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2.15 19:47
수정 : 2017.02.16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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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신안 임자도 진리포구의 갯골에서 카약을 즐기는 마을 청소년들. 마을에선 올해부터 ‘갯골 카약 타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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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커버스토리
전남 신안군 임자도로 떠난 ‘봄 기지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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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신안 임자도 진리포구의 갯골에서 카약을 즐기는 마을 청소년들. 마을에선 올해부터 ‘갯골 카약 타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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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시작은 언제쯤일까. 입춘 지나고 곧 우수인데 막바지 한파가 기승이었다. 그러나 봄은 이미 코앞에 훈훈한 온기와 상큼한 향기로 다가와 있다. 막바지 반짝 추위가 임자도에서 제대로 임자를 만났다. ‘섬 고장’ 전남 신안군, 1004개의 섬 중 하나인 임자도를 찾았다. 봄을 부르는 풍경 세 장면을 만나고 왔다.
임자도는 국내에서 가장 넓은 백사장을 자랑하는 대광해변(길이 12㎞, 너비 300m)으로 이름난 피서지다. 광활한 해변은 텅 비었으나, 바라보기만 해도 한파에 시달렸던 가슴이 후련해진다. 어머리 해변과 대머리 해변도 광활하긴 마찬가지다. 반짝이는 잔물결 타고 멀리서 봄빛이 밀려드는 걸 알 수 있다. 어머리·대머리 해변 사이의 용난굴에도 봄 햇살이 기웃거린다.
지금 임자도엔 또 다른 초록 물결이 반짝이며 바다를 이루고 있다. ‘파 바다’. 논 빼놓고 평지란 평지는 모두 대파밭 진초록 물결이 찰랑인다. 식당도 젓갈집도, 민박집도 초등학교도, 교회도 무덤도 파밭 사이에 들어 있다. 찻길과 바닷가 길까지 파밭 사이로 이어진다. 1960년대까지 ‘육타리·뭍타리 파시’로 이름났던 임자도의 요즘 주 소득원은 대파다. 파는 물빠짐이 좋은 모래밭에서 쑥쑥 잘 자라기 때문이다. “요것이 다 자라믄 으른 허리까지 올라와부러요. 뿌리 쪽 흰 부분이 겁나게 길고.”(도찬리 주민) 섬 북쪽 대기리와 도찬리의 괘길마을, 그리고 토굴새우젓으로 유명한 전장포 가는 길 주변에 특히 널찍한 파밭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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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도에선 대파 수확이 한창이다. 3~4월까지 수확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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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도 대파밭과 풍차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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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도 밭의 대부분은 대파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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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서 파 뽑는 일꾼들 모습과 산더미처럼 파를 쌓아올린 트럭들을 만난다. 일꾼은 대부분 ‘잘 웃고 인사 잘 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수확 중인 파밭으로 들면 느닷없이 불끈 식욕이 솟는다. 봄맛과 어울리는 맵싸한 파 향기가 온몸을 휘감으며 침샘을 자극한다. 파 수확은 이른 겨울부터 시작돼 3~4월까지 이어진다.
대파밭과 함께 임자도 평지를 구성하는 요소는 논과 염전이다. 염전이야 아직 썰렁하지만 논에선 봄맞이를 위한 기지개가 한창이다. 논마다 자욱하게 퍼져가는 연기, 은은히 풍겨오는 볏짚 타는 내음에도 봄기운이 실렸다. 논에 남은 벼 밑동과 지푸라기를 태우는 짚불놓기 현장이다. 도찬리 논에서 불씨를 여기저기 옮기며 논을 태우던 할머니가 말했다. “요로코롬 혀야 병해충 알이 타불고, 땅이 기름져요. 나락도 잘 자라 여물고.”
논에 불 놓기는 봄을 앞두고 전국에서 벌어지는 연례행사. 남녘 섬에선 이미 짚불놓기가 마무리돼가고 있다. 논마다 검게 탄 흔적이 임자도에 봄이 다가왔음을 알려준다. 주민들은 머잖아 논갈이로 땅을 고른 뒤, 물꼬를 터 모내기 준비에 들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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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도 도찬리 논에서 짚불을 놓고 있는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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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읍 점암선착장에서 오가는 배가 닿는 곳이 진리포구다. 포구에도 봄빛이 드리웠다. 마을 안쪽으로 길게 파고든 갯벌의 갯골에도 선착장 주변 밭에도 봄이 움트고 있다. “쩌그 새카맣게 깔린 구멍들 안 있소? 쩐부 다 똘게 구멍이인디, 봄 되면 바글바글 기어나와 난리가 나부요.”(정창일 진리 이장)
따스한 봄볕의 유혹을 기다리는 건 자욱하게 깔린 구멍 속의 돌게만이 아니다. 포구 옆엔 갯벌 위를 가로질러 설치된 보행목교가 탐방객을 기다리고, 목교 밑에 새로 마련한 작은 부둣가엔 2인승 카약 10여개가 노 저을 임자들을 기다린다. 진리·신명리·삼막리 3개 마을이 뭉쳐 올봄부터 시작할 ‘임자 만났네 권역 마을사업’ 어촌체험행사 프로그램 중 하나가 갯골 카약 체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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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도 진리포구에선 올해부터 사철 갯골 카약 타기 체험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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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 만났네 사업’ 사무장 강산을씨는 “도시민을 위해 준비한 여러 프로그램 중 가장 기대를 거는 것이 갯골에서 카약 타기”라며 “물이 빠져나가 좁아진 갯골을 따라 노를 저으며 갯벌을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자랑했다. 인절미 만들기, 염전 체험, 천체망원경 관측 등은 4월부터 시작할 예정이지만, 카약 타기와 실내승마는 예약하면 지금도 체험할 수 있다.
매섭게 버티던 한파가 임자 제대로 만나고 있는 임자도. 이곳이 아니더라도 남녘 섬엔 새봄, 새빛이 뚜렷하다. 이미 쑥·달래·냉이가 쑥쑥 자라오르고, 동백·매화·유채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봄볕 나른한 섬으로 ‘봄 기지개’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임자도(신안)/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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