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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2.28 19:17 수정 : 2016.12.28 20:22

홍창욱씨의 딸 해솔이. 홍창욱 제공

[ESC] 홍창욱의 제주살이

홍창욱씨의 딸 해솔이. 홍창욱 제공
계속 제주에 살 건가요? 가끔 주위 사람들이 물어볼 때가 있다. 처음엔 제주가 좋아서 이주하였기에 생각도 하지 않고 ‘당연하죠’라고 답변했다. 요즘은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된다. 글로벌 시대, 노마드적 사회인데 굳이 한 지역에서 평생을 살 필요가 있을까라고. 아직 내 대답은 명확하지 않지만, 적어도 제주에서의 삶만큼 만족스러운 곳은 없을 듯하다.

매일 딸 해솔이와 함께 일어나 간단히 아침을 먹고 유치원 버스를 태워 보낸 뒤 출근을 한다. 서귀포시내에서 대정읍 구간, 시속 70㎞로 차를 달리면 신호 한번 받지 않고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다. 굳이 유명 관광지를 거론할 필요도 없다. 반은 아스팔트고 반은 하늘인 도로 위에서 차창으로 손을 살짝 내미는 여유만 있다면, 전영랑의 <태평가>를 크게 틀고 가속페달을 힘껏 밟을 작은 용기만 있다면 하루가 즐겁다. 동료들과 함께 조합원의 농산물을 맛보고 포장하며 땀도 흘리고 점심 막걸리 한잔에 크게 웃고 나면 어느덧 퇴근 시간이다.

저녁 6시 딸의 유치원 버스 시간에 맞춰 집에 오면 해솔이와 아들 유현이, 아빠인 나의 놀이가 시작된다. 요즘은 아이들을 등에 태우고 개구리처럼 뛰기, 나의 원숭이 흉내 내기가 인기가 좋다. 그네와 비행기, 우주선 태우기 시리즈와 퍼즐 맞추기, 블록 쌓기, 할리갈리(보드게임의 한 종류), 색칠하기를 하다 보면 8시 취침시간이 된다. ‘합죽이가 됩시다! 합!’ 하고 주문을 외우면 우리 가족은 잠이 든다.

단조로운 삶이지만 정체되어 있지 않고 어디론가 흘러간다. 이번달 정원 공부모임에서는 따라비오름에서 직접 채집한 산철쭉과 쑥부쟁이, 산부추, 억새의 씨앗을 화분에 심어 집에 가져왔다. 몇 달 동안 배운 꽃과 식물에 대한 지식을 뽐내느라 골목대장이라도 된 듯 아이들을 몰고 놀이터 화단을 뒤졌다. 통으로 떨어진 동백꽃과 강아지풀, 민들레를 채집해 방바닥에 풀어헤치고선 일장 해설에 들어간 나를 보고 아내가 흉은 보지 않았을는지.

올해는 제주에 귀농귀촌한 사람들과 ‘불란지’(반딧불이의 제주어)라는 공부모임을 만들었다. 대산농촌재단의 독일연수단원들과는 자주 교류하며 농업과 농촌에 관심을 더 높였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나에게 농업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런데 직접 농사는 짓지 않지만 이젠 ‘생업’이 되어버린 농산물 꾸러미 사업을 바라보며 많은 것이 바뀌었음을 실감한다. 무엇이 나를 농촌으로 다시 데려왔을까. 언젠가는 이 물음에 답을 해야겠지만 이곳이 사시사철 푸른 제주라는 것, 겨울 눈바람을 맞고도 제주의 쌈배추는 속을 단단히 채운다는 것을 알고는 누울 자리를 제대로 찾았구나 싶다.

서울에서 품었던 3가지 꿈 중에 하나를 2009년 제주로 이사하며 이뤘다. 제주에 산다는 꿈. 그 꿈이 깨지지 않도록 현실에서 더 노력했다. 6년째 방송 모니터링을 하고, 칼럼을 쓰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원고를 정리하면서 제주에서의 삶을 단단하게 가꾸려 애쓰고 있다.

두 번째 꿈인 ‘시집 내기’는 아직 이루지 못했다. 대신 시집보다 어렵다는 아빠 육아 책을 먼저 냈다. 지난해엔 제주살이 책까지 내며 바쁘게 살았다. 마지막 꿈은 가족과 세계여행을 하는 것이다. 요즘은 ‘가늘고 길게 살기’를 다짐하는 소시민이 되었지만, 언젠간 그 꿈을 이룰 것이다. 나를 제주로 이끌고 힘이 되어준 두 문장을 기억한다면 말이다. ‘어떻게든 살아진다. 죽음 이후엔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끝>

홍창욱 <제주, 살아보니 어때?>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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