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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1.04 19:43 수정 : 2017.01.05 17:29

[ESC] 권은주의 가방 속 사정


빈폴 액세서리 ‘수지백’

핸드백 마케팅 담당자로서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마음으로 시작하는 새해임을 고백한다. 현대 여성에게 핸드백은 갖고 다니는 물건을 담기 위한 도구로서 기능이 없어진 지 오래다. 스마트폰이 일상생활 깊숙이 침투하면서 뉴스와 각종 정보는 물론 드라마와 영화 같은 각종 영상물까지 스마트폰으로 자유롭게 볼 수 있고, 스마트폰으로 카드결제까지 할 수 있게 되면서 간단한 화장품 정도를 제외하고는 지갑을 비롯한 휴대용 소지품 자체가 거의 필요없는 세상이 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매년 국내외에서는 새로운 핸드백 브랜드가 탄생하고, 수많은 신상품이 시장으로 대거 쏟아져 나온다. ‘가방은 패션의 완성’이라는 말처럼, 핸드백이야말로 전체 의상을 완성해주는 마침표이자 개인의 취향이나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는 척도라고 패션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강조한다. 핸드백은 일상에 꼭 필요한 실용품이 아닌, 동경하는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염원을 담는 대체재가 된 느낌이랄까.

핸드백에 로망과 환상이라는 가치를 더하기 위해 업계에서는 오래전부터 연예인을 적극 활용해왔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가 대표적이다. 1956년 모나코의 왕비가 된 할리우드 배우 그레이스 켈리가 임신 중 배를 가리기 위해 착용하면서 유명해진 ‘켈리백’, 배우이자 가수인 제인 버킨의 이름을 따서 1984년에 출시한 ‘버킨백’을 보자. 이들은 보통사람들이 범접하기 어려운 초고가와, 심지어 돈이 있어도 쉽게 가질 수 없다는 희소성까지 더해져 단순히 핸드백을 넘어 명예와 성공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의 첫 핸드백 역시 연예인이 드라마에서 멨던 가방이다. 드라마 제목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전인 고등학교 3학년 막바지 시절, 극 중 조연이었던 공효진이 무지개떡처럼 화려한 줄무늬의 천가방을 메고 나왔는데 그것이 그렇게 멋져 보였다. 끝내 부모님을 졸라 백화점 매장에서 십만원이 넘는 그 가방을 샀다. 내 몸 반쯤이 들어갈 듯한 큰 크기 때문에 정작 몇 번 들지는 못했지만.

최근까지도 연예인이 착용한 가방만큼 판매에 효과적인 마케팅 방법은 없다. 당대 인기있는 여자 연예인은 자연스럽게 가방 브랜드의 모델이 되었고, 연예인의 이름을 딴 ‘○○백’이 출시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 되었다. 빈폴액세서리는 ‘민희백’에 이어 ‘수지백’을 몇 년째 출시하고 있고, 헤지스 액세서리는 ‘설현백’, 루즈앤라운지는 ‘전지현백’을 집중 홍보하고 있다.

‘스타의 가방’이 주목받으면서 드라마 피피엘(PPL·간접광고) 경쟁도 치열해졌다. 하지만 연기자가 일상 속 감정 연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노출될 수 있는 옷이나 귀고리, 목걸이 등의 액세서리와 달리 가방은 외출 때만 착용할 수 있는 소품이라는 제약이 있다. 지난해 브루노말리가 광고 모델 박신혜의 출연작인 드라마 <닥터스>의 제작지원을 하고, 빈치스가 브랜드 모델이면서 동시에 가방 디자인에 참여한 공효진이 출연한 드라마 <질투의 화신>의 제작지원을 진행한 것 모두 이러한 제약을 극복하고 가방을 극 중에서 적극적으로 노출하기 위함이었다.

헤지스 액세서리 ‘설현백’
그러나 드라마 간접광고와 주인공의 모델 계약 경쟁이 심해진 것에 비해 그 효과를 예측하기는 갈수록 어려워짐을 하루가 다르게 느낀다. 장기적인 경기침체로 소비심리가 위축된 상황에서 연예인이 착용했다는 이유로 최소 십만원이 넘는 가방을 구매할 소비자는 눈에 띄게 줄었다. 반면 브랜드 마케터들이 정교하게 만들어 놓은 환상을 깨고 나와, 이른바 ‘전지현백’을 산다고 해서 전지현의 패션 스타일이나 라이프 스타일을 결코 누릴 수 없다는 현실에 눈을 뜬 ‘스마트 컨슈머’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나를 포함한 핸드백 마케터에게는 더없이 많은 고민을 해야 하는 2017년임이 분명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브랜드나 연예인의 이름과 상관없이 핸드백 디자인 자체의 개성은 살리면서도 합리적인 가격을 갖춘, 즉 가격 대비 성능의 줄임말인 일명 ‘가성비’가 좋은 제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칼럼들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가방을 가지고 싶어 하는 소비자도 더욱 많아질 것이다. 스타를 맹목적으로 따라하기보다 스스로 스타가 되겠다는 소비자에게 맞는 가방과 마케팅 전략을 나부터 더욱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것 같다. <끝>

권은주 제이에스티나 핸드백 마케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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