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3.01 19:31
수정 : 2017.03.01 21:05
[ESC] 강제윤의 섬에서 맛난 밥상
전남 보성군 장도 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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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굴. 강제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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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의 ‘가고 싶은 섬’인 장도에는 소가 딱 한 마리뿐이다. 팔순의 노인과 20년을 동고동락해온 일소. 노인의 밭은 장도와 연결된 작은 무인도 목섬에 있는데 이 섬에는 경운기가 들어갈 수 없다. 소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다. 목섬에서 노인은 소와 함께 밭을 일구어 마늘과 고구마, 땅콩 농사를 지어왔다. 일소는 암소인데 그 와중에도 1년에 한번꼴로 새끼를 배 20마리나 되는 송아지까지 낳아줬다. 고마운 마음에 노인은 일소가 죽을 때까지 팔지 않을 생각이다. “소한테 이름이 있나요?” 여쭈니 돌아오는 대답. “그냥 소지 소.” 무명의 일꾼으로만 살아온 소의 일생.
소는 노인이 저에게 눈길을 주지 않고 그냥 지나치면 꼭 소리 내어 운다. “소가 얼마나 숭악한지 내가 지를 안 보고 그냥 지나가버리면 울어요, 울어.” 정이 많이 들어서 그런 것일까. “아니, 배고파서 그래. 배고프다고 연락을 주는 거야.” 소를 대하는 노인의 태도가 담백하다. “저도 늙고 나도 늙어 버렸어. 20년 된 소야. 우리 집에 와서 그렇게 고생했는데 팔지 말아야지.” “그럼 소가 죽고 나면 묻어주실 건가요?” “팔지 않아야지 하면서도 뒤는 어찌 될랑가 모르것네.”
노인은 소가 죽을 때까지 팔지는 않을 생각이지만 죽은 뒤에는 어찌할지 갈등이 좀 있다. 솔직히 고기로 팔면 200만원은 받을 수 있는데 왜 갈등이 없을까. “그래도 20년 동안 농사도 지어주고 새끼도 20마리나 낳아 엄청 많은 돈을 벌어줬는데 그냥 묻어주시면 안 될까요?” “나도 저 밥 먹여줬는데.” 그러면서도 노인은 주저주저하는 눈치다. “소가 죽고 나서도 팔지 않고 이 목섬에 묻어준다면 많은 사람들이 소한테 은혜 갚은 어르신을 존경하지 않을까요.” “그럴까. 그럼 묻어줘야겠네.” 노인은 활짝 웃으며 소를 꼭 묻어주겠다고 거듭 약속하신다. 부디 그리 되길.
전남 보성군 벌교는 꼬막의 고장인데 벌교 꼬막의 80% 이상이 장도 인근 갯벌에서 생산된다. 벌교 꼬막 중에서도 제사상에 오르는 귀물인 참꼬막은 거의 전량 장도 갯벌에서 나온다. 그래서 벌교읍 장도는 꼬막섬이다. 가을부터 봄까지 꼬막 철이면 장도 갯벌에서는 뻘배를 타고 갯벌을 종횡무진 누비며 꼬막을 캐는 여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뻘배는 판자로 만든 갯벌의 썰매 같은 것이다. 한 조각 판자로 한 가족의 생을 지탱시켜온 장도 여인들의 뻘배 타는 모습을 보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장도 갯벌의 또 다른 선물은 석화다. 많은 굴 요리를 맛봤지만 나그네의 ‘인생 굴 요리’라 할 만한 것은 딱 두 가지였다. 통영의 물굴젓과 장도에서 맛본 피굴이다. 나그네에게 굴은 무조건 생굴이다. 굴은 익히는 순간 퍽퍽해진다. 익힌 굴 요리인데도 손길이 가는 것을 멈출 수 없었던 것이 바로 장도의 피굴이다. 피굴은 보성, 고흥 지방의 토속 음식이다. 생굴을 탐식하지만 탈날까 꺼려지고, 그렇다고 익힌 굴 요리도 싫은 이들에게 추천할 만한 최고의 요리다.
피굴은 알굴이 아니라 껍질이 있는 석화로 만든다. 석화를 솥에 넣고 잠길 만큼 물을 부은 뒤 뜨끈할 정도로 삶는다. 껍질이 벌어질락 말락 할 정도의 경계에서 꺼낸다. 꼬막을 잘 삶는 방식과 비슷하다. ‘삶’은 경계를 지키는 일이 늘 어렵다. 삶은 석화의 껍질을 벌려 알굴을 꺼내고 껍질 안의 국물은 따로 모아뒀다가 체로 거른다. 그 국물에 미리 까둔 굴과 쪽파, 당근을 넣고 통깨를 뿌리면 완성. 간단해 보이지만 손이 많이 가는 요리다. 다른 익힌 굴과 달리 피굴은 반숙 상태라 굴속의 진액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찰지고 쫄깃하다. 차게 해서 먹는데 피굴의 국물은 최고의 해장국이다. 시원한 동치미 국물처럼 세상의 온갖 세파에 찌들고 꼬인 속을 확 풀어준다.
강제윤 시인·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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