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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2.22 19:44 수정 : 2017.02.22 20:23

김보통

[ESC] 김보통의 노잼, 노스트레스

김보통
어린 시절 방학이 되면 부모님은 나와 동생을 이모 집에 보내곤 했다. 산기슭 밑에 자리한 병암리라는 작은 마을이었는데, 구멍가게도 없어 뭐라도 사 먹으려면 한참을 나가야 했다. 이미 성인인 사촌형과 누나는 학교를 다니거나 일을 하느라 집에 없었다. 나와 동생은 할 일이 별로 없었다.

이모와 이모부는 농사를 지으며 틈틈이 다른 일도 했다. 이모부는 비누 공장 경비일을 했다. 출근하는 길엔 가끔 나와 동생에게 무엇이 먹고 싶은지 물어보았는데, “짜장면!” 하고 허무맹랑한 소리를 해도 이모부는 “알았어, 이모 말 잘 듣고 싸우지 말고 있어잉” 하고 말했다. 자전거를 타고 이모부가 출근을 하면 우리는 온종일 잠자리를 잡거나 치고 박고 싸우며 시간을 보냈다. 잠자리를 왜 그렇게 잡고 왜 그렇게 싸웠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달리 할 것이 없었다.

해가 질 무렵이면 잠자리가 가득 든 비닐봉투를 쥔 채 마을 입구 느티나무 앞 평상에 앉아 이모부를 기다렸다. 슬슬 지겨워질 즈음 멀리서 자전거를 탄 채 느릿느릿 다가오는 이모부의 모습이 보였다. 사실 기다리는 것은 짜장면이었기 때문에 두 눈의 신경을 집중해 짜장면을 찾았다. 하지만 좀체 짜장면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엎질러질까 가방 속에 넣은 것은 아닌가 싶어 일단은 손을 흔들며 이모부를 반겼다. 하지만 이모부가 건넨 것은 짜장맛 과자였다. 실망스러워 울고 싶었지만, 활짝 웃으며 “맛있는 거여” 하시는 바람에 울 수도 없었다.

한번은 이모부가 거울 앞에 선 채 머리를 다듬고 있었다. 평소 입지 않던 깨끗한 새 셔츠 차림에, 입으로는 “나는 흙에에 살리이라아~”를 반복했다. “이모부. 그 노래가 뭐예요?” 물으니 이모부는 “으응, 오늘 모임을 가는데, 거기 가서 부를 노래여”라고 했다. “흙에서 왜 살아요?” 다시 물으니 “으응, 농사를 열심히 지으면서 살겠다는 얘기여.”

이후로도 이모부는 한참을 그 노래를 흥얼거렸다. 거의 다 외울 수 있게 되었을 즈음 “그런데 노래 제목이 뭐예요?”라고 물으니, “응, ‘흙에 살리라’라고 하는 노래여”라고 했다. ‘흙에 살리라’라니. 이상한 제목의 그 노래는 이모부의 애창곡이었다. 의미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모부가 흥에 겨워 노래를 부르는 그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다.

잠시 뒤 “이모랑 이모부는 다녀올 테니까 싸우지 말고들 있어야 혀”라고 이모부는 말했고, 나와 동생은 “알았어요” 하고 대답했다. 두 분이 모임을 가고 난 얼마 뒤, 우리는 언제나처럼 싸움을 벌여 통유리로 된 미닫이문을 산산조각내 버렸다. 나중에 돌아온 이모부는 “괜찮은겨? 다친 데 없는겨?”라고만 물을 뿐 혼내지 않았다.

이모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지난주였다. 온몸에 암이 퍼져 마침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긴 참이었다. 병상에 누운 이모부는 한손에 나무 십자가를 꼬옥 쥐고 있었다.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을 쏙 빼닮았다는 것을 내심 좋아하던 이모부였다. 진통제에 취해 숨만 헐떡이던 손을 잡자 잠시 눈을 살짝 떴다 감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이모는 내게 “이모부 이제 좋은 데로 가실 꺼여”라고 했다. 그리고 며칠 뒤 돌아가셨다. 좋아하시던 노래가사마냥 흙에서 살다 흙으로 돌아간 것이다.

사는 건 대체로 지치는 일이다. 최선을 다해 달리는데 주변 사람들도 최선의 최선을 다하니, 더디다 못해 뒤처지는 기분이다. 그럴 때마다 이모부를 떠올린다. 자전거를 탄 채 내게 줄 짜장맛 과자를 사서 “흙에 살리라~” 흥얼거리며 느릿느릿 논두렁 사잇길을 가로지르던 그 모습. 살아오는 내내 두고두고 회상하곤 한다. 그 모습이 마치 내게 평화를 가져오는 것 같아서.

김보통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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