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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2.15 19:37 수정 : 2017.02.15 20:38

[ESC] 강제윤의 섬에서 맛난 밥상
전남 무안군 탄도의 찰감태무침

찰감태무침. 강제윤 제공
탄도는 전남 무안군 유일의 유인도다. 탄도 용머리 해안에는 특이한 이름의 작은 무인도 하나가 있다. 야광주도(夜光珠島). 야광주란 어두운 곳에서도 빛을 낸다는 기석이다. 탄도 섬사람들은 이 야광주도를 여의주로 여긴다. 탄도는 섬이 용 모양인데 용머리 해안 바로 앞에 있는 구슬이니 여의주란 주장이다. 용머리 앞에는 또 용샘이란 이름의 둠벙(웅덩이)도 있다. 옛사람들은 만물에 다 생명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물활론적 세계관으로 보면 섬도 하나의 생명체다. 곰을 닮은 충남 서산 웅도는 곰이고, 소를 닮은 경남 통영 우도나 제주 우도는 소이고, 말을 닮은 전남 고흥 연홍도는 말이다. 용을 닮은 탄도는 용이다. 늘 바다를 건너고 섬을 걷는 나그네는 이 생명체들의 거친 숨소리를 무시로 듣는다. 그러니 어찌 섬들도 살아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있을까. 지구 또한 하나의 생명체이고 인류 또한 가이아의 자손이 아닌가! 찬 겨울바람에 오늘은 야광주도의 얼굴이 파리하다.

탄도 섬 노인들도 바람을 피해 다들 경로당에 모여 두런거린다. “올해는 바다 숭년(흉년)이 들었어.” 낙지와 감태(甘苔)로 유명한 탄도. 가을에는 낙지가 거의 잡히지 않았고 겨울은 감태철이지만 뻘 바닥에는 감태의 씨가 말랐다. 감태가 자라지 않는 이유는 무얼까. 벌써 3년째다. 혹자는 엘니뇨 때문이라고도 하고 혹자는 작년 여름 가뭄과 더위 때문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노인 한분이 감태가 안 자라는 이유가 있다고 목청을 높이신다. “그게 다 염산 때문이여.” 탄도 주변 바다에는 김 양식장이 많은데 양식장에서 잡태나 파래를 제거하려고 금지 약품인 염산을 여전히 몰래 사용하고 있다는 말씀이다. 나그네도 섬을 다니다 숲속 깊이 숨겨놓은 염산통들을 발견하곤 했다. 그것이 다는 아닐 터지만 노인의 말씀이 일견 타당해 보인다. 누군가의 이익이 누군가에게는 재앙이다. 당국의 실태조사와 대책이 마련돼야 할 듯하다.

감태의 씨가 말랐다는 탄도 갯벌에서 그래도 오늘 운 좋게 감태를 뜯어 온 어머니가 있다. 어머니가 찬바람 맞으며 감태를 뜯으러 나간 것은 자식들 때문이다. 지난 설에 무안시장에서 감태 5천원어치를 사다가 도시 사는 자식들 해줬더니 한입 먹어보고는 더 이상 손도 대지 않더란다. 탄도 감태가 아니라 맛없다고. 그래서 자식들 보내줄 생각으로 어렵게 감태밭을 찾아내 한 대야 가득 매 왔다. 감태 매는 일보다 더 힘든 건 멀고 먼 갯벌 한가운데에서 감태를 섬까지 옮겨오는 일이다. 이때 뼛골이 빠진다. 뜯어온 감태는 민물에 넣고 발로 밟아가며 뻘물을 빼내는데, 최소 7~8번은 세척을 반복해야 깨끗해진다. 씻어서 손으로 말아 올린 감태가 꼭 어린아이 머릿결 같다. 감태 한줌이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수고로움을 생각하면 감태는 금태다.

할머니가 매온 감태를 뻘밭에서 끄는 모습. 강제윤 제공
탄도 갯벌에도 두 종류의 감태가 있다. 찰감태와 뻐드래기. 뻐드래기는 긴 머리카락처럼 뻘에 곧게 뻗어 있다. 반면에 찰감태는 약간 꼬불꼬불하고 자라면서 파래처럼 잎이 넓어진다. 뻐드래기에 비해 향도 진하고 찰지고 부드럽다. 손으로 만져봐도 찰감태는 보들보들한데 뻐드래기는 뻣뻣하다. 그래서 탄도에서는 찰감태가 대접을 받는다. 탄도 노인들은 “뻐드래기가 보리밥이라면 찰감태는 쌀밥”이라고, 또 “옛날 명주베(비단)모냥 부드럽다”고 찰감태 자랑에 입이 마른다. 그런데 “옛날에는 찰감태가 많았는데 인자는 뻐드래기뿐”이라고 노인들은 탄식한다.

탄도 감태는 설부터 대보름까지가 가장 달고 맛있다. <자산어보>에도 그 맛이 달다 했다. 감태는 생으로 무쳐 먹어야 제맛인데 감태무침은 양념을 최소화한다. 감태 자체의 단맛과 향을 즐기기 위해서다. 순정한 탄도 찰감태무침 조리법. 깨끗이 씻은 찰감태의 물기를 뺀 뒤 도마에 올려놓고 탕탕 자른다. 찰감태를 그릇에 담아 깨소금을 뿌리고 참기름을 듬뿍 친다. 거기에 ‘집간장’으로 간을 한 뒤 주물주물해주면 완성. 너무 빡빡하다 싶으면 약간의 물을 넣어준다. 방금 무쳐낸 찰감태무침 한 젓가락을 입에 넣으니 달콤하면서도 쌉싸름한 향이 입안 가득 퍼지며 스르르 녹아버린다. 바다를 통째로 맛본 듯한 느낌이다. 찰감태무침은 하루 정도 삭히면 맛이 훨씬 깊어진다.

강제윤 시인·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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