깨를 갈아 넣어 구수한 맛이 입 안 가득 퍼지던 들깨칼국수 또한 일품이었다. 걸쭉한 국물을 바닥이 보일 때까지 허겁지겁 떠먹었으니 말이다.
상경한 이후에 먹었던 칼국수들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대학생에게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만큼 매력적인 요소는 없을 것이다.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을 때, 뭔가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나는 칼국수를 먹었다. 다져서 볶은 쇠고기와 가늘게 채친 애호박을 볶아 올린 명동칼국수는 한번 빠져들고 나니 명동에 가지 않아도 이따금 생각이 났다. 관광객도 아니면서 순전히 명동칼국수를 먹기 위해 명동에 간 적도 있었다. 충무로에 가서 먹은 닭칼국수도 잊을 수 없다. 푸짐한 양에 한 번 놀라고 예상치 못한 국물 맛에 또 한 번 놀랐다. 생강을 많이 넣어서 그런지 닭 특유의 누린내가 하나도 나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해마다 겨울이면 나도 모르게 찾는 맛이 되었다. 도토리 가루와 밀가루를 혼합 반죽하여 만든다는 도토리칼국수의 식감은 처음 접해보는 것이어서 더욱 놀라웠다. 북어 대가리로 육수를 낸다던 주인아저씨의 말을 잊지 못하겠다. 어쩌면 요리란 것은 식재료들 사이에서 가장 어울리는 조합을 찾아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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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락칼국수.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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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아, 뭐해? 칼국수 나왔잖아.” 친구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앞에 칼국수 한 그릇이 놓여 있었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만 봐도 입맛이 돌았다. 칼국수 내용물을 보니 별게 없었다. 멸치 육수를 기본으로 채 썬 애호박과 당근이 보였고 칼국수 위에 김 가루가 곱게 뿌려져 있었다. 해산물이 하나도 들어 있지 않은 그야말로 수수한 칼국수였다. 국물을 떠서 가만히 입에 넣었다. 나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 맛있어. 엄마가 해주던 바로 그 맛이다.” 면발을 호록호록 들이마시니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가만 보니 칼국수 안에는 큼지막한 감자 반 알이 들어 있었다. 문득 어렸을 때 엄마가 종종 만들어주시던 칼국수가 떠올랐다. 엄마도 감자를 이등분해서 칼국수에 넣었었다. 국물을 들이마실 때 감자가 보이면 꼭 보물찾기를 하는 것 같았다. 엄마가 직접 반죽을 할 때, 나는 옆에서 엄마를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었다. 숙성된 반죽을 칼로 써는 것을 보고 칼국수가 왜 ‘칼’국수인지를 알 것도 같았다. 엄마가 재료를 솥에 넣고 끓이는 동안, 나는 ‘야무지다’라는 단어를 떠올리기도 했다. 오늘 시장에서 추억의 그 맛을 찾았다. 엄마 맛이었다.
지갑이 든든하지 않아도 뱃속이 든든해지는 방법을 하나 알고 있다. 수수함과 화려함을 떠나, 추운 겨울에 당신의 온기가 되어줄 음식에 대해 하나 알고 있다. 침대에 누워 칼국수 한 그릇을 떠올린다. 아무래도 오늘 밤, 바로 잠들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글 오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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