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3.01 19:31
수정 : 2017.03.01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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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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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Y기자, 내 인생은 시트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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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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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순간 진짜 ‘버럭’ 했다. 상대는 엄마였다. 내 삶에 가장 큰 짜증이었을 것이다.
엄마와의 생애 첫 외국여행. 두 달여 전부터 준비했고 언니와 조카도 합류했다. 남자들(10살 아들은 열외) 없이 여자들끼리만 가는 여행이었다. 장소는 코타키나발루에서 사이판으로 바뀌었다. 자유여행이었던 터라 픽업과 옵션 관광은 따로 예약했다.
여행 출발 당일. 사이판행 비행기 출발시각은 밤 10시10분이었다. 엄마는 제주도에서 오후 2시10분 비행기로 오시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전날 내린 폭설로 비행기가 김포공항에 도착한 건 오후 4시였다. 출발시각에 맞게 인천공항에 가는 덴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느낌표 3개로도 부족한 충격이었다) 엄마가 여권을 안 갖고 오셨다.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깜빡 잊은 것도 아니고 아예 처음부터 생각을 못 하셨단다. 지금껏 외국여행만 십여 차례, 심지어 유럽여행까지 다녀왔는데 가장 중요한 여권을 놓고 오시다니…. 아빠도, 엄마도, 함께 사는 오빠나 올케 그 누구도 엄마에게 여권 언급을 안 한 것이다. 나 또한 회사에서 바로 인천공항으로 오는 언니한테만 “여권 챙기라”고 거듭 강조했었다.
비상 상황이었다. 소심한 엄마는 그냥 우리들끼리만 가라며 체념한 모습을 보이셨다. 절대 그럴 수는 없었다. 이번 여행에서 엄마의 어린 시절 얘기 등을 듣고 자서전을 써서 내년 칠순 때 선물로 드릴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모녀 첫 여행인데!
출발 1시간 전까지만 수속을 마치면 되니까 5시간의 ‘작전 시간’이 있었다. 일단 아빠에게 전화해 제주공항에서 여권만 화물로 부칠 수 있는지 알아봐달라고 했다. 아빠는 여권을 들고 집에서 30분가량 떨어진 시내로 출발. 그사이 우리는 김포공항 근처 언니네 집에서 대기하며 오빠에게도 연락했다. 소문난 마당발인 오빠는 제주공항에 근무하는 지인을 통해 방법을 강구했다. 올케는 여차하면 여권을 들고 직접 서울로 오겠다고 했다. 그러는 동안 아빠 손에 들린 여권은 제주공항에서 10분 거리의 오빠 회사 정문에 도착. 오빠가 저녁 6시40분 출발하는 비행기를 통해 여권을 보낸다는 말에 안심하고 엄마와 나, 조카, 아이들은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저녁 8시까지만 김포공항에 여권이 도착하면 시간은 충분했다. 인천공항까지 여권 수송은 형부가 맡기로 했다.
하지만 웬걸. 폭설로 대규모 지연·연착이 발생하며 엄마의 여권을 실은 비행기는 저녁 7시18분에야 제주공항을 벗어났다. 도착 예정 시각은 저녁 8시26분. 수속을 하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나는 계속 시계만 흘끗거렸다. 항공사 쪽에 사정을 설명했더니 다행히 출발 50분 전까지는 기다려주겠다는 답을 받았다. 데드라인은 저녁 9시20분이었다.
저녁 8시40분. 형부로부터 문자가 왔다. ‘아직도 여권 가진 사람한테서 연락이 안 오네.’
자포자기 심정. 여차하면 엄마와 언니는 다음날 오전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나와 조카 등은 일단 게이트 앞에서 기다렸다. 저녁 8시50분. 형부가 김포공항에 세워둔 차를 포기하고 ‘총알택시’를 탔다는 연락이 왔다. 택시기사로부터 “9시10분까지 도착할 수 있다”는 확답까지 받았단다. 택시는 정확했다. 택시비로 형부의 비상금 5만원을 전부 써야 했으나 임무는 완성. 엄마와 언니는 수속을 마친 뒤 게이트로 와서 우리 일행과 합류했다. ‘집→아빠→오빠→제주공항→김포공항→형부→총알택시→인천공항’으로 이어진 ‘엄마 여권 공수 작전’이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다. 비행기에 막 오를 무렵 막내인 동생에게 문자가 왔다. ‘우리 집 여자들 여행 가는데 남자들이 고생하네.’
그리고 마지막 반전. 그날 사이판행 비행기는 30분 연발했다. 인생이란 게 그렇지 뭐.
Y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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