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1.11 19:37
수정 : 2017.01.12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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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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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Y기자, 내 인생은 시트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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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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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내 인생을 ‘시트콤’이라고 처음 말한 이는 동생이었다. 언니라는 사람이 너무 어이없는 일을 많이 당하고 가끔 엉뚱한 짓을 저질러 주위 사람을 황당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인생, 하나하나 뜯어보면 코미디 같은 상황 한두 번씩은 다들 연출하지 않는가. 나 또한 그랬을 뿐이다. 다만 그 빈도가 잦았다.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나의 어린 시절 주특기는 나무타기와 돌담넘기였다. 유난히 긴 ‘기럭지’로 잘도 넘어다녔다. 이웃집 심부름을 갈 때도 주로 월담을 했다. 정상적으로 문과 문을 통하려면 빙 둘러서 가야 했기 때문이다. 10분 거리가 1분으로 줄어드는 효과가 있었다.
중학교 1학년 때 결국 사달이 났다. 9월의 어느 주말 저녁 7시48분. 시간까지 정확히 기억한다. 그날도 심부름을 가려고 담을 넘었다. 깜깜해서 앞은 전혀 안 보이는 상황. 담을 넘으려고 왼손을 담 위에 올렸다. ‘뭐지?’ 할 찰나에 왼팔이 따끔했다. 본능적으로 ‘뭔가에 물린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돌아올 때는 두려운 마음에, 오른손으로 왼팔을 잡고 빙 둘러서 문과 문 사이로 뛰어서 집으로 왔다.
“아빠, 나 뭐에 물렸어!”
밝은 곳에서 확인하니 이빨 자국이 3개. 그렇다. 뱀에 물렸다. 그것도 겨울잠을 자려고 독을 잔뜩 품고 있던 가을 뱀한테…. 아빠는 비가 오면 뱀은 담 위로 올라간다고 했다. 마침 전날 비가 왔다. 물난리를 피해 담 위에서 똬리를 틀고 있던 뱀의 휴식을 내가 방해한 거다. 시내 병원에 가야 했다. 천으로 팔뚝을 칭칭 감은 채 버스(!)에 올랐다. 당시 우리 집 이동수단은 낡은 오토바이와 경운기가 전부였다. 게다가 택시 같은 게 다닐 리 없는 시골마을. 버스 안에서 왼팔을 잡고 앉아 있는데 진짜, 너무 아팠다. 뱀에 물려서가 아니라, 천으로 팔을 너무 꽉 조여서. 풀어달라고 할 수도 없고 참 난감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병원 응급실. 의사는 왼팔에 서너 군데 칼자국을 내더니 꾹꾹 누르며 독을 손으로 짜냈다. 그런데 웬걸. 진짜 독이 강했는지 팔은 점점 부어올랐다. 당황한 의사는 그제야 병원에 해독약이 없다고 고백하며 나를 황급히 구급차에 태웠다. 시내 가장 큰 병원으로 가는 구급차에 누워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차들이 진짜 안 비켜주는구나’까지.
또다시 응급실. 이번 의사는 팔의 시퍼런 부위(가로 1㎝, 세로 2㎝ 정도)를 칼로 그냥 도려냈다. 그 의사, 분명 초짜였던 듯싶다. 뱀 물린 환자를 처음 봤거나. 난 결국 엑스레이를 찍다가 기절해버렸다. 병원 두 곳에서 짧은 시간 동안 주사를 6~7차례나 맞아 쇼크가 왔는지, 아무튼 휠체어 타고 입원실로 올라간 기억이 난다. 오른팔의 3배쯤 부어오른 왼팔과 함께 3일 정도 입원했다.
퇴원했다. 하지만 다 끝난 게 아니었다. 아버지는 체내 독을 빼내야 한다며 민간요법을 하는 어떤 할아버지한테 나를 데려갔다. 그 할아버지는 손등을 사정없이 바늘로 찌른 뒤 부항기로 펌프질하듯 하며 매일 피를 한 사발가량 뽑아냈다. 당시 한창 <삼국지>를 읽을 때여서 화타가 관우를 치료할 때 이랬나 싶었다. 다행히 부기는 가라앉았다. 그런데 어라 이건 뭐지. 이번엔 왼손 새끼손가락이 안 펴졌다. 할아버지가 바늘로 신경을 건드렸다나 뭐라나. 어쩔 수 없었다. 신경외과로 갔다. 다행히 1주일 뒤 정상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정말 ‘파란만장한 나날’이었다.
왼팔에는 아직도 살 도려낸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비가 오거나 날이 추워지면 지금도 주위가 조금 퍼렇게 변한다. 여전히 난 허리 높이의 장애물은 잘 넘어다닌다. 그 버릇 어디 가겠는가. 그리고, 뱀띠 남자와 10년째 살고 있다. 이번엔 제대로 물렸다.
덧. 가끔 뱀 물릴 때 많이 아팠냐고 묻는 이들이 있는데 그냥 ‘따끔’한 정도다. 개에 물려 보고, 벌에도 쏘여 봤는데 그보다 덜 아프다.
Y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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