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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2.29 10:48 수정 : 2016.12.29 11:22

[ESC] 커버스토리
불안과 혼돈의 2016년을 보내며 ‘ESC’가 제안하는 행복론

(※ 클릭하시면 확대됩니다.)
지금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그렇다”고 답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올해 3월에 나온 유엔 행복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행복지수는 조사 대상 157개 나라 가운데 58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한국이 자살률 1위라는 것은 이제 뉴스도 아니다. 2일 스웨덴 리서치 기업 ‘유니버섬’이 57개 나라의 직장인 20만명을 대상으로 행복지수를 조사했더니, 한국은 최하위권인 49위였다. 이 정도면 ‘대한민국은 불행 공화국이다’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대체 행복이 뭐길래, 왜 우린 행복하지 못한 걸까. ‘중2병’스러운 질문이 아니다. 행복은 인류의 오랜 철학적 화두였고, ‘행복한 세상’은 인류의 이상이었다. 쾌락, 금욕, 도덕, 진리 추구, 중용, 효용 등 행복을 정의하는 데 다양한 열쇳말이 동원됐다. 최근엔 ‘정신적 또는 정서적 안녕 상태’가 의학적으로 통용되는 행복의 정의다. 더 일반적으로는 ‘지속적으로 만족감과 즐거움을 느끼는 상태’를 일컫는다. 어떤 것이든, 개인이 느끼는 행복은 ‘주관적’이다.

그럼에도 행복이 인간에게 ‘객관적’으로 중요한 것은, 행복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매슬로는 “인간에겐 생존과 안전이라는 기본적인 욕구가 있다. 행복은 기본적인 두 욕구가 채워진 이후에 추구되는 인간의 궁극적 가치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동물적 욕구를 넘어선 가치가 행복이란 의미다. 대한민국 헌법 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니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했다.

흥미로운 점은, 행복감을 느끼는 데 개개인의 유전적 요인이 많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같은 상황에서도 행복감을 많이 느끼는 이와 적게 느끼는 이가 따로 존재한다는 얘기다. 게다가 행복은 ‘운’에 가깝다. 행복(happiness)이란 단어가 ‘우연’(hap)에서 나왔고, 한자 행복(幸福)도 풀이하면 복이 와서 ‘다행’이란 뜻이다. 행복의 반대말이 ‘불복’이 아니라 ‘불행’인 것만 봐도 행복은 복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우연성’에 방점을 찍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행복이 유전적이고 ‘복불복’이라고 해서 포기해야 할까. 그렇지 않다. 이러한 행복의 의미는 ‘넌 어차피 행복을 못 느끼는 사람이야’라는 결정론이 아니라, ‘네가 행복하고 싶다면 노력을 해야 해’란 극복론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우리가 행복을 얻으려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나 뒤돌아봐야 한다는 얘기다.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도 노력해야 한다. 기본적인 삶이 보장되는 경제와 복지 수준, 갑자기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는 탄탄한 사회안전망에 더해 사회적으로 행복과 그 가치를 이야기하고 고민하는 분위기가 돼야 한다.

‘행복도 노력이 필요해.’ 올 한해는 어떻게 살았나, 새해는 어떻게 꾸려가야 할까를 고민하는 연말, ESC가 노력으로 행복을 찾은 사람들을 만났다. 새해엔 모두 행복하기를 소망하며!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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