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2.02 10:59
수정 : 2017.02.02 15:56
[ESC] 커버스토리
삶의 다른 방식, 비혼
공무원 임아영(가명·40)씨는 결혼을 하지 않기로 선언한 비혼주의자다. 30대 중반까지만 해도, 집안 닦달로 하기 싫은 맞선을 봤다. 결혼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열 번 넘게 맞선을 보고 임씨가 내린 결론은 “결혼 안 해도 된다”는 것이다.
딱히 마음에 드는 남자가 없던 것은 아닌데, 첫 만남부터 시부모 모시는 문제에 출산까지 거론하는 것을 보고 ‘결혼은 나와 맞지 않는다’고 최종결론을 내렸다. 이미 결혼한 친구들이 “명절만 되면 싸움난다”, “애 때문에 산다”며 결혼 후회담을 쏟아낸 것도 한몫을 했다. “주변에 결혼생활이 행복하다는 친구가 열에 한 명도 안 된다. 왜 결혼을 하나 싶다”고 임씨는 말했다.
부모님 성화는 어떻게 극복했을까. 진지하고 솔직한 요청이 해결책이었다. 부모님과 동거중인 임씨는 몇 년 전 부모님을 모시고 저녁을 먹으며 “나는 엄마, 아빠 모시고 계속 살 테니 더는 결혼을 강요하지 말아달라”고 얘기했다. 평소와는 다른 ‘궁서체’ 요청에 부모님도 마음을 바꿔 그의 생각을 존중해줬다. “결혼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결혼 안 한 내 삶에 만족하는데 굳이 환경을 바꾸고 싶지 않다. 결혼을 통해 또 다른 가족한테 신경 써야 하는 것도 부담된다”고 그는 말했다
비혼자들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 가운데 하나는 주변의 닦달이다. 친척들의 ‘건드림’이 불쾌해 명절이 싫다는 비혼자도 적지 않다. 하지만 대다수 비혼자들의 대처는 소극적인 듯하다. ESC가 성인남녀 276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 친척들의 결혼 닦달에 ‘웃어넘긴다’(49.1%)고 한 사람이 절반 가까이나 됐다. ‘집 밖으로 나와 자리 자체를 피한다’(5.1%), ‘묵묵부답한다’(4.7%), ‘다른 비혼자를 거론한다’(1.8%)는 이들도 있었지만 이 역시 소극적인 태도로 볼 수 있다.
반면 ‘신경 끄라며 적극적으로 대처한다’는 답변은 2위였지만, 13.1%에 그쳤다. 하지만 효과는 이런 ‘단호박’ 대처법이 훨씬 크다. 직장인 박현진(35)씨는 몇 년 전 친척들의 결혼 질문에 “알아서 할 테니, 묻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라고 작정하고 말했다. 그 뒤로 다시는 같은 질문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박씨는 “당시에는 미안하지만 매번 스트레스 받는 것보다 한번 미안한 게 낫다”고 말했다.
사실 “언제 결혼해”라는 질문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다. 지난달 나온 ‘2015 인구주택 총조사’ 결과를 보면 30대의 비혼 인구 비율은 36.3%에 달했다. 30대 3명당 1명은 결혼을 안 한 셈이다. 가치관 자체도 변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통계청이 발표한 ‘2016 사회조사’를 보면 ‘결혼을 해야 한다’고 답한 비율은 절반 정도(51.9%)에 불과했다. 2010년의 같은 조사에선 결혼을 해야 한다는 대답이 64.7%였다. 불과 6년 사이 결혼의 필요성을 느끼는 이가 13%포인트 가까이 줄어든 것이다. 그러니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면 그런 질문은 하고 싶더라도 참으시라, 꾹.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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